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 12.12때 군 통신 장악하듯 언론도 장악

'유언비어 금지' '언론정화'로 기자해직·언론통폐합

취임일 전후 조선·동아·경향 찬양기사로 지면도배

쿠데타에 분노한 시민들 앞에 언론들 반성 없어

1980년 9월2일 경향신문 3면 화려한 컬러지면에 게재된 '전두광' 대통령의 취임식 모습. "화합과 전진의 새 장 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밝고 소박한 미소 속에 새 시대의 웅지(雄志)가..."라는 제목의 찬양 기사가 실려 있다.
1980년 9월2일 경향신문 3면 화려한 컬러지면에 게재된 '전두광' 대통령의 취임식 모습. "화합과 전진의 새 장 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밝고 소박한 미소 속에 새 시대의 웅지(雄志)가..."라는 제목의 찬양 기사가 실려 있다.

“뭐가 그렇게 두렵나?”(이태신 장군) “지금 반란군이 군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가장 두렵습니다.” (부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12.12 쿠데타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에서 반란군에 맞서는 이태신 장군(정우성 연기)에게 부관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두광’ 보안사령관 겸 합수부장은 계엄사령관을 납치하고 총격적을 벌이기 직전 이미 통신망을 완전히 장악해 군 내부에서 오가는 정보는 물론, 진압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란군은 통신망을 통해 하나회 소속 장교들을 설득해 반란군에 가담시키고, 또 다른 장교들을 포섭하거나 위협해 진압군 편에 서지 못하도록 했다.

상관인 계엄사령관을 납치하고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광’은 군부를 장악한 뒤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취임해 이번에는 군 통신망이 아닌 언론까지 장악에 나섰다. 이듬해 1월 ‘전두광’은 보안사 신년하례에 참석해 “내가 권력의 실세라는 유언비어가 있는데, 북한의 남침 위협 속에서 이런 유언비어가 확산되어서는 안된다”며 ‘유언비어 근절’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언론사 사주들을 불러 회유·협박하고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김대중 내란음모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뒤집어 씌워 잡아가 고문했다. 5월 광주항쟁의 진실을 ‘불순분자들의 유언비어’라며 틀어막았다. ‘건전언론 육성’이니 ‘언론정화’라는 명목으로 300여명에 가까운 언론인들을 직장에서 쫓아냈으며 이른바 ‘언론통폐합’으로 언론을 완전히 장악해 나갔다.

마침내 ‘전두광’은 1980년 9월1일 대통령에 취임한다. 이날을 전후해 이미 ‘전두광’에게 장악당한 언론은 ‘전두광’에 대한 찬양과 아부 기사를 무한정 쏟아낸다. 대통령 취임을 약 일주일 앞두고 경향신문은 1980년 8월22일자 1면 톱에 “참신한 개혁의지로 새역사 창조” 제목의 기사를 냈다. 이날 경향신문 1면은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 기필코 수립”이라는 부제가 달린 톱 기사와 “전두환 대장 취임사 전문” “전두환 상임위장 당선 확실시” “부산·경남 지역도 전 장군 추대 결의” 등 ‘전두광’ 육군대장 기사로 도배됐다. 

 

전두환 미화의 '최고봉'을 찍었던 1980년 8월23일 조선일보 3면(좌)의 '인간 전두환' 기사와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9월2일 역시 취임을 미화하는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전두환 미화의 '최고봉'을 찍었던 1980년 8월23일 조선일보 3면(좌)의 '인간 전두환' 기사와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9월2일 역시 취임을 미화하는 조선일보 사회면 기사. 

다음날인 8월23일 조선일보는 언론 흑역사에 길이 남을 “인간 전두환”기사를 실었다.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운동이면 못하는 것 없고 생도시절엔 축구부 주장” “사(私)에 앞서 공(公), 나보다 국가 앞세워” “자신에겐 엄격하고 책임 회피 안해” 등 부제만 읽어봐도 조선일보가 훗날 내란음모·군사반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군사쿠데타 주모자에게 얼마나 낯부끄러운 찬양과 아부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어 8월2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두광’이 대의원 2525표 중 2524표(99.9%, 무효 1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자 다음날 “전두환 대통령 집무시작” “정직한 정부되도록 최선” “압도적 지지 당선” 등 제목의 기사로 1면을 도배했다.

취임식을 보도한 9월2일자 1면에서도 “정치인 세대교체·정계개편” “헌법 확정후 정치활동…계엄 해제 후 선거” “폐습 물든 정치인엔 정치 못맡겨 / 나와 내 주변 부정부패 용납 안 해” 제하의 기사가 실렸다. 또 사회면에서도 “기대 부푼 새 사회…경축 만발/전 대통령 취임하던 날/ 거리마다 아치·태극기 물결/ 교도소도 문 열리고 밤엔 불꽃놀이” “민주복지 약속에 힘찬 박수/최규하 전 대통령도 나와 ‘평화교체’ 악수” 등의 제목으로 온통 ‘전두광’ 대통령 취임을 축하했다. 

 

'전두광'의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둔 1980년 8월28일자 조선일보 1면(좌),  취임 다음날인 9월2일자 1면.
'전두광'의 대통령 취임을 이틀 앞둔 1980년 8월28일자 조선일보 1면(좌), 취임 다음날인 9월2일자 1면.

