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파와 기득권 카르텔의 오래된 분열과 위기
우파 재결집으로 윤석열 정권 만들고도 불씨 남아
윤석열에 불만 쏟다가 한동훈 도전 부추긴 조중동
술자리와 해외 순방 불려 다니는 재벌들도 불만 커
검찰 특수통 출신들 '캐비닛 전쟁'으로 발전 가능성
열쇠는 윤석열·한동훈 아닌 '반윤 투쟁과 연대'의 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저항이 벌어지는 듯싶더니 하루 만에 사그라들었다. 그러면서 이번 권력 투쟁에 대한 여러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한동훈의 사람으로 여겨지는 김경율 국민의힘 비대위원이 김건희 씨를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한 발언이 윤석열 대통령을 ‘격노’하게 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전국을 돌면서 셀카를 찍다가 ‘대권병’에 걸린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선을 넘게 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동훈 비대위가 윤석열 정부와 차별화를 하면서 중도로 확장하려는 ‘약속 대련’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권력’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미래 권력’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도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다툼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모든 해석과 분석들은 다 타당한 면이 있지만 다소 일면적이고 좀 더 깊은 뿌리를 놓치고 있다. 그것을 보려면 2016년 촛불을 앞두고 보수우파와 기득권 카르텔이 어떻게 분열했었는지, 촛불이 그 분열과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만들었는지, 그들이 재결집하면서 다시 권력을 되찾기는 했지만 왜 여전히 불안정과 위기의 요소들이 남아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16년 당시에 이들의 분열은 매우 심각했는데, 그것은 처음에 조선일보와 박근혜 청와대 사이에서 불거졌다. 계기는 조선일보가 당시 ‘왕수석’인 우병우 일가의 비위 의혹을 보도한 것에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직접 “부패 기득권”이라고 직격했고, 검찰은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의 비리를 밝혀내며 방상훈(조선일보 사주)의 숨통을 조였다.
박근혜 정부-족벌언론-검찰이 서로를 불신하고 물어뜯던 이 장면은 기득권 카르텔의 균열을 상징했다. 납작 엎드렸던 조선일보는, 나중에 촛불이 터져 나오자 앞장서 박근혜 청와대를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검찰도 신속하게 포지션을 이동해 특검과 함께 박근혜와 측근들을 수사 기소했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도 상당수가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우파 정당은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새보수당 등으로 계속 쪼개졌다. 위기와 분열은 그 후 5년이 지나면서 검찰-족벌언론-우파 정치세력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다시 복원되고, 보수우파 정치세력들이 ‘탄핵의 강’을 건너 국민의힘으로 뭉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기득권 카르텔이 위기와 분열을 극복한 결과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정부의 탄생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보수우파와 기득권 카르텔의 재결합은 원만하고 행복하게 유지되는 듯했다. 예컨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방문하고 나서 조중동의 지면에는 같이 짜고서 정한 듯한 제목의 기사들이 동시에 실렸다. “윤, 우럭탕 싹 비우고 국물 추가”(조선일보) “윤, 우럭탕 한 그릇 비우고 국물 추가”(중앙일보) “윤, 우럭탕 한 그릇 비우고 국물 추가”(동아일보)
하지만 사실 분열은 이미 시작됐고 틈은 계속 벌어져 왔다.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과 신당 창당이 가장 명백한 사례이지만 나경원,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등도 윤석열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이들은 모두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중심으로 힘을 합쳤던 세력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이미 지난해 여름에 이렇게 지적했다.
“지난 대선은 이전의 보수, 2030이 가세한 신(新)보수,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후보라는 연합군을 이룬 특이한 선거였다. 마지막에 안철수와 단일화를 했고, 진중권 등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민주당과 등을 진 야권 인사들이 비판적 지지 그룹을 이뤘다. 일부 좌파 그룹까지 반(反)이재명이었다. 이렇게 마른걸레를 쥐어짠 게 0.7%포인트 정권 교체였다. 그러나 지금 대선 연합은 깨졌다.”
