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하네다 활주로 비행기 충돌사고 공방
"평소 승무원 훈련 덕에" 사후대처 긍정론
“비상탈출에 너무 오래 걸렸다” 비판론도
전문가 "결과만 갖고 함부로 비평 말라" 일침
‘이재명 피습’사건 한국언론 보도와 대비돼
“사고 원인도, 자세한 대응 실태도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 시점에서 탈출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고 논평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재난발생 뒤 즉시 탈출구가 열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불이 난 장소나 화재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한 뒤가 아니면 어느 탈출구를 열어야 할지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섣불리 탈출구를 열었다가는 거꾸로 바깥에서 불길이 기내로 밀려들어올 가능성도 있었던 것 아닌가. 양쪽 주장을 다 제시한다(両論併記)는 구실로 불완전한 정보를 기사로 내보내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사쿠라 오사무 도쿄대 대학원 교수[과학기술사회론], <아사히신문> 1월 3일)
엇갈리는 주장과 비평
지난 2일 오후 5시 47분께 도쿄 하네다 공항 활주로에서 일본항공(JAL)의 대형 여객기(에어버스 A350)와 하네다 항공기지 소속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 MA722기(길이 25.68m, 폭 27.43m, 높이 7.49m)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두 비행기는 시간차를 두고 전소됐고, 해상보안청기의 탑승자 6명 중 기장 1명만 가까스로 탈출하고 나머지 5명은 목숨을 잃었다. 승무원 12명을 포함한 JAL기 탑승객 379명은 재빨리 탈출해 15명이 좀 다치긴 했지만 모두 무사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일본 국토교통성은 3일 충돌한 두 항공기와 공항 항공관제사 간의 교신기록을 공표했고, JAL은 사고발생 뒤 18분만에 승객 전원을 무사히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해상보안청기의 기장은 활주로에 진입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들어갔다고 했으나, 공표된 교신기록에 해상보안청기의 활주로 진입허가 내용은 없었다.
또 JAL의 대처에 “기적의 탈출”이라며 칭찬하는 반응들이 일본 안팎에서 나왔으나, 기내에 연기가 자욱한데도 왜 즉각 탈출구를 열어 대피시키지 않고 비상탈출에 18분이나 걸리게 했냐고 질타하고, 자칫 큰 재난으로 이어질 뻔했다면서 늑장 대처를 비판하는 소리들도 있었다.
사실확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는 사쿠라 교수의 논평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한 활주로에 두 비행기 충돌 “있을 수 없는 일”
사고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날 JAL기는 홋카이도의 신치토세 공항에서 연말연시 휴가 나들이를 갔던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도쿄 하네다 공항 쪽으로 와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관제사의 활주로 진입 허가를 받고 착륙하는 순간 활주로에 나와 있던 해상보안청기와 충돌했다. 충돌 순간 폭발음과 함께 두 비행기 모두에 불이 났고, JAL기는 그 상태로 1000m를 더 달려가서야 멈췄다.
하네다 항공기지 소속 해상보안청기는 그때 그 전날 일본 혼슈 중부 서해안쪽 이시카와 현 노토반도에서 일어난 대형 지진(매그티뉴드 7.6) 피해지역에 보낼 구호물자를 싣고 재난지 인근 니가타 공항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
젠닛쿠(全日空) 기장 출신인 항공평론가 히구치 후미오는 “하나의 활주로에는 원칙상 항공기가 1기밖에 들어갈 수 없다.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사고원인은 조사결과를 기다려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뭔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관제, 해상보안청기, JAL기 3자가 각각 ‘안전제일’을 지켰는지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쌍방 모두 “진입허가 받고 들어갔다”
JAL 쪽은 사고발생 8시간쯤 지난 뒤 “관제 쪽의 착륙허가를 인식하고, 복창한 뒤 (활주로에) 진입, 착륙조작을 실시했다”는 알림글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해상보안청도 병원에 입원 중인 사고기 기장의 말을 인용해 “활주로 진입허가를 받고 진입했다”고 밝혔다. 쌍방이 활주로 진입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교신기록에 없는 해상보안청기 진입허가
국토교통성은 3일 밤 JAL기와 해상보안청기, 그리고 관제사 간의 교신기록을 공표했다. 기록에는 관제사가 JAL기에 먼저 착륙허가를 내 준 뒤, 해상보안청기에게 활주로로 연결되는 유도로의 “정지위치까지 지상주행해 주세요”라고 지시한 것으로 돼 있었다. 이 지시에 해상보안청기 기장은 “정지위치로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이 교신이 있고 나서 2분 뒤 활주로 위에서였다.
국토교통성은 “기록을 보는 한 해상보안청기에 대해 활주로로 진입하라는 허가는 내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쌍방 서로 상대방 인지하지 못해
사고기들은 모두 사고 당시 상대방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JAL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조사중이라면서도 JAL기가 해상보안청기를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상보안청기 기장도 사고 직후 하네다 항공기지에 연락했을 때 “활주로상에서 기체가 폭발했다”고 보고했다. 기장의 말은 사고 순간 JAL기와의 충돌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몰고 있는 해상보안청기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고 긴급 보고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말해 준다.