동아일보도 같은 날 1면에서 “폐습 물든 정치인엔 정치 못 맡겨” “전두환 11대 대통령 취임” 제목의 톱기사와 함께 “불신제거 부정추방/전 대통령 회견, 총화로 생존권 보전” 등의 기사를 실었다. 또 “역사의 새 장에 부푼 기대…전국 경축 일색” “거리엔 대형 아치·태극기 물결/복지사회 꼭 이뤄지기를” 등의 기사를 취임 축하 선물로 바쳤다. 

 

취임식이 열린 9월1일자에 실린 '전국 경축일색' 제목의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좌)와 1면 기사.
취임식이 열린 9월1일자에 실린 '전국 경축일색' 제목의 동아일보 사회면 기사(좌)와 1면 기사.

경향신문 역시 “정계개혁…정치인 세대교체 단행/구시대 잔재 청산, 정직한 정부로, 새 헌법 확정 후 정치활동 재개/ 계엄해제, 자유분위기 속 선거” “일, 전 대통령 취임 큰 기대” 제목의 용비어천가 기사가 같은 날 1면을 채웠다.

이날 경향신문은 거의 모든 지면에 ‘전두광’ 취임 축하 기사가 실렸다. 2면의 사설은 “새 역사…새시대 창조에의 길- 전두환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표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민적 협조와 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제목이 붙었다. 또 2~3면을 모두 털어 “깨끗하고 서로 믿는 정의로운 새 사회 건설-전두환 대통령 취임사 전문” “생존권수호 위해 국민적 결의·단합 요청…대학 학문 자유 보장하되 질서파괴 불용” 등의 기사를 올렸다.

사회면에서는 “온 겨레 축복 속 ‘새 시대가 열렸다’” “영부인과 나란히 입장, 환호에 답례/ 민주복지에의 소망 영근 ‘소명의 광장’” “최규하 전 대통령도 참석…경축무드 절정/잠실체육관 주변에 천여마리 비둘기떼” “휘황한 청사초롱 ‘새 시대 밝혀’” 등의 기사로 대대적인 '축하 분위기'를 국민에게 전했다. 

경향은 9월 2일자에도 3면을 털어 “화합과 진전의 새 장 열었다- 전두환 대통령의 밝고 소박한 미소 속에 새 시대의 웅지(雄志)가…”란 제목의 당시 정치부장 기사를 화려한 컬러 사진과 함께 실었다. 보도된 기사의 양, 지면의 양만으로 보면 경향신문이 당시 '전두광' 대통령 취임 찬양의 선두였다고 할 수 있다. 

 

경향신문 8월22일자 1면 "참신한 개혁의지로 새역사창조" 제목의 기사(좌)와 '온 겨레 축복속 "새 시대가 열렸다"' 제목의 9월1일자 사회면 기사.
경향신문 8월22일자 1면 "참신한 개혁의지로 새역사창조" 제목의 기사(좌)와 '온 겨레 축복속 "새 시대가 열렸다"' 제목의 9월1일자 사회면 기사.
경향신문 9월1일자에 1먼에 실린 '전두광' 대통령 취임식 기사(좌)와 같은 날  취임 경축 리셉션을 다룬 사회면 "휘황한 청사초롱, 새 시대 밝혀" 제목의 기사.
경향신문 9월1일자에 1먼에 실린 '전두광' 대통령 취임식 기사(좌)와 같은 날 취임 경축 리셉션을 다룬 사회면 "휘황한 청사초롱, 새 시대 밝혀" 제목의 기사.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3개 신문의 취임 기사는 대부분의 비슷한 제목이 달려있고, 취임 축하 분위기를 전달하는 기사들도 ‘누가 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축하하는지’ 경쟁하듯 온통 미화와 찬양하는 기사 일색이다. 북한 ‘최고 존엄’을 찬양하고 미화하는 신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얼마 전 자진 사임한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언급한 ‘공산당 언론’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세 개 신문 모두가 마치 누군가의 지시라도 받은 듯 ‘전두광’ 대통령의 ‘4대 국가지표 – 민주의 토착화, 복지국가 건설, 정의사회 구현, 국민정신 개조’를 별도로 뽑아 홍보하기도 했다. ‘전두광’ 정권 말기에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일부 젊고 용기있는 기자들이 정권의 비리와 부패를 파헤치고 1988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기 전까지 언론은 이런 모습이었다.

‘전두광’ 취임식인 9월 1일 전후 신문들을 보면 과연 이것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인가 아니면 정권 기관지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언론들은 12.12 쿠데타와 광주민중 학살을 통해 권력을 잡은 ‘전두광’이 대통령에 취임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찬양하고 협조했던 것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경향신문은 훗날 ‘전두광’ 세력이 군사반란·내란음모 혐의가 확정돼 사형·무기징역 등의 최종 선고를 받은 뒤에도 이 역사의 죄인을 찬양하고 미화한 것에 대해 한 번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다. 조선·동아는 그보다 앞서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저지른 친일 행적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본 많은 시민들은 이번에 40여년 전 벌어진 ‘전두광’ 일당의 군사쿠데타와 이후 신군부 정권의 출현까지 한국 현대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유튜브에도 12.12 쿠데타 이후 벌어진 일들을 담은 방송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시청자들도 몰리고 있다.

시민들은 그 반란군의 후예들이 단죄받지 않고 오히려 호의호식하면서 아직도 한국의 정치·사회를 휘어잡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 관련 기사나 유튜브에 달린 댓글, SNS의 글에 이런 분노가 담겨있다. 그런데 분노해야 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 때 ‘전두광’ 일당을 미화하고 찬양했던 언론이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전두광’의 후예들을 지금 여전히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번 기레기’는 ‘영원한 기레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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