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대차대조표〉 글에 담긴 경고와 격문의 이중성
국힘 필승을 지상과제로 제시하는 출사표로 읽어야
“내년 총선 지면 대통령 임기와 상관 없이 물러나야.”
조선일보의 주필 출신 칼럼니스트 김대중 씨의 21일자 칼럼 <4월 총선 대차대조표>에 대해 조선일보의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칼럼이라는 해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패배하면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한다.” “레임덕이 문제가 아니라 임기와 상관없이 물러나는 것만이 ‘선장(船長) 없는 나라’의 혼란과 참담함을 면하게 하는 길이다.”
그는 윤 대통령에 대해 “애국심이 있다면 임기를 구실로 이런 난국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기 퇴진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그렇게 해석되길 바라는 표현이다.
이 글을 종일 많은 사람들이 퍼날랐다. '아직도 한국사회에 영향력이 큰 그의 칼럼'의 위력이나 직설적인 글의 내용, 특히 그것이 윤석열 정부의 강력한 우군이자 후견인인 조선일보의 지면에서 나온 얘기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를 조선일보-최소한 김대중 씨-의 ‘윤석열 손절’ ‘윤석열 탈출’의 신호로 풀이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한 면만으로 보는 것은 과잉 해석이며 오독
그러나 이를 그렇게(만) 해석하는 것은 과잉이자 이 칼럼이 얘기하는 두 면 중의 한 면만을 보는 것일 수 있다. 이 칼럼은 사실은 한 면을 얘기하면서 오히려 반대편을 얘기하려 한 것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의 글은 윤석열 정권, 특히 윤 대통령에게 경고를 담고 있지만 그와 함께 ‘보수 유권자의 총단결’을 겨냥한 선동이며 '격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나라가 결딴 나는 것을 막으려면 이 나라 보수 진영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것이며, 그래서 “한 표의 날이 4개월 2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마지막 문장은 카운트다운을 하듯 윤석열 정권에 대해 목표를 오로지 총선 승리에 맞추라는 지침으로 읽힌다.
총선에서 국힘당이 과반 의석을 얻지 못하면 기고만장한 좌파 세력이 폭주하고 이들의 퇴진과 탄핵 요구로 인해 무정부 상태에 빠지며, 운동권 친북 세력이 기승을 부리게 되는 반면 ” “과반을 확보하게 되면 안정을 확보하고 나라를 이끌어가는 동력을 얻게 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총선 결과를 빛과 어둠으로 대비시키는 이분법으로, 총선을 사생결단의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출사표와도 같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씨는 늘 이 같은 칼럼을 써 왔다. 그는 한국의 이른바 보수층 사이에서 중대한 정치적 국면에서 상황 진단을 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이로 군림해 왔다. 적잖은 이들에게는 그의 글이 '교시'처럼 읽힌다. 위의 칼럼을 퍼나른 어느 독자의 “온 국민이 꼭 읽어볼 내용인 듯하여 공유하오니 주위에 많이 많이 공유해주세요”라는 말이 그의 글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총선 필승에 대한 '훈도'는 지난해부터 이미 꾸준히 해 왔던 것이다. 작년 9월 27일자 칼럼 <윤 대통령, 총선 승리 전까지는 ‘임시 대통령’이다>는, 제목에서부터 도발적인 글에서 그는 “윤석열 타도 위한 좌파 결집이 이뤄지고 있다” “좌파 척결과 정권 재창출(2027년 대선 승리)은 총선에서 승리해야 가능하다”면서 “사방이 지뢰라는 생각으로 실책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고 훈수를 놓고 있다.
올해 1월 31일에 다시 <총선 승리와 윤 대통령의 결단>이라는 칼럼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명실상부한 대통령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는 것을 전제로 2년 남짓이다. 그의 임기는 2027년 5월이지만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까지는 그는 ‘임시 대통령’ 처지고 선거에서 지면 그나마도 ‘식물 대통령’으로 끝난다. 그에게 있어, 국민의힘에 있어, 무엇보다 보수·우파 국민에게 있어 내년 총선거는 그렇게 결정적인 정치적 갈림길이다”고 썼다.
5월 16일에는 다시 <총선을 ‘윤석열 재신임’ 투표로>에서 “내년 총선은 단순히 윤 대통령과 국힘당의 앞날을 결정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 선거에서 지면 ‘윤석열’ 이름 석 자는 역사에서 존재감을 잃을 것이고 이 나라는 다시 좌파의 늪에 빠지게 된다”고 더욱 어조를 높였다. “내년 총선에서 지면 윤 정권은 사실상 일할 여지가 없어진다”고 해 사실상 21일자 칼럼의 '전편'과도 같은 논지를 폈다.
