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 수수 김건희 씨에게 주는 지침인가
스스로 반민족·반민주 행위 먼저 사과하길
조선일보 2024년 1월23일자 35면(오피니언)에는 이 회사 송혜진 산업부 차장이 쓴 정감있는 칼럼이 실렸다. 칼럼의 제목은 ‘사과해도 괜찮아’다. 한 초등학생이 무인 카페에서 놀다가 얼음을 쏟아 손글씨로 사과편지를 썼다면서, 이 편지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칼럼을 시작했다.
송 차장은 초등학생의 편지글을 읽으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외국의 유명 석학이나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사과의 4원칙’이 완벽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란다. 기자가 밝힌 ‘사과의 4원칙’은 이렇다. 1.자신이 잘못했음을 깨끗하고 빠르게 인정할 것, 2.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할 것, 3.조건부 사과를 하지 말 것, 4.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 그러면서 사과를 할 땐 이 4가지 원칙을 반드시 지켜야 상대방이 사과라고 느끼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단다. 백번 동의가 되는 말이다. 인용글의 주인공인 초등학생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칼럼은 조건부 사과로 제대로 사과하지 못한 야당 인사의 글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초등학생 아이도 본능적으로 지키는 사과의 기본 원칙을 일부 공직자, 연예인, 정치인은 이렇게 종종 어기거나 잊거나 외면한다고 꾸짖는다. 물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종사들은 대상에서 빠져있다. 그러면서 사과를 패배라고 여긴 구시대 사람과 사과를 잘해서 승자나 지도자가 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과하고 난 뒤의 상황이 두렵겠지만, 그 공포는 과장된 경우가 훨씬 많다. 수치심은 도덕적 실패가 아닌 고결함의 증거가 되니 사과는 상처를 치유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기억하자”라는 사회심리학자의 글을 인용하며 “성숙한 사과는 그렇게 우리를 결국 승자로 만들 것”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글을 맺는다.
깨달음을 주는 글임에 틀림없다.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사과를 통해 오히려 승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니 얼마나 고마운 글인가. 다만 초등학생이 행한 잘못은 이론의 여지없이 실수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함을 알고도, 심지어 범죄가 될 수 있음을 알고도 고의로, 계획적으로 저지른 행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실수가 사과할 내용이라면, 범죄는 사과가 아니라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실수와 범죄를 교묘하게 혼동하게 하는 것은 언론 종사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눈치빠른 독자라면 조선일보가 뜬금없이 ‘사과해도 괜찮아’란 칼럼을 쓴 이유를 금세 짐작했을 것이다. 주가조작, 명품가방 수수, 국정개입 의혹을 사고 있는 김건희 씨에게 ‘사과하면 승자가 된다’는 충고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송혜진 차장은 이를 사과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해 김건희 씨에게 사과를 권유하는 듯한 칼럼을 쓴 것일까? 평소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면 김건희 씨에게 ‘사과해서 위기를 모면하라’는 지침을 주는 것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실수는 사과로 해결할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과 사회에 심대한 피해를 끼친 범죄 행위를 사과로 해결하려 한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되고, 그 결과는 무법천지가 될 것이 뻔하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더 나아가 무권유죄, 유권무죄도 바로 그런 무법천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최근에는 무검유죄, 유검무죄라는 말도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칼럼에 언급된 야당 인사는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가 없는’ 사례로 등장했다. 그러나 사과인지 변명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사과, 그것도 기자회견을 통한 사과의 사례는 김건희 씨의 사과가 압권이었다.
“제가 없어져서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남편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윤석열 앞에 제 허물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 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입니다...과거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김건희 씨의 이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 ‘사랑 고백’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특히 이 사과문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이란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아주 좋은 사례다. 김건희 씨는 허위경력 문제 말고도 주가조작, 탈세, 명품백 수수, 국정개입 등의 의혹을 사고 있다. ‘조심 또 조심’하고,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게다가 이런 행위는 사과를 넘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사안들이다.
조선일보야, 사과해도 괜찮아!
덧붙인다. 조선일보의 사설이나 칼럼을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들 때가 많다. 점잖게 사회를 비판하고 충고하는 사설·칼럼을 통해 오히려 조선일보의 부도덕함과 파렴치한 행태가 고발되기 때문이다. ‘사과해도 괜찮아’ 칼럼도 그렇다.
조선일보는 1920년 창간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과해야만 할, 아니 사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 왔다. 이 신문은 일왕에 노골적으로 충성을 맹세했고, 박정희 군사쿠데타를 옹호했고, 살인마 전두환을 마치 민족의 영웅인 듯 떠받들어 보도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온갖 왜곡·편파보도로 여론을 조작하고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데 ‘일등신문’이었다. 선거 때면 공정한 심판으로 경기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반칙을 일삼는 편을 들거나 스스로 부정한 선수로 뛰어들어 경기를 오염시킨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지만, 궁지에 몰려 사과할 때에도 (송혜진 차장이 말한) ‘사과의 4원칙’을 지킨 적은 드물다.
이 칼럼의 제목을 조선일보에게 똑같이 돌려주고 싶다. 조선일보여, 사과해도 괜찮아! 그동안 민족과 국민에 저지를 잘못을 털어놓고, ‘사과의 4원칙’에 맞게 사과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조선일보는 단한번의 사과도 한 적이 없고, 그럴 의향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언론사 간판을 내리는 방법이 유일하고 진정한 사과일 수도 있겠다.
ps. 칼럼에 소개된 초등학생의 순수하고 진심어린 사과문이 조선일보의 ‘정치적 음모’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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