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RE100 요구하는데 거꾸로 원전 고집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주영 경제칼럼니스트
주영 경제칼럼니스트

‘RE100’이라고 있다. ‘RE100’은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위원회’가 주창한 개념으로 재생에너지를 뜻하는 ‘Renewable Energy’의 머리글자에 숫자 100을 붙인 것으로,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는 100% 모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겠다는 캠페인이다. 지난 20대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RE100’ 개념을 몰라 곤혹을 치렀다.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RE100’ 개념과 그 중요성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RE100’은 중요한 기후문제이기도 하지만 향후 우리의 생존이 걸린 중차대한 경제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는 대통령이 네덜란드 국빈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반도체 동맹’ 구축과 3건의 MOU 체결을 방문 성과로 발표했다. 초를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알맹이 하나 없는, 성과라는 단어 자체도 민망한 결과물이다. 우리 반도체기업들과 네덜란드 ASML은 이미 동맹관계나 다름없다. 11년 전 ASML이 자금난을 겪고 있을 때 삼성전자가 ASML 지분 3%를 투자하며 차세대 EUV(극자외선) 노광기 개발에 협력한 바 있다. 지분 투자만큼 확실한 동맹관계가 또 있던가?

‘사골 우려먹기식’ 네덜란드 국빈방문 성과 발표

그리고 이번에 발표한 MOU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다시 재탕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년 11월에 이미 ASML 베닝크 회장은 향후 한국 화성에 R&D(연구·개발)센터를 늘려나가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니 사골곰탕 같은 우려먹기 발표 아닌가.

그리고 ASML이 반도체 장비업체의 ‘슈퍼 을’로 불리지만, 내년부터는 우리 기업에 장비를 팔지 못하면 제대로 팔 곳도 없다. 현재 ASML의 매출 80%를 대만, 한국, 중국이 책임지고 있다. 대만이 약 38%, 우리 한국이 약 29%, 그리고 중국이 약 1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따라 당장 내년부터 ASML은 중국에 장비를 팔 수가 없다. 대통령이 굳이 가지 않았어도 반도체산업 분업 구조상 민간 기업들 간에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 차라리 가지 않았던 편이 훨씬 더 나았다. 가지 않았다면 주네덜란드 한국대사가 초치 당하는,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모를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과도한 순방비도 아꼈을 테니 말이다.

이미 끝난 일이긴 하지만 이번 네덜란드 방문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도 있었다. ASML의 장비 생산시설을 우리나라에 유치했다면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할 수 있었을 것이다. ASML 입장에서도 우리나라에 생산시설을 짓는 편이 수출 증대 및 비용 절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 EUV 노광장비가 그리 만만한 장비가 아니다. 한 대의 무게가 190t에 이르고 높이도 4~5m에 달한다. 수출할 때 모듈별로 나눠서 옮기더라도 최소 비행기 서너 대, 육상에서는 방진 특수시설을 갖춘 트럭 수십 대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에서 만들어 한국으로 보내는 것보다 한국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바로 납품하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더 용이하고 유리한 방법이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건배하고 있다. 2023.12.13 [공동취재] 연합뉴스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왕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빌럼-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 막시마 왕비와 건배하고 있다. 2023.12.13 [공동취재] 연합뉴스

재생에너지 요구하는 고객, 원전 고집하는 영업사원

그런데 우리나라에 ASML의 생산시설을 지을 수가 없다. ASML은 현재 전체 에너지사용의 90% 이상을 이미 재생에너지로만 사용하고 있다. 2025년까지 모든 생산과정에서 탄소를 제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2040년까지 ASML 장비를 사용하는 모든 고객사도 탄소 발생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30.2%로 목표를 잡았던 재생에너지 비중을 오히려 21.6%로 크게 낮췄다. 반면에 원전 비중을 23.9%에서 32.4%로 대폭 늘렸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으니 ASML이 제아무리 한국에 생산시설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가 한국에 생산시설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가 재생에너지 비중 축소, 원전 비중 확대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우리 경제는 머잖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이미 마이크 피어스 클라이밋 그룹 RE100 대표도 한국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보다 긴급하고 단호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경제 성장 잠재력이 크게 저해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실제로 BMW와 볼보 등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자동차 부품기업들과 맺었던 기존 납품 계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유럽의 완성차 업체들이 2025년까지 ‘RE100’을 충족한 부품을 납품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 우리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그 조건을 맞출 수 없어 납품 계약이 취소된 것이다. 앞으로 볼보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선 ‘RE100’ 실천 방안을 담은 ‘RE100 목표 이행계획서’를 반드시 제출해야만 한다. BMW도 ‘RE100 실천’과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갖추지 않을 경우 견적요청서를 아예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 세계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걷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재생에너지 산업을 박살내고 있다. 태양광 산업 전반에 대한 비리를 들여다보겠다며 전수 조사와 함께 대폭적인 예산 삭감, 금감원의 태양광 관련 부실대출 조사 등으로 태양광 산업 자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원전이든 재생에너지 산업이든 불법과 비리가 있다면 마땅히 엄중한 수사와 함께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태양광 산업 자체가 마치 불법 카르텔의 온상인 양 정치적 공격을 퍼붓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그 결과 실제로 우리 태양광 산업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한화큐셀의 음성공장이 가동을 중단했고, 1800여 명의 희망퇴직을 받는 등 대규모 감원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이 문을 닫을 정도면 다른 태양광 중소업체는 볼 것도 없다.

자본 유출 해외순방 그만하고 에너지정책 몰두하길

지난 12월 13일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폐막되었다. 수많은 정상들이 참석했지만 탄소배출국 세계 9위인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에너지 전환’에 대한 전격적 합의가 이뤄졌다. 전 세계가 탄소배출 0와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추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RE100’ 조건을 맞추지 못해 수출길이 전부 막힐 수도 있다. 아니 우리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이 ‘RE100’ 조건을 맞추기 위해 해외로 생산 공장을 옮겨야 할 수도 있다.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고 우리 기업의 뛰어난 인력과 기술이 해외로 유출된다면 결국 우리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 의미 없는 해외순방을 다닐 때가 아니다. 우리 경제에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 경제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금 당장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는 것이다. 원전발전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려야한다. 단순한 에너지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경제문제다.

영국과 미국에만 총 10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고 돌아온 자본 유출 해외 순방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 해외 순방비 578억 원을 펑펑 쓴 것도 문제 삼지 않겠다.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서 119:29로 참패를 당한 것도 문제 삼지 않겠다. 정치적 이념이 아닌 오로지 경제만 바라보며 우리 국익에 우선하는 에너지정책만 펴주시라.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대통령이 도대체 어느 나라 영업사원인 줄 모르겠다는 원색적인 비아냥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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