항공사고조사관 “지금으로선 답변할 수 없다”
후지와라 다쿠야 항공사고조사관은 3일 기자들 질문에 “기체 전체가 상당히 심하게 손상돼, 어떻게 충돌했는지 지금으로서는 명확하게 답변해 줄 수 없다”고만 말했다.
국토교통성과 해상보안청에 따르면, 사고 당시 JAL기는 해상보안청기와 충돌하고 불이 붙은 뒤 그대로 약 1000m를 달려가 멈춘 뒤 불타 올랐다. 이는 JAL기가 활주로 착륙 전후에 빠른 속도로 해상보안청기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 준다. JAL기는 활주로 착륙 순간 해상보안청기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충돌한 뒤 급하게 제동을 걸었고 기체가 멈추자 비상탈출을 시작했을 것이다. 해상보안청기 화재는 사고 당일 오후 9시 35분쯤 진화됐고, JAL기는 3일 오전 2시 15분께 진화됐다.
쟁점은 교신기록과 다른 해상보안청기 기장의 말
후지타 나오타카 <아사히> 편집위원(정치, 외교, 헌법)은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과 관련해 “항공관제사가 해상보안청기에 활주로 진입허가를 했다는 게 교신기록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데, 왜 해상보안청기 기장은 진입허가를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는가, 하는 점으로 (쟁점이) 좁혀진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공관제사와 항공기 기장들 간에 활주로 진입을 둘러싼 기본적인 의사소통상의 차질이 빚어졌고, 그 차질에 대한 체크(확인, 대처)가 작동되지 않아 이런 큰 사고로 이어진 것인데, 도무지 믿을 수 없다”며, 이는 “일본정부의 항공관제에 대한 신뢰가 걸린 문제“라면서 철저한 원인규명과 설명, 재발방지 대책 제시 등을 요구했다.
‘진입허가’와 ‘유도로 정지위치 진입허가’
후지와라 조사관과 후지타 편집위원의 지적대로 충돌사건 원인은 조사 결과를 봐야 알 수 있고, 조사의 핵심은 활주로 진입허가를 받고 진입했다는 해상보안청기 기장의 말과 허가해 준 적 없다는 관제사의 얘기, 그리고 교신기록을 대조해서 진위를 밝혀내는 것이다.
교신기록에는 관제사가 해상보안청기 기장에게 허가해 준 것은 ‘활주로로 연결되는 유도로의 정지위치까지 지상주행하라’는 것이었지만, 충돌사고가 난 곳은 그 정지위치를 지난 활주로 위였다.
이로 보건대 해상보안청기 기장이 유도로의 정지위치까지 주행하라는 관제사의 말을 활주로 주행으로 잘 못 들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아무것도 단정할 순 없다.
사쿠라 오사무 교수의 지론은 이런 경우 함부로 추측하고 이를 기사로 만들어 공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쿠라 교수가 문제의식을 갖고 논평한 더 민감한 문제는 ‘기적의 탈출’이라는 칭송을 들은 JAL기의 비상탈출을 둘러싼 공방이다.
JAL ‘기적의 탈출’, ”평소 승무원 훈련 덕“
JAL기의 ‘기적의 탈출’과 관련해 약 30년 간 JAL의 객실 승무원(CA)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에가미 이즈미 쓰쿠바대 객원교수는 답승객 379명이 모두 무사했던 것은 JAL 쪽의 평소 승무원 훈련 덕인 것 같다며, CA들이 매년 1회 자기 생일날 받아야 되는 ‘정기 긴급피난훈련’을 예로 들었다.
디칭(diching, 비상착륙)이라 불리는 이 훈련은 하루 일정으로 필기와 실기 시험을 보는데, 필기시험은 기내에 있는 소화기 등의 비상장비 사용방법에서부터 탈출구 여는 법까지 폭넓은 질문을 제시한다. 80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이다.
실기시험은 긴급사태 발생 때 승객을 안심시키고, 탈출구로 유도하거나 영어와 일본어로 정확하게 지시할 수 있는지를 훈련 전담부서 교관이 체크하는 가운데 확인한다. 불합격을 받으면 즉시 탑승업무 정지 처분이 내려지는데, 불합격하는 경우도 있다고 에가미 교수는 말했다.
항공기에는 8개의 탈출구가 있는데, 이번 사고 때 실제로 사용된 탈출구는 3개로 앞쪽 좌우 2개와 맨 뒤쪽의 왼쪽 탈출구였다. 이런 탈출구 선택은 현장 CA들의 판단에 따르는데, 에가미 교수는 “착륙 때 문제가 발생하면, 기체가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는 승객들을 안심시키는데 전념하고, 멈춘 뒤에는 창 바깥 상황을 확인해서 쓸 수 있는 탈출구를 살피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고 영상을 보니 큰 소리로 승객을 안심시키려 애를 썼고, 훈련받은 것을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CA는 기내에서 ‘탈출구역’이라 불리는 책임 전담구역이 있어서, 각자 승객들이 모두 바깥으로 탈출했는지 확인한 뒤에야 자신들도 탈출한다.
