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누구 자식인가, 구성원들은 알 것이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강기석 민들레 상임고문

한국방송(KBS)이 망할 것 같다. 윤석열 정권에서 KBS의 앞날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은 일찌감치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때는 그만두고라도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정권에서 KBS는 늘 정권의 간섭과 통제와 핍박의 대상이었으므로 윤 정권이라 해서 특별히 다른 대우를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KBS 등 방송들, 나아가 언론 전체를 장악하려는 시도는 진보정권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는데, 그건 사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이거나, 비교해서는 안 되는 대상을 비교해서 본질을 가리려는 얕은 수작일 뿐이다. 언론에 대한 진보정권의 기본태도는 중립과 객관 공정을 지켜달라는 것이지, 보수정권처럼 편파적인 왜곡보도를 해서라도 무조건 자신을 편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차이는 오십보와 백보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백보와 마이너스 백보 정도의 차이인 것이다.

불법적으로 폐지된 시사프로그램들, 9시 ‘땡윤뉴스’ 등장

윤 정권에서 KBS에 대한 불길한 예감은 시청료 분리징수, 남영진 이사장 해임, 김의철 사장 해임과 박민 사장 임명 등으로 점차 현실화 되기 시작하더니, 엊그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 살벌한 실체가 확인됐다. 지금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히 방송장악을 위한 것이 아니라 KBS 자체를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간 KBS에서는 본 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해 시청률을 올리던 시사프로그램들이 와르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바뀌었고 9시뉴스는 완벽히 ‘땡윤뉴스’가 됐다. 170만에 이르던 9시뉴스 연시청자가 150만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최경영이나 홍사훈 같은 기자 출신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두었다. 다른 경제프로그램 진행자는 민감한 시사문제를 다루지도 않고 특별한 정치성향을 보이지 않는데도 그냥 잘렸다고 한다. 유튜브 100만 뷰가 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기자와 PD들이 생산하는 뉴스의 질로 경쟁하는 이른바 ‘사람장사’하는 언론업계에서, 특히 시청률로 먹고 사는 방송업계에서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KBS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KBS 박민 사장(오른쪽)과 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인 부위원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2023.12.18. 연합뉴스
18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KBS 박민 사장(오른쪽)과 방송통신위원회 이상인 부위원장이 인사를 하고 있다. 2023.12.18. 연합뉴스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모두 불법적으로 폐지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방송법에 따르면 “누구든 방송편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되어 있고, KBS 방송규약에도 “취재 및 제작 책임자는 방송의 적합성 판단 및 수정과 관련해 실무자와 성실하게 협의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여러 프로그램들이 이런 법과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됐다는 것이다. 이날 국정감사장에 나온 박민 등 KBS 고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명쾌하고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박 사장이 본부장에게 “(고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정필모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박민 사장 취임 이래 대대적인 보복성 인사를 통해 많은 기자와 PD들을 직무와 관련 없는 곳, 이를테면 시청자센터나 인재개발원 같은 곳으로 보냈다고 한다. 전 사장 밑에서 일했던 간부들을 수신료 징수하는 수신료국으로 전보발령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제2노조 조합원들은 프로그램에 참여시키지 말라는 녹취록도 등장했다.

인건비 삭감으로 공영언론 무릎 꿇리겠다는 무도함

그러나 현재 박민 사장의 KBS가 봉착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청료 분리징수로 인한 수입급감과 그에 대한 대책이다. KBS는 연간 1조 5000억 원의 예산으로 움직이는 초대형 기업인데, 그중 인건비가 5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방송사가 ‘사람장사’ 하는 언론업이란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KBS가 내년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분리징수로 인해 시청료의 37%가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그 대책으로 인건비 5000억 원 중 무려 1000억 원을 줄일 계획임을 밝힌 것이다. 박 사장은 (직원을 20% 자른다는 말이 아니고)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줄이고, (노조와 협의해) 임금 10%를 삭감하는 동시에 각종 수당을 없애고, 명예퇴직제를 도입할 것이라는 등의 방법론을 펼쳤지만 모두 실상을 호도하는 기만에 불과하다. 삭감하는 것이 실제 사람 수가 됐든, 그 사람이 제공하는 노동력이 됐든, KBS가 제공하는 방송의 질은 지금보다 20%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방송업은 사람장사 업종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박 사장과 그를 내려보낸 정권의 배후 인물들이 노리는 바는 간단하다. 연합뉴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밥통을 걷어찰 듯한 위협을 가함으로써 조직을 완전히 굴복시키려는 것이다. 그 결과 KBS가 국민의 사랑을 받든 말든, 보도의 질이 높든 낮든, 극보수성향의 일부 국민들이 만족하는 ‘그들만의 방송’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KBS 구성원들이 겪는 고통은 오불관언인 것이며 그로 인해 내부가 편을 갈라 싸우면 더 좋고 결국 망해도 좋다는 것 아닌가. KBS 전현직 구성원들과 일부 언론학계에서는 이 정권이 KBS를 극한의 궁지로 몰아 결국 KBS 2TV 정도는 사영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기도 하다. 박민은 그 하수인이라는 것이다.

‘솔로몬의 재판’이라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솔로몬 왕이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친모임을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이 아이를 둘로 갈라 각자 나누어 갖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친모가 울면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KBS의 친모는 누구인가. 통합징수를 하든 분리징수를 하든 국민들이 KBS 시청료를 내야 한다면 KBS는 국민의 것임이 분명하다.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방송통신위가 분리징수를 강행한다면 수신료 거부운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설사 그렇게 한다한들 국민이 KBS를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박 사장 등은 이미 KBS를 죽여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 KBS 구성원들의 생각은 어떤가. 솔로몬 재판정에 오른 아이는 그저 어른들의 선택과 판단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했지만, KBS 구성원들은 누가 KBS의 주인인지 충분히 판단을 내릴 만큼 어른이지 않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14일 박민 KBS 사장 대국민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 앞에서 박민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14. 연합뉴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들이 14일 박민 KBS 사장 대국민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 앞에서 박민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1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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