이렇게 깨져버린 ‘대선 연합’이 총선을 눈앞에 두고 이번에는 ‘21년 끈끈하고 오랜 선후배 관계’라는 윤석열-한동훈의 충돌로까지 나타났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영입한 김경율 비대위원이 “김건희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그것을 묵인 방조하는 것 같은 상황이 불씨가 되면서 충돌로 이어졌다.
이것은 김건희 씨가 디올백 뇌물을 수수하면서 “법 앞에 예외는 없다”는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김경율 비대위원의 정의감을 건드린 것일까? 그럴 리 없다. 이들은 <뉴스타파>와 검찰 수사 기록을 통해 김건희 씨가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도,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을 통해 김건희 일가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됐다는 지적에도 침묵할 뿐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김경율 비대위원은 오로지 300번 넘게 압수수색 받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만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단 한 번의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도 받지 않는 대통령 부인의 ‘특권과 성역’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뉴스타파> 심인보 기자는 “김건희 여사는 왜 조사를 안 하는 것인지. 이게 정말 너무 초현실적인 상황 같아요 … 이게 현대 사회의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한탄했다.
그러다가, 공중파 방송과 주요 일간지에서는 볼 수도 없는 <서울의 소리>의 디올백 수수 장면을 일부러 찾아보고 갑자기 정의감을 되찾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그보다는 ‘디올백’은 권력 다툼에 나선 세력들에게 핑계에 불과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후배”라던 한동훈을 부추긴 것은 바로 족벌언론들이었다.
한동훈 비대위가 등장하기 전에 이미 동아일보는 “김 여사는 하루빨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택 등 사가(私家)로 거처를 옮겨 근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이기홍 칼럼). 중앙일보는 한동훈을 향해 “‘김건희 리스크’를 제어할 복안을 제시해야 한다. 제2의 6.29 선언을 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서둘러 접는 게 낫다”(최민우 칼럼)고 충고했다.
하지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디올백은 “몰카 공작”이고 김건희 특검은 “악법”이라고 규정했고, 한 달 동안 전국을 돌면서 ‘셀카 삼매경’에 흠뻑 취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한 달 후에 조중동은 ‘계속 셀카만 찍고 다니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압박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한동훈의 주변에서 열광하며 같이 셀카를 찍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령층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의 환호에 취해 골수우파 진영의 돌격대장에 머문다면 정치적 미래란 없다”(최훈 칼럼)고 강한 경고를 했다.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도 한동훈에게 “아름다운 뒤통수”를 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조중동의 압박 뒤에는 단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해야지만 총선에서 여당의 패배를 면할 수 있다’는 선거공학적 계산만 깔려있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조중동은 실제로 윤석열 정부에 상당한 불만을 쌓아왔고 일찍부터 그것을 드러내 왔다.
“보수·우파 진영에서는 윤 정권이 ‘이재명과 대장동’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아직도 헤매고 있는 것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윤 대통령은 안정적으로 40%를 넘은 적이 없다. 윤 대통령 스타일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즉, 조중동은 윤석열 정부가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지도 못하고, 야당의 반대를 억누르면서 촛불 이전의 과거로 확실하게 나라를 되돌리지도 못하는 것에 큰 실망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나 무역 상황, 대중국 수출이 너무 안 좋아지고 있고, 이것이 전체 기득권 카르텔의 장기적 이익을 해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조중동의 불만은 기득권 카르텔의 또 다른 핵심 축인 재벌들의 불만이기도 하다. 보수 언론을 통해 ‘엑스포 유치를 위해 프랑스 방문 중에 윤석열이 재벌총수 5명과 술자리를 가졌다’ ‘술자리가 끝나고 어떤 재벌총수는 오바이트까지 했다’는 소문과 ‘재벌 총수들이 한 달에 한 번씩이나 대통령 행사에 불려 다니고 떡볶이 먹방까지 해야 하냐’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이것은 ‘검찰-족벌언론-재벌-우파 정치세력’으로 구성된 기득권 카르텔 내부에서 불신과 갈등의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는 배경이고, 총선에서 보수우파의 패배를 피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으로 나타났다. ‘친한동훈’ 세력과 조중동은 ‘김건희 리스크를 제거하면서 윤석열과 차별화를 해서 중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친윤’ 세력과 극우 유튜버들은 ‘김건희가 사과하는 순간, 더 물어뜯길 것이고 탄핵까지 이어질 수 있다. 우파 결집에 균열이 생기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라면서 결사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앙일보에 연재한 자서전에서는 2016년 당시의 ‘대국민 사과’를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친윤 세력은 ‘참여연대 때부터 정보를 주고받다가 조국몰이까지 이어졌던 한동훈의 깐부인 김경율을 앞세워 우리를 배신하려는 것이냐’라고 의심한다는 소문이 나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이 급히 한동훈의 대선배를 신임 법무장관으로 임명해서 한동훈의 검찰 인맥들을 정리하고 나섰다는 말이다.
