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미우리 "윤석열 있을 때 국제법적 해결" 맞장구

일본 ICJ재판 대비 등 치밀한 시나리오 따라 '빌드업'

외교부, 가미카와 기습 공세에 단호히 대처했어야

일본 적반하장 공세에 '친일' 윤 정부 빌미 제공

일본이 독도(일본 주장 '다케시마') 영유권 공세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는 21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진행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정식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폈다. 일본 외무성은 결과 발표문을 통해 한국의 조태열 외교장관에게 "가미카와 요코 외무상이 다케시마에 대한 일본의 오래된 입장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독수호전국연대 회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 02..22. 연합뉴스
독수호전국연대 회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다케시마의 날'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 02..22. 연합뉴스

한일 외교 회담서 "독도는 일본 땅"…첫 공식 도발

일본, 치밀한 독도 편입 시나리오 따라 '빌드업'

일본 교도통신도 가미카와 외무상이 양자 회담을 열고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입장을 재차 전달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일본은 자국 의회 연설 등을 통해 그런 주장을 펴오기는 했지만, 공식 회담 자리에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더구나 일본은 회담 날짜를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 하루 전에 배치해 선전 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도 보수와 극우 언론 중심으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요미우리신문은 22일 '다케시마의 날 국제법에 근거한 해결 촉구해야'란 사설에서 "작년 3월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지만,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다케시마는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는 한국에 끈질기게 평화적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속내를 보면, 그동안 일본이 윤석열 정부로부터 일제 전범 기업의 불법적 강제동원(징용)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비롯해 거의 모든 걸 얻어냈으니, '일본인'이라 해도 속을 법한 윤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때 마지막 남은 독도를 챙길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방법론도 제시했다. 요미우리는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고 한국에 여러 차례 제안했지만, 한국은 거부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윤석열 정권에 국제법에 근거한 해결을 요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윤 정부를 구슬러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면 '게임 끝'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만에 하나 ICJ의 독도 영유권 분쟁 관련 재판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관련 국제법 전문가들을 대거 양성해 놓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조앤 도너휴 소장(가운데)을 포함한 재판관들이 31일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24 01. 31 [EPA=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조앤 도너휴 소장(가운데)을 포함한 재판관들이 31일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다. 2024 01. 31 [EPA=연합뉴스]

요미우리, 윤석열 있을 때 국제법적 해결 기대

일본 외상, 예사롭지 않은 국제사법재판소 방문

실제로 일본이 독도 영유권 분쟁이 '존재한다'면서 ICJ에 가서 독도 문제를 다퉈 보자고 우리측에 제안한 적이 있다. 1954년과 1962년으로 국교 정상화 이전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 8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일본은 ICJ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했으나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우리 정부는 ICJ의 강제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ICJ 재판은 어느 일방의 제소에 따라 개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브라질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정식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은 가미카와 외무상의 최근 행적을 보면 장기적 전략과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 행보가 새해 벽두인 1월 11일 가미카와가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를 (ICJ) 방문한 것이다. 그는 조앤 도너휴 소장과 만나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중요성과 ICJ의 강제적 관할권 수용국 확대를 주장했다. 당시 이를 두고 장차 독도 문제를 ICJ로 끌고 가 분쟁화를 유도하는 '덫'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다. 윤 정부가 자칫 'ICJ를 통한 법의 지배'를 인정하면 ICJ 강제관할권 수용 압박 논리로 악용될 수 있어서다.

국제사법재판소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가미카와는 1월 30일 일본 정기국회 연설에서 독도와 관련해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 근거해 의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기시다가 2014년 외무상 시절에 했던 외교연설에서 "일본 고유의 영토인 시마네현 다케시마(독도)"라고 한 뒤 일본 외무상이 11년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같은 망언을 반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2022년 12월 16일 외교·안보 기본지침서인 국가안전보장전략 개정판에 독도를 "우리나라(일본) 고유영토"라고 최초로 명시한 대목이다. 2013년 판에는 없던 내용으로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그 이후 일본 정부는 또한 지난해 5년 만에 자국 내 섬을 재집계하면서 독도를 포함해 발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한민국 고유 영토 독도.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산케이, 한국 정부 사과‧독도 반환 주장도

