50만 교원과 600만 학생 대표하는 이 없는 현실
교원의 입과 손발 묶고 있는 권리 박탈 끝나야
지난 2월 27일 서이초 교사와 신림동 출근길 사망 교사 순직이 인정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4년 간 교육공무원 순직 인정률은 26.3%로 전체 공무원 순직 인정률 56%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열악한 여건에서 두 교사 순직이 인정된 것은 지난 7월 이후 역사상 최초로 수 십만 교사들이 거리로 나와 ‘교권보호’와 ‘공교육 정상화’를 가열차게 외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 해 거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토요일마다 두 달 넘게 비가 오나 땡볕이 내리쬐나 흔들리지 않고 그 많은 교사들이 모인 것은 단지 아동학대 고소로 인한 고통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손 쓸 수 없게 무너진 교육현장, 교육문제가 사법 영역에 포획되어 버린 교육의 총체적 부실을 해결하자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고소, 수사, 소송과 같은 법적 해결방식은 어디서나 그렇지만 교육의 영역에서는 특히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이야말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통해 지식과 역량, 태도를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1년 반 코로나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학교와 교육의 역할과 의미를 새삼 환기시켜 주었다.
교육을 단지 기능이나 지식 습득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기능이나 지식습득이 잘 되기 위해서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관계는 중요하다. 소송이 난무하는 교육현장에 신뢰를 전제로 한 교육적 관계가 설 자리는 없다. 작금의 우리 교육은 무슨 무슨 정책의 문제가 아닌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단지 소송불사 학부모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왜 우리 교육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학교 밖 사회변화 문제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동안 교육현장을 규정해 왔던 온갖 교육정책, 교육 관련 법•제도, 교육예산의 편성과 집행 전 과정이 오늘날 교육현장의 위기를 만들어낸 직접적 원인이다.
선의로 만든 법이 교육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사회•정치적 필요로 제안되는 교육정책과 제도가 교육본질과 충돌해 오히려 원래 해결하려 했던 사회정치적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거나 교육 자체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사실 지금까지 수 십년 동안 그래왔다. 그래서 아이들은 학교가는 것, 공부하는 것이 즐겁지 않고, 교사는 자존감을 잃고, 학부모 역시 공교육에 대한 불만을 사교육으로 메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학생들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는 상위권인데 학습흥미도, 학습효능감은 꼴찌에 가깝고, 청소년 자살율은 세계 1,2위를 다투고,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교사들은 5년 사이 100여 명이나 자살하고, 학부모는 사교육 부담으로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에서 ‘실패해도, 실수해도 괜찮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할 학교가 가장 치열한 경쟁의 공간이 되고, 점점 심해지는 교육불평등은 이미 구조화되어 버렸다. 이런 교육이 만들어낼 미래는 암담하고, 교육 현장 한 가운데에서 오늘을 살아내야 할 교사, 학생, 학부모의 현재도 고통의 시간이 될 뿐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교육현장을 잘 아는 사람, 교육철학이 제대로 서 있는 사람을 교육부 장관으로 앉힌 적이 없다. 역대 어느 국회도 교육 관련 법을 만들고 정책과 예산편성에 개입하는 국회 교육위 위원들에 교육현장 출신이 포함된 적이 거의 없다.
교육을 잘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과 교육에 대해 잘 이해하고 ’정말 필요한 일을 한다‘는 것은 다르다. 교육과 관련된 정치의 영역에 교육현장을 잘 아는 이들, 교육철학을 가진 이들이 배제되어 왔던 것은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이래 교원의 정치기본권을 원천 박탈한 결과였다.
헌법 31조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그런데도 참정권을 철저하게 박탈당해 왔던 교원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도 못 주고, 정당가입은커녕 교육감 선거에서도 공약이나 선거운동에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심지어 페이스 북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징계를 당하는 지경이다.
선거법 개정으로 16세면 정당가입과 활동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정당 근처는 얼씬도 못 해본 교사가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황당하고 서글픈 오늘의 교육현실이다.
당연히 복지예산에 이어 우리나라 정부예산 중 두 번째로 그 규모가 큰 교육예산을 교육현장을 전혀 모르는 장관이 짜고, 똑같이 교육현장을 모르는 의원들이 심의한다. 교육관련 법과 정책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런 일이 수 십년 지속된 것과 오늘날 우리 교육의 총체적 위기가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이나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정치의 세계에 50만 교원과 600만에 가까운 학생들을 대표하는 이들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 아닌가.
OECD 국가 중 이처럼 교원을 철저히 정치의 세계로부터 분리시켜 참정권을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이는 헌법이 명령한 교사의 시민적 권리 박탈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육은, 특히 보편교육 단계인 초•중•고 공교육은 모름지기 독립적 성인으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일이다. 세상 일 중에 정치와 무관한 일은 단언컨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인간과 세상에 대해 배우는 일은 달리 말하면 정치에 대해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이것을 정치적 문해력이라 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이유로 활자로 적힌 교과서의 지식 그 이면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 하도록 강요해 왔다. 그러니 교육은 세상의 이치나 문제의 원리를 깨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늘 지식교육에 갇히게 될 수밖에 없다.
교육현장에서 지켜져야 할 정치적 중립은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정치적 신념을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어야 함에도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심지어 범법행위로 치부하는 저차원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 결과 아이들은 12년 공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가도 정치적 문맹상태가 되어 현실세상과 부딪치며 처음부터 다시 스스로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교육 12년 동안 학습하고 훈련받았다면 피할 수 있는 수 많은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당황하고, 고민하고, 결정하며, 그 결과를 홀로 감당하게 된다.
정치적 중립성을 왜곡해 교육에서 정치를 거세한 우리 교육은 어느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배우는 것으로 등치되어 버렸다. 이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 낭비이며, 국가가 마땅히 길러줬어야 할 태도와 역량을 길러주지 못해 아이들 삶에 고통과 불행을 야기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헌법 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국민은 공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의 자질을 기를 권리를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 더구나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 하지 않나.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그 사회 공교육의 민주시민교육 정도에 비례한다.
헌법적 기본권인 참정권을 박탈당해 시민적 권리 행사를 해 본 적 없는 교사가 민주시민을 길러낼 수는 없다. 우리 교육 현실은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 하는 것을 교육목적으로 명시한 교육기본법 제2조를 지킬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니 교원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는 교사에게도, 아이들 교육에도 모두 치명적 결핍과 왜곡을 초래하는 것이다. 이 상태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 의회 의원의 10~15%가 교원인 나라들이 적지 않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금도 교원 출신 국회의원 후보는 여야 합쳐 단 2명뿐이다. 그것도 21대에 비하면 개선된 것이니 괜찮은 일일까.
교사의 시민적 권리 보장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위기에 빠진 우리 교육의 총체적 부실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도 교원의 입과 손발을 묶고 있는 참정권 박탈은 끝나야 한다.
작년 그 뜨거웠던 여름 수십만 교사들이 정치의 거리 여의도에서, 법개정이라는 가장 정치적 요구를 하면서도 교사 출신 정치인에게 단 한 번도 발언기회를 줄 수 없을만큼 정치적 자기검열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은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너무 모순적이고 너무 서글픈 일이었다.
이것은 결코 교사만의 설움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불행이다.
교원의 참정권을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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