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무죄다, 검檢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
"들풀은 밟히고 꺾여도 기어코 꽃을 피워낸다"
다산·추사 유배 떠올리며 충북 진천에서 쓴 책
세밀화가인 아내 이상숙과 박순찬 화백의 그림도
“추사가 유배되었던 제주 해안에서 여리한 금잔옥대(수선화)가 눈보라에 맞서 결국 고아한 꽃을 피워냈듯, 들풀은 밟힐수록 또다시 일어나고, 제 몸이 꺾여도 기어코 꽃을 피워냅니다. 이런 야생화의 향기가 만리에 퍼지는 날, 망나니 칼춤추는 무뢰한 자들의 시간도 결국 끝나지 않겠습니까. 꽃은 역천(逆天)의 무도함을 허용하지 않으니까요. 첫 책이 나왔습니다.”
이성윤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17일 ‘다시 야생화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가 첫 책을 냈다. 제목은 <꽃은 무죄다>고, 부제는 <검사 이성윤의 검檢날수록 화花내는 이야기>다. 아마존의나비 간.
어떤 책일까? 조국 전 법무장관과 함께 검찰 개혁의 선봉에 섰다가 검찰의 핍박을 받고 있는 자신을 꽃에 비유하며 무죄임을 알리는 책일까? 검찰의 폭력이 겁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꽃의 힘으로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책일까?
출판사의 책 소개를 보자. “현재 겪는 화禍에 화火내는 자는 스스로의 허물을 덮으려는 사람이다. ‘검檢 날수록 화花내는’ 날, 만 리를 날아 세상을 품는 사람은 거짓도 허세도 없는 꽃을 통해 자신을 올곧게 세운다. <꽃은 무죄다>는 검사 이성윤이 아내와 함께하는 동행의 시간을 위해 ‘꽃개’ 역할을 자임한 후, 꽃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꽃을 통해 살피게 된 세상사를 담담히 서술한 책이다.”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간다. 꽃을 통해 윤석열 검찰의 무도함을 얘기하고, 무도한 검찰을 고발하면서도 꽃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책이다. 꽃을 보며 자신을 성찰해온 기록이기도 하다.
그가 책에 쓴 프롤로그 첫 문장은 ‘나는 종종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를 찾는다’이다. 그는 그곳에 가면 늘 정약용의 ‘목민정신’을 떠올렸다. 정약용을 생각하다 보면 둘째 형 정약전도 떠올랐다. 그가 떠올린 정약전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다.
정약용 형제는 유배자였다.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 경상도 장기 등지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귀양살이를 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의 책을 썼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생태 전문서인 <자산어보>를 썼다.
그는 다시 ‘제주도 유배지에서 모진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피워낸 수선화를 사랑했던 추사 김정희의 마음과 마주한다.’ 김정희는 유배지에서 추사체를 만들어냈다. 김정희는 세 차례, 모두 12년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그 역시 지금 ‘유배지’인 충북 진천의 법무연수원에 있다. 그는 이 책을 지으며 자연스레 ‘세 유배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정약전이 물고기를 만난 것처럼, 김정희가 수선화를 만난 것처럼 풀꽃을 만났다.
“나는 진천의 법무연수원 생활 중에 틈나는대로 산책길을 찾았다. 이 정부에서 밀려난 바로 그곳에서 나는 반가운 벗들을 만났다. 산책길에서 내게 몸을 흔들어 미소를 보인 풀꽃들이 있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꼭 정치라는 렌즈를 통해 보지 않아도 될 성싶다. 꽃을 사랑하고 식물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는, 이 책은 실용서이자 교양서로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그가 꽃 전문가가 된 배경과 세월이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세밀화가인 아내 이상숙 씨와 함께 산에 올랐다. 꽃이 보이면 반색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꽃 사진이 어느날 헤어보니 무려 수만 장이었다. 사진만 찍은 게 아니다. 그는 틈만 나면 식물도감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꽃과 관련한 지식을 늘려 나갔다. 그의 말을 빌면 ‘때로는 사법 시험 준비하던 노력과 열정이 필요했다.’
‘꽃개’라는 별명은 어떻게 얻었을까. 산에 오를 때마다 아내는 남편에게 봄에는 어떤 봄꽃을, 여름에는 어떤 여름꽃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매번 기어이 찾아냈고 ‘헌화가’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으쓱했다. 아내는 그런 그에게 ‘꽃개’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꽃 탐지견’이라는 뜻이다.
아내 이상숙 씨 역시 전문가다. 취미로 꽃 그림을 그리다 그걸 모아 책을 내기도 했으니 명실공 전문가다. 박순찬 화백이 삽화로 그린 꽃 그림도 눈에 띈다. 책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 동시에 깔릴 예정이다. 이성윤 검사와 함께 하는 북토크도 준비했다. 출판사측은 한정된 좌석 때문에 사전 신청을 받아 무작위 추첨으로 시민들을 모실 계획이다. (맨아래 북토크 일정표)
이성윤 '작가'는 전북 고창에서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다녔다. 장학생으로 선발된 덕택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 서울지검 검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초임 검사로서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수사했고 그 이듬해 삼풍백화점이 무너지자 또다시 수사에 참여했다.
‘김학의 출국 금지 관련 수사’를 막았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무도한 자들의 항소로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이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석열 전 총장 징계와 관련된 사건 자료’를 법무부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검찰과 공수처 수사를 받는 중이다.
지난 9월 조국 전 장관의 북콘서트에서 발언한 ‘짧은 덕담’까지 구실이 되어 징계 절차에 돌입했으니 재판 1건, 수사 1건, 징계 3건 도합 5관왕인 셈이다.
이성윤의 ‘짧은 덕담’…틀린 말 했나?
그는 지난 9월 6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조국 전 장관의 저서 <디케의 눈물> 북콘서트에서 ‘짧은 덕담’을 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조국 전 장관이 혜안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때 검찰개혁이 제대로 성공했다면 오늘같은 무도한 검찰 정권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국 장관께서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이런 엄청난 고초를 겪으시는 것을 그저 바라봐야만 해 너무나 안타깝고 힘들었다. 저는 조국 장관 모시고 검찰개혁 선봉에 선 적도 있고, 윤석열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로서 30년간 부대끼고 그 사람의 무도함을 누구보다도 옆에서 많이 지켜봤다. 윤 전 총장의 무도함과 윤석열 사단은 마치 전두환 하나회에 비견될 정도로 윤석열 라인의 수사방식, 수사방법의 무도함은 나중에 제가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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