일본 적반하장 공세에 윤 정부 빌미 제공

극우 매체인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의 사과와 독도 반환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점입가경이다. 산케이는 '다케시마를 대한(국) 외교의 주제로 삼아야'란 사설에서 "다케시마는 북방영토와 나란히 반드시 반환을 실현해야 할 일본 고유 영토"라면서 "한국은 일본에 사과하고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정부의 내각부 정무관이 출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 반환 운동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가 너무 약하다"며 "일본 정부는 주권 침해가 계속되는 현상을 외면하지 말고 다케시마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일본 정부와 일부 언론이 이처럼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데는 윤 정부가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 극히 최근 사례만 찾아봐도 작년 말 독도를 "영토 분쟁이 진행되는 지역"으로 기술하고 11장의 한반도 지도 중 단 한 곳에서도 독도를 표기하지 않은, 국방부의 장병 정신교육 교재 사건과 해외여행과 관련한 안전 정보를 제공하는 외교부의 '해외 안전여행' 사이트에 독도를 '재외(在外)공관'으로 표시해 '다른 나라 땅'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다. 뒤늦게 사과하고 감사를 통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국방부는 아직 소식이 없다. 지난해 '다케시마의 날'인 2월 22일에는 한국 해군이 '일본해'로 표기된 해도에 맞춰 독도 인근에서 ·미국, 일본 해상전력과 함께 미사일 방어훈련을 벌여 윤 정부에 대한 질타가 쏟아진 바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2.22 [외교부 제공]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1일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를 계기로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과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4.2.22 [외교부 제공]

외교부, 일본의 독도 분쟁화 기도에 말렸나

가미카와 기습 제기에 단호히 대처했어야

문제는 조태열 장관이 회담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발언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전에 독도 문제를 회담의 '공식 의제'로 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보면, 가미카와가 사전 협의 없이 이 문제를 기습적으로 제기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독도의 'ㄷ'자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강하게 항의하고 필요하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어야 한다. 일본에게서 '독도는 일본 땅'이란 말을 듣고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반박했다고 해도 이미 '분쟁화'라는 일본의 노림수에 말려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독도 이슈와 관련해, 한국 외교부의 발표는 다르다. 외교부는 "조태열 장관은 22일 시마네현이 소위 '독도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중앙정부 고위급 인사가 참석할 예정인데 대해 항의하고,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 영토임을 재차 강조했다"고 밝혔다. 가미카와 일본 외무상의 '독도 영유권 주장' 부분은 발표문에서 완전히 빼버렸다. 그 대신 조 장관이 먼저 '다케시마의 날'과 관련해 항의하고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했다는 얘기다. 외교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오히려 일본의 독도 문제 공식화에 멍석을 깔아준 격이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2일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아 일본 측이 독도 강치를 활용한 홍보를 더 강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곳곳에 붙어 있는 '다케시마의 날' 홍보 포스터. 2024.2.22 [성신여자대학교 창의융합학부 서경덕 교수팀 제공] 연합뉴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2일 일본 시마네(島根)현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정한 '다케시마의 날'(2월 22일)을 맞아 일본 측이 독도 강치를 활용한 홍보를 더 강화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 곳곳에 붙어 있는 '다케시마의 날' 홍보 포스터. 2024.2.22 [성신여자대학교 창의융합학부 서경덕 교수팀 제공] 연합뉴스

작년 3월 윤석열-기시다 간 도쿄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상회담 후 일본 정부와 언론은 회담에서 기시다가 독도 문제를 거론됐다고 전했지만, 당시 대통령실과 외교부 등 윤 정부는 "논의되지 않았다"라고 발뺌하기 바빴다. 일본의 '독도 일본 땅 편입'이란 명확한 목표와 치밀한 전략 아래 차근차근 '빌드업'해 나가는 반면에, 윤 정부는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응하고 마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한편, 외교부는 '다케시마의 날'에 항의해 대변인 성명을 내고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즉각 중단하고, 겸허한 자세로 역사를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청사로 미바에 다이스케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다케시마의 날' 행사 주최에 대한 항의 뜻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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