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들이 열광하는, 사소함에 비밀이 있다

홍종학 유튜브 경제스케치북 진행자
홍종학 유튜브 경제스케치북 진행자

애플의 포장 상자는 환상적이다. 백색의 상자에 애플의 로고가 새겨져 있는데, 아무 장식이 없으면서도 화려함을 뽐낸다. 충격 방지용이라기엔 불필요하게 크고 두껍다. 그래서 열기가 쉽지 않은데, 상자를 들고 가만히 있으면 제품의 무게에 의해 서서히 상자가 열린다. 성질 급한 사람들은 그 순간을 못참고 상자를 찢어서 열려고 한다. 꽤 튼튼한 상자는 쉽게 찢어지지 않아 무리한 힘으로 볼썽 사납게 상자를 망가뜨리고 나서야 제품을 꺼내볼 수 있다. 애플은 왜 포장 상자를 그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

동화 속의 요정이 되고자 하는 애플

아이는 애플 휴대폰을 갖고 싶지만 내색을 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한다. 부자집 아이들은 아이폰을 자랑하듯 사용하고 있지만, 아이는 통화만 가능한 저가 휴대폰을 내놓기가 부끄럽다. 눈치만 보기를 몇 달 째, 어느 날 술 한 잔 하셔서 기분이 좋은 아빠에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아빠가 덜컥 사주겠다고 하려는 순간 옆에 있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미뤄볼 생각에 제동을 건다. 엄마는 성적을 잘 받으면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미안하고 속상하면서도 또 돈 들어갈 걱정을 한다.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공부에 전념하지만, 성적이 생각대로 나오지는 않는다. 아이폰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지만 약속한 등수는 나오지 않고, 두세 번 실망하다가 마침내 약속한 등수를 확인할 때 아이는 환호한다. 엄마 아빠도 함께 기뻐하며 기꺼이 거금을 들여 아이에게 처음으로 비싼 아이폰을 사준다.

아빠와 함께 처음으로 애플 스토어에 가서 아이폰을 사고, 집에 와서 상자를 여는 순간을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애플 로고가 새겨진 백색의 상자를 살짝 떨리는 손으로 들었을 때, 상자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아이는 잊지 못할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는다. 성인이 되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최초의 신상 구매 순간이 아이폰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마치 시간이 멈춰진 듯 포장 상자가 슬로우비디오처럼 조금씩 내려가면서, 아이는 애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거꾸로 그 순간이 애플에게는 소비자에게 올가미를 씌어 또 한 명의 열광적인 애플빠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편집광이다. 그는 대강대강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의 상자를 보면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몇 번이나 저 상자를 열어 보았을까? 열리긴 열리되 아이가 감동에 빠지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 얼마인지를 계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문가들과 상의했을까? 심리학자를 동원하고 디자이너와 공학자를 닦달해서 시제품을 만들고 또 만드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이 보인다. 애플은 전자제품을 파는 회사가 아니다. 인생의 감동을 파는 요정이 되고자 한다. 좋은 기계를 만들어 파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한국 기업은 아이들이 왜 아이폰에 열광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뉴욕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한 손님이 앉아 있다.  2023. 12. 13. 연합뉴스 자료사진
뉴욕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한 손님이 앉아 있다. 2023. 12. 13.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스타벅스

스타벅스가 처음 미국에 등장했을 때, 스타벅스 커피는 쓰기만 했다. 그 이전 미국에서는 카페나 식당마다 특색있는 커피를 팔고 있었다. 카페에서 아침에 처음 내린 커피는 향이 은은하면서도 연하고 상큼한 맛을 낸다. 그런 커피를 마신 날은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오후가 되면 쓴맛이 진해지고, 일부 식당에서는 커피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하기도 해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반면 유럽식 커피 기계를 사용하는 스타벅스는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른 진하고 쓴 커피로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과연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인 기업이었다.

그래도 가끔 찾는 스타벅스 매장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주문할 때 꼭 고객의 이름을 물어보고, 커피가 나오면 이름을 불러서 주문한 커피를 건네주었다. 한국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 부르기 쉬운 이름을 지어내곤 했던 기억이 있다.

초기에 인기가 높지 않았던 시기에도 매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때문이었다. 자리 눈치를 주는 직원은 없었고, 늦게 온 사람들은 한 쪽에서 서서 커피를 마셨다.

어느 사이 스타벅스 매장은 언제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쇼핑센터 구경을 한참 하다가 스타벅스 매장이 나타나면 여유있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눈치보지 않는 매장의 매력이 서서히 위력을 발휘했다. 진한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연한 일반 커피는 싱겁게 느끼게 되고, 맛있는 커피와 안락한 쉴 곳을 제공하는 스타벅스 매장은 늘어만 갔다.

스타벅스는 스스로 커피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이 편하게 쉬면서 대화할 수 있는 유럽식 살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기업의 목표로 삼고 있다. 커피는 부수적이다. 그래서 귀찮지만 굳이 고객의 이름을 불러 친근하게 느끼도록 한다. 그렇게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온 듯한 느낌을 받은 후 다양한 좌석 중에서 골라 앉으면 된다.

스타벅스에 앉아 있을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지 못할 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낄 때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고객들 간의 시선이 마주치지 않도록 인테리어와 좌석 배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사람들의 시선이 부딪치지 않도록 좌석을 배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좌석 간 공간이 꽤 넓은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이유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기에 사람들은 스타벅스를 찾는다.

국내 기업 지분 인수 후 커피만 팔기 시작한 스타벅스

얼마 전 한국 스타벅스의 지분을 국내 기업이 모두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 공격적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고, 도처에 스타벅스 간판이 보인다. 매출액과 이익을 늘리기에 급급한 탓인지 직원들은 주문받기에 힘들어 보인다. 경쾌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미국 매장의 친숙함은 보기 힘들다.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인테리어를 고민했던 디자이너들도 대거 방출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빼곡한 좌석으로 채워져, 들어가면 숨이 막히는 스타벅스가 늘어나고 있다. 미국 본사와는 달리 커피만 많이 파는 가게가 되기로 작정한 것일까 ?

최근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이 대대적으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포장 상자 하나, 사람들의 시선 하나를 고민하는 경쟁 기업의 철학에 대해 논의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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