“비상탈출에 너무 많은 시간 걸렸다”는 반론
에가미 교수가 얘기한 대로 이번 사고 때 JAL기의 비상탈출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듯하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아사히>에 따르면, 한 남성 회사원(28)은 연기가 기내에 들어차고 바깥에서 타고 있는 불길의 열기를 느끼는데도 계속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며 “왜 즉각 탈출구가 열리지 않았나”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JAL 기장 출신인 항공평론가 스기에 히로시도 “사고의 자세한 상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탈출하는데 너무 시간이 걸렸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JAL쪽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것은 2일 오후 5시 47분께였고, 기장이 긴급탈출 지시를 내리고 승객 전원이 피난한 뒤 기장이 기내를 확인하고 바깥으로 나간 것은 오후 6시 5분께였다. 약 18분이 걸린 것이다.
평론가 스기에는 일본 운수안전위원회가 과거에 낸 사고조사 보고서를 보면, JAL의 사내 규정은 화재나 기체의 현저한 손상 등이 발생할 경우 긴급탈출을 하도록 돼 있다며 말했다. “이번과 같은 사안에서는 기장은 즉각 긴급탈출 지시를 내리고, 객실 승무원(CA)들은 탈출구의 안전을 확인하고 승객들을 피난시킨다. 내가 현역이었던 시절의 훈련에서는 기장의 지시가 떨어진 뒤 모두가 바깥으로 나가기까지 90초 안에 끝낼 수 있도록 연습을 반복했다.”
오키나와의 나하 공항에서 2007년 8월에 중화항공기가 착륙 직후 불이 난 사고 때는 기장이 화재 발생 통보를 받고 나서 승객 165명 전원이 탈출하기까지 3분 15초가 걸렸다.
스기에는 “불이 빨리 번졌다면 큰 피해가 났을 수도 있었다. 15명이 다친 것으로 마무리된 것은 불행중 다행이었다. 긴급탈출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반드시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현장 승무원들 대응이 ‘정답’일 것”
하지만 JAL의 CA 출신인 고다마 사요리 메이세이대 특임교수는 “이번 사고는 예기치 않은 타이밍에 발생한 것으로 보여, CA들이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며 다른 의견을 냈다. 고다마 교수는 “탈출구를 섣불리 열었다가는 불길이 기내로 밀려들어 올 위험이 있다. 어느 탈출구로 피난해야 할지 냉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며, “승무원, 탑승객 모두 큰 부상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JAL이 실행한 것이) ‘정답’이지 않았을까. CA들은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승객들이 그들을 믿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기훈련일 경우 대처해야 할 사건, 사고가 어떤 것인지 미리 인지한 상태에서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모른 채 대처해야 하는 뜻밖의 실제 긴급재난 때보다 긴장도가 낮고 머뭇거릴 필요 없이 더 빨리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실무자들 손 들어 준 사쿠라 교수
사쿠라 교수가 “사고 원인도, 자세한 대응 실태도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 시점에서 탈출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며 나무란 논평들에 대해, 불완전한 정보를 기사로 내보내는 건 그만두라며 비판한 것은, 연기가 들어찬 기내에서 바깥의 불길을 보며 불안해진 나머지 즉시 탈출구를 열라고 요구했을 승객이나 이론에 밝은 기장 출신의 스기에 평론가 쪽보다는,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CA 출신의 에가미 교수와 고다마 교수 쪽 편을 들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안에서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질없고 위험한 일이다.
연기가 들어차고 바깥에 불길이 일렁이는데도 바로 탈출구를 열지 않고 18분이나 걸려 비상탈출을 완료한 것을 두고 “잘 했다, 최선이었다”고 칭찬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결과적으로 모두가 무사했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평가일 수 있다. 그보다 더 빨리 비상탈출을 해야 하고, 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기에 평론가처럼 원인 조사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알려진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이나 견해를 토대로 과거 사례까지 인용해 가며 대처가 늦었다고 지적하거나 질타하는 건 문제가 있다. 더욱이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의 그런 섣부른 평가는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해법을 찾는 노력을 오히려 교란하는 심각한 방해요소일 수 있다.
비교되는 ‘이재명 피습’사건 보도
이번 충돌사고를 둘러싼 일본 내의 공방과 언론 보도를 보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에 관한 국내 언론들 보도들을 떠올리게 된다.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들, 심지어 의도적으로 비틀거나 날조한 ‘사실’들을 내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퍼뜨리려는 보도들이 아무런 규제도 없이 무제한 확산되고, ‘전문가’나 ‘유력지’들이 거기에 가담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질병’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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