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 피해상인들 만났다? '가짜뉴스' 게재
대통령실 자료 받아쓰고 오보인데도 그대로 방치
'김건희 명품백 스캔들' 보도 외면하다 본질 왜곡
쌍특검법·이태원특별법엔 '여야정쟁' '양비론' 씌워
"윤-한 갈등 봉합" 기사, '~알려졌다' 식으로 작문
권력감시와 균형·정확보도할 국가기간통신사 맞나
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다. ‘기간(基幹’이란 말에는 국가의 기본과 중심을 잡아주는 공익적 뉴스를 다룬다는 뜻이 담겨있다. ‘통신사’는 이런 뉴스를 정부·기업·다른 언론사에 신속·정확하게 공급하는 언론이다.
연합뉴스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뉴스통신진흥에관한법률에 따라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 지정됐다. 뉴시스나 뉴스1 같은 민영 통신사와는 달리 정부가 매년 300억원대의 보조금(세금)을 지급해 민간·상업언론이 하기 힘든 재난보도와 지역뉴스·해외뉴스 보도 등 공적 언론기능을 더 충실히 수행하도록 했다.
연합뉴스는 정부나 기업체, 다른 언론사들로부터 구독료를 받고 뉴스를 판매하기 때문에 ‘언론의 언론’ ‘뉴스 도매상’이라고도 불린다. 지금은 인터넷 포털을 통해 개별 독자에게도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뉴스 소매상’을 겸업하고 있는 것이어서 구독료를 받는 뉴스 도매상이라는 이름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국가기간통신사이자 언론의 언론으로서 연합뉴스가 미치는 영향력은 다른 언론사에 비할 바 없이 크다. 국내 언론사 중 가장 많은 전세계 30여개 나라에 특파원을 보내 해외 소식을 국내에 전달한다. 90여개 해외 통신사들과 협정을 맺고 국내 소식도 해외에 타전하고 있다. 해외 언론이나 국내 상주 외신기자들이 한국 관련 기사를 취재할 때 주로 참고하는 취재원 중 하나가 바로 연합뉴스다.
연합뉴스는 국내 최대의 전국 취재망을 갖고 서울과 지역 뉴스를 취재·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니 경향신문 같은 전국단위 주요 일간신문은 물론이고 수많은 지역 신문들이 이런 연합뉴스의 기사나 사진을 공급받아 보도하고 있다. 취재기자가 부족하거나 지역 취재망이 없는 많은 언론들은 연합뉴스 기사를 그대로 받아써 보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다보니 연합뉴스의 편향된 논조나 오보, 심지어 오타까지도 다른 매체에 그대로 보도되기도 한다.
연합뉴스가 수준 높고 공익적이면서 정확하고 균형잡힌 보도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가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해외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 연합뉴스의 잘못된 보도, 편향보도, 오보가 국내 수많은 언론에서 똑같이 보도돼 여론을 왜곡·조작할 수도 있다.
그동안 연합뉴스가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를 해왔는가에 대해 의문과 비판이 자주 제기돼 왔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연합뉴스는 정부 눈치 보는 듯한 보도가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최근 사례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숱한 비리와 스캔들 의혹, 국정운영의 무능·무책임에 대해 연합뉴스는 거의 대부분 관대하다 싶을 정도로 축소보도하거나 아예 비판의 목소리를 감춰왔다. 양비론을 꺼내들며 문제의 본질을 덮기도 했다.