충돌은 처참한 서천 화재 현장을 배경 무대로 삼아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고, 다음날부터 한동훈-김경율이 윤석열-김건희 앞에 납작 엎드리면서 일단 봉합됐지만, 다들 알다시피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이미 불신의 골이 커졌고, 무엇보다 기득권 카르텔의 주요 중심축 간의 주도권과 권력 다툼이 그 배경으로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 카르텔은 국가, 대자본, 언론 권력 등으로 구성돼 있고 서로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이지만 국가와 자본, 총자본과 개별자본의 이해관계는 다를 수 있고 계급 지배의 방식과 전략을 둘러싼 이견과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배가 효과적이거나 안정적이지 못하고 아래로부터 불만과 저항이 그것에 도전할 때 더욱 심각해진다.
현재 기득권 카르텔에서 가장 주도권과 힘을 가진 검찰 특수통 출신들의 핵심 무기는 엄청난 정보력(소위 '검찰 캐비닛')과 수사 기소권이다. 털면 나오고 걸릴 게 많은 보수 정치인과 족벌언론 사주와 재벌총수들은 그 힘 앞에서 대부분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게 된다. 지난 대선 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갑자기 극적인 화해와 포옹의 장면을 연출하던 것을 기억해 보자.
그때 가로세로연구소에는 ‘이준석이 과거 성접대받은 것을 입 막기 위해 제보자에게 7억 투자 각서를 써주었다’는 영상과 녹취가 계속 올라왔다. 나중에 JTBC는 ‘당시 이준석 7억 각서가 윤석열 캠프 관계자에게 전달됐고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하는데 협상 카드로도 활용됐다’고 보도했다. 결국 이준석은 대선 직후에 이 문제로 중징계받고 당대표에서 쫓겨났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준석 전 대표와 달리 그 자신이 검찰 특수통 출신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비록 언제나 2인자로서 윤석열 대통령 밑에서 충성해 왔지만 ‘검찰 캐비닛 정치’에서는 누구보다 뒤처지지 않을 입장이다. 다만, 한동훈 비대위원장 역시 장인, 부인, 처남, 딸, 본인까지 온갖 의혹들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앞으로 벌어질 권력의 아귀다툼은 매우 파괴적이면서 냉혹하고 더 지저분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창창한 앞날이 기다리는 여당 인재들과, 과거 범죄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야당 대표가 맞붙는 경쟁”(김창균 칼럼)으로 총선 구도가 그려질 것이라던 조선일보의 몇 달 전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버린 지 오래다.
과연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김경율 비대위원을 잘라내면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굴복할 것인가? 권력 다툼은 국민의힘의 총선 공천을 둘러싸고 다시 격렬한 충돌로 나타날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6.29 선언을 하고 전두환을 백담사로 보낸 노태우의 길을 갈 것인가? 윤석열-한동훈은 결국 같이 감옥에 가야 했던 전두환-노태우의 뒤를 따를 것인가?
이것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얼마나 배짱 좋게 대선배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도전하면서 차별화에 성공하느냐, 윤석열 대통령이 얼마나 영악하게 2인자의 도전을 억누르면서 권력 연장에 성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다. 1987년에도 중요한 것은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이 만들어낸 힘이었고, 2016년에도 박근혜 대통령, 이재용 삼성 부회장을 모두 감옥에 보낸 힘은 거리의 촛불에서 나왔다. 열쇠는 반윤석열 투쟁과 연대의 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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