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는 파리 한 마리가 도자기 가게를 부술 수 있다고 말한다. 찻잔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는 파리가 어떻게 도자기 가게를 부술 수 있을까? 먼저 파리가 황소 귓속으로 들어가 윙윙대기 시작한다. 황소는 두려움과 분노로 날뛴다. 황소가 사방팔방 날뛰는 와중에 도자기 가게가 부서진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2001년 9.11테러와 그 이후 미국의 보복을 그런 사례로 들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미국이라는 황소를 자극해서 중동이라는 도자기 가게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지금 중동에 또 다시 ‘파리와 황소’의 재앙이 벌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대대적인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분노한 이스라엘은 즉각 피의 보복에 나섰다.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를 융단폭격하고 있다.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를 기습적으로 투입하는 제한적 지상전도 벌이고 있다. 사상자가 2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면적인 지상전이 벌어지면 참극은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이웃 이슬람 국가들이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다. 이슬람권의 맹주 중 하나인 이란이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인 헤즈볼라를 앞세워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 이란의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도 결실을 앞두고 있던 이스라엘과의 관계정상화마저 중단한 채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했다. 이집트와 요르단, 레바논, 카타르, 바레인, 모로코, 튀르키예 등 범이슬람 지역으로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하마스라는 파리 한 마리가 이스라엘이라는 황소를 분노케 하고, 덩달아 이슬람권의 황소 떼가 흥분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5차 중동전쟁 발발의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하마스는 왜 이스라엘을 도발했을까? 팔레스타인의 일개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세계 18위의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16년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다. 툭하면 물과 전기와 식량과 의약품을 차단했다. 테러리스트 소탕을 빌미로 시도 때도 없이 군사작전을 펼쳐 숱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자지구의 실업률은 50%에 육박했다. 가자지구는 ‘창살없는 감옥’으로 변해버렸다.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가 폭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라리 교수는 이스라엘의 잘못을 성찰한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 ‘하마스 공포는 포퓰리즘의 교훈(The Hamas horror is also a lesson on the price of populism)’을 통해 무엇이 하마스 사태를 야기했는지를 분석했다.
하라리 교수는 먼저 이스라엘의 오만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이 그동안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보여온 우월감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와 국민은 우리가 팔레스타인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믿었다. 그들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화해를 포기하고 수십 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점령 하에 뒀다. 그런 방식에 대해서 비판할 여지가 많다.”
하라리 교수는 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포퓰리즘을 꼽는다. 네타냐후 총리가 무능하고, 사익을 추구하고, 책임 질 줄을 모른다고 비판한다.
”포퓰리스트 독재자인 베냐민 네타냐후가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는 PR(홍보)의 귀재이지만 무능한 총리다. 국익보다 사익을 더 추구했다. 나라를 분열시키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다져왔다.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할 때 자격보다는 충성심을 따졌다. 모든 성공은 자신의 공으로 돌리면서도, 실패에 대한 책임은 진 적이 없다. 진실을 말하거나 진실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라리 교수는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각자가 어떤 생각을 갖는지 관계없이 포퓰리즘이 이스라엘을 부식시킨 방식은 세계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에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대한민국을 직격하는 경고다.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하라리 교수의 비판을 읽다 보면 누군가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네타냐후 총리의 데칼코마니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라리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과의 화해를 포기한 지 오래다. 오락가락하는 포퓰리즘 이념 공세로 나라를 부식시키고 있다.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할 때 자격보다 충성심을 따진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네타냐후 총리와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섬뜩한 정도로 유사하지 않은가. 내친 김에 윤 대통령의 위험하고 삿된 행보를 구체적으로 꼽아보자.
윤 대통령은 신냉전 행보로 지정학적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후보 시절엔 북한을 겨냥해 “킬체인으로 선제타격”, “북한은 우리의 주적” 운운하더니 대통령 취임 이후엔 일본 자위대까지 끌어들인 한미일 군사훈련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4월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해협 문제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으로 중국 외교부장으로부터 “대만 문제에 대해 불장난을 하면 타죽을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지난 10월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거론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탄날 것” 이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입이 한반도에 신냉전의 먹구름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극우 이념 공세로 국민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민주와 진보와 야당 진영을 겨냥해 “종북좌파 세력 척결”을 외친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철학이 바로 이념”이라고 말했다. 며칠 전엔 반대로 느닷없이 “이념논쟁 멈추고 민생”을 외쳤지만, 실질적인 행동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육사 내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실을 철거하는 작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홍범도와 안중근, 이회영, 김좌진, 지청천, 박승환, 이범석 등 독립투사 7인의 역사를 육사에서 지우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익추구로 공정과 상식과 정의를 허물고 있다. 윤 대통령 가족의 이른바 ‘본부장 비리(본인과 부인과 장모 비리)’ 혐의는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윤 대통령 본인의 대장동 개발 관련 수사 무마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허위 경력과 논문표절, 장모 최은순 씨의 양평 공흥지구개발과 통장 잔고 위조와 저축은행 대출 특혜 등 ‘범죄 백화점’ 수준의 의혹을 사고 있다. 최근엔 서울-양평고속도로가 대통령 처가의 땅이 있는 쪽으로 설계 변경된 것과 관련해서도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책임질 줄을 모른다. 꽃다운 청춘 159명이 압사를 당한 10.29 이태원 참사와 집중호우 대처 부실로 14명이 수몰을 당한 오송 참사,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 중 숨진 채수근 상병 사건 등 참사가 줄줄이 이어졌지만 윤 대통령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때는 온열질환자 100여 명이 발생하고 여러 나라 대표단이 조기 철수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샀지만, 전북도에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강서구청장 보궐 선거의 경우 대법원 판결 3개월 밖에 안 된 범죄자를 사면 복권해 후보로 내세워 참패했음에도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과 ‘데칼코마니 행보’를 보여온 네타냐후가 지금 어떤 상황을 맞고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수만 명이 살육을 당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여러 도시가 잿더미로 변하고, 새로운 중동전쟁이 발발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의 참극을 통해 배워야 한다. 파리 한 마리가 황소를 자극해 도자기 가게를 부술 수 있다는 하라리 교수의 경고를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중동에서 나는 전쟁이 한반도에 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만일 윤 대통령이 오만과 불통과 포퓰리즘의 리더십을 바꾸지 않으면 한반도에서도 큰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그 무서운 파국을 어찌 감당하려 하는가.
(이 칼럼은 <더칼럼니스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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