일부 언론이 김건희 씨의 양평고속도로 변경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을 제기했지만 연합뉴스는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 같은 김건희 씨 관련 의혹에는 소극적 보도로 일관해왔다. 최근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는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27일 김건희 씨 명품백 스캔들이 첫 보도된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연합뉴스는 야당이나 시민단체 입장만 받아쓰기 보도할 뿐 독자적인 취재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통신사인 연합뉴스가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이 의혹을 폭로한 인터넷 언론사가 외신기자들 상대로 별도의 기자회견을 하면서 해외 유력 언론들이 일제히 ‘김건희 디올백 스캔들’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입장 역시 애매하다. 별다른 기사나 논평이 없다가 조중동 등 이른바 ‘친윤 매체’들까지 이 사건을 언급하자 그제서야 ‘연합시론’을 통해 ‘명품백 논란의 본질이 정치공작’이라는 대통령실 입장을 전하면서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대책을 내놓길 기대한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여권 대혼돈...명품백 논란 신속히 정리해야”라고 하더니 2월에는 ‘윤 대통령이 신년대담에서 명품백 논란에 관해 진솔한 언급을 내야한다’고 썼다. 마치 명품백 논란을 대통령실과 여권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 정도의 언급을 하면 사태가 정리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디올 명품백 스캔들’의 본질은 대통령 권력을 남용한 민간인 김건희 씨의 불법행위(여러 불법행위 중 하나)이며, 그 뒤에 숨겨진 김건희 씨의 인사청탁과 국정개입 문제다. 대통령실·여당의 메시지와 대책으로 논란이 끝날 일이 아니고 끝내서도 안되는 사안이다. 사안을 축소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 보도 중엔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에 서서 쓴 기사나 칼럼이 많다. 1월 29일자 “윤-한 2시간 37분 전격회동...갈등 국면 마무리 내부평가”기사는 윤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입장을 기사체로 옮겨놓은 보도자료에 가깝다. 기사는 두 사람의 갈등이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데 기자가 이렇게 보는 근거는 대부분 ‘알려졌다’ ‘후문이다’ ‘평가가 나왔다’ ‘분석이 제기된다’ ‘전망도 있다’ 등 밑도 끝도 없는 것들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의 입장을 옮겨놓으면서 마치 객관적인 취재원으로부터 듣고 쓴 것처럼 작성한 기사다.
연합뉴스는 윤석열-한동훈 갈등 봉합을 도와주고 윤 대통령을 띄워주기 위해 가짜뉴스를 내고, 가짜뉴스임이 드러나도 기사를 수정이나 삭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23일 연합뉴스 홈페이지와 포털에는 “서천시장 상인들 만난 윤석열 대통령”이란 제목의 사진이 10여건 보도됐다. 사진 설명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피해 상인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고 씌어있다. 이 사진은 사진기자 이름이 적혀있지만 ‘대통령실 제공’이라고 출처를 명기해놓았다.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대통령실이 준 사진을 사진기자가 받아서 게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진의 제목과 설명은 오보임이 밝혀졌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윤 대통령이 서천시장을 방문했지만 ‘피해상인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동훈 단독 마중, 피해상인들 패싱...윤 대통령 35분 동안 뭘했나”제목의 기사와 “서천 화재현장 찾은 윤 대통령, 상인은 안만나...불구경하러 왔나” 기사다. 이 두 개의 기사에는 밤새워 기다렸던 대통령을 단 1초도 만나지 못한 시장상인들이 ‘분노’했다는 내용의 글과 사진이 담겨있다.
SNS와 유튜브 등에서도 연합뉴스 사진 속에 윤 대통령이 만난 사람이 시장 상인이 아닌 서천군 공무원들과 지방의원들, 여당 인사, 행사 관계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서천시장 상인들 만난 윤석열 대통령” 사진을 수정하지도, 삭제하지 않았다. 2주일째인 2월5일에도 이 사진들은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에 그대로 걸려있다. 연합뉴스는 대통령실이 만든 가짜뉴스를 그대로 받아 보도하고, 현장 사진 대조와 목격자 증언을 통해 가짜뉴스임이 확인되어도 그냥 방치한 것이다. 언론의 기본과 중심을 잡아야 할 국가기간통신사가 할 일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하자 연합뉴스는 ‘연합시론’을 통해 “거야 단독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악순환으로 국민이 피로하다”며 애매한 ‘양비론’을 펼치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김건희 씨 주가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클럽 특검법, 이태원참사 특별법 등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회수로 5번, 건수로 9개)가 거대 야당의 ‘입법독주’ 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려내 옳지 못한 권력행사를 비판하기보다는 양비론으로 무책임한 언론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의혹, 명품백 수수 의혹, 야당의 특검법 등을 모두 ‘여야 정쟁’으로 몰아 국민들의 정치혐오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 예산에서 연합뉴스에 대한 보조금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폭 삭감해 50억원만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보조금이 이렇게 갑자기 대폭 삭감되면 경영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다. 해외 특파원 운영이나 영어뉴스 제작, 지역 뉴스 취재 같은 연합뉴스의 공적 기능과 역할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 삭감보다 더 큰 문제는 권력 감시와 균형잡힌 보도, 정확한 보도라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스스로 삭감하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에게 정부 보조금 300억원보다 국민 신뢰가 더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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