지난달 10일자 <이재명의 포옹>이라는 칼럼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한판 승부는 이제 총선 투표장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면서 “여기서 지면 윤석열 정권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다”고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윤석열에 대한 훈수의 자기모순
역대 선거 때마다 그의 총선 훈수와 지도는 집요했다. 지난 2020 총선을 앞두고도 일련의 칼럼을 통해 선거의 중차대한 의미를 제시하고 필사적인 승리 각오를 주문했다. 총선을 10개월이나 남겨둔 시점인 2019년 6월 18일자 칼럼에서 “좌파의 존폐가 이 선거에 달렸으며 문재인 정권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우리의 삶과 안보와 미래를 지키기 위해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썼다. 다시 선거 3개월 전인 1월 14일 칼럼에서 “4·15는 단지 국회의원 선거가 아니며 대한민국 미래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갈림길로, 좌파 장기 집권과 주류 교체라는 ‘좌파 혁명’의 길을 열어줘선 안 된다”고 ‘비장한’ 결전을 주문했다.
그는 무엇을 위해 '윤석열 조기 퇴진론'까지 불사하면서 총선 필승론을 펴는 것일까. 5월 16일자 칼럼에서 ‘윤석열 1년’을 평가한 대목에서 그 큰 이유가 설명된다. “나는 윤석열 정권 등장의 가장 두드러진 의미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의 탄생과 존재 가치를 이념적으로 부정하는 좌파의 활개로부터 나라를 자유·민주·법치·공정·정의의 궤도로 복귀시키는 보수(保守)의 동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윤 정권의 시대적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과 보수에 의한 자유 민주 정의의 궤도 회복을 지상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로서는 대통령 당선과 함께 국회 과반 확보가 반드시 쟁취해야 할 절대적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과 과제와 목표 앞에서 지금의 총선 판세와 구도가 결코 여당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윤 대통령에게 필사적인 각오와 함께 승리의 요령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5월 16일자 칼럼에서 "‘거야’(더불어민주당)는 그간 여러 차례의 비리·부정·위선·거짓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온갖 부정 비리 거짓에 흔들릴 때 국힘당과 ‘용산’(집권 세력)은 저들의 악재를 호재로 이용하기는커녕 스스로의 문제들로 동반 하락(?)하는 무기력을 보여 왔다”고 나무라는가 하면, 1월 31일자 칼럼에서는 과거 대통령이나 대권 주자들은 기존의 정치 조직에 올라타기보다 ‘자기 사람’을 심고 ‘자기 당(黨)’을 만들어 선거에서 이겼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유혹에 빠져선 안 되는 경험과 인맥이 없는 정치 외인(外人)이므로 섣불리 공천 파란을 일으키기보다 공천을 당에 맡겨라”고 훈수를 하고 있다. 김대중 씨의 노심초사가 읽힌다.
그러나 김대중 칼럼이 드러내고 있는 본질적 문제는 사실 그가 경고를 보내고 있는 윤석열의 지금은 자신의 훈도를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충실히 따랐던 결과라는 데 있다. 그는 대통령 당선 직후 윤 대통령에게 < ‘어쩌다’ 대통령 된 윤석열, 잃을 게 없다>를 통해 “‘좋은 대통령’ ‘훌륭한 대통령’ 모두 좋다. 그러나 그에 우선하는 것은 좌파 5년을 바로잡고 헌법에 따른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자유·민주적 신념을 저해해온 각종 사회 권력을 정리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니 민노총·전교조·참여연대 등 이른바 사회 권력 이동이 수반하지 않은, 정치권력만의 독자적 장악으로는 명실상부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고 할 수 없으며 정권 교체는 좌파 정권의 근간이 돼 온 사회 권력을 되돌려놓을 때 완성되는 것이므로 "당신의 사명은 문재인 5년을 ‘청소’하라는 것"이라고 각인시켰다.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에 갇혀서는 안 된다며 “부담 없이 ‘윤석열다운 정치’를 한번 해보라”고 한 것이 바로 그였다.
윤석열은 그의 주문대로 해 왔다. '국민통합'이라는 흔한 수사조차 거의 쓰는 일 없이 반대파는 물론 찬동하지 않는 이들까지 ‘좌파’로 몰며 전쟁을 벌여 왔다. 김대중 씨 자신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온 윤석열에 대해 이제는 '윤석열 식'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정도로는 모자랐다고 말하는 것인가.
2020년 총선을 20여 일 앞둔 3월 24일자 <황교안 유감>에서 “그렇다면 지금 야당이 기로에 선 마당에 못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라고 총선을 위해 못 할 일이 없다고 부추겼던 그가 이제는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리라고 하는 것인가.
10월 10일자 칼럼 <이재명의 포옹>에서 그는 이 대표에 대해 “그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가 치밀하고 저돌적이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 ‘막가파’인 것은 일찍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고 토로한다. 그 말을 빌자면 '윤 대통령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것의 실토인가.
2020년 총선을 앞둔 칼럼에서 그는 “문 정권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기왕에 보았듯이 이들은 안면몰수에 능하고 실책을 기회로 전환하는 데 특이한 기술을 갖고 있다. 여권은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 깔고 총선에 임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이는 윤석열의 상왕(上王)을 자처하는 듯 행동지침을 내리고 있는 그의 말에 대해 되돌려줘야 할 말일 듯하다. 스스로 한 말을 뒤집는 자기부정의 모순에 빠져 있는 그의 글을 윤 대통령이 읽는다면 ‘김대중의 충실한 장학생’이었던 자신이 '불량 학생'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한 혼란에 빠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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