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유동규, 검사와 불구속 '딜' 하더라"

김학의 유죄 증언 번복, 대법 파기 환송 근거

'검찰, 공판 전 면담이 증언 영향 주는 관행' 제동

조국 재판도 증인 사전 면담으로 신빙성 문제점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는 대장동 재판에서 증인의 ‘오염된 진술’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 기획본부장이 진술서를 통해 증거인멸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해 재판장이 “피고인이 구속 후 검찰과 ‘딜’을 했던 정황이 있다”고 지적한 데 이어, 남욱 변호사도 출소 직후 “그동안 진술 못한 것이 있다”며 기존 입장에 반하는 진술을 쏟아내는 데 대해 상대 변호인들이 “진술 오염 가능성”을 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구속 만료 석방을 전후해 기존 입장을 전면 변경하고 폭로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남욱 변호사. 연합뉴스
최근 구속 만료 석방을 전후해 기존 입장을 전면 변경하고 폭로성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남욱 변호사. 연합뉴스

재판장 “유동규, 검사와 불구속 ‘딜’하더라”

지난 11월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유 전 본부장의 사실혼 배우자 A씨의 증거인멸 사건 공판에서 재판장은 유동규 전 본부장이 “교사행위를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진술서를 제출했다”고 밝힌 뒤 이러한 입장 변화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장은 “유 전 본부장 수사기록을 보니 자신이 구속된 뒤 검찰과 딜을 하더라”며 “휴대폰을 갖다줄테니 불구속 수사하자고 하면서 휴대폰을 지인에게 맡겨놨다는 부분이 나온다”고 밝혔다. 유 전 본부장이 검찰에게 증거인멸 교사 사실을 인정하는 대가로 불구속 재판을 약속받으려고 한 정황이라는 것이다.

 

대장동 민간개발업자 남욱 씨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을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2.11.28. 연합뉴스
대장동 민간개발업자 남욱 씨가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을 받는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2.11.28. 연합뉴스

남욱 증인 출석, 다른 피고 변호인들 일제히 반발

또한 남욱 변호사는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한 직후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 ‘대장동 재판’에 출석해 “검찰 조사에서 사실대로 진술 못한 부분이 있는데 법정에서 말하도록 하겠다”며 “2015년 2월부터 천화동인 1호 지분이 이재명 (성남)시장 쪽 지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폭로성 진술을 이어갔다.

검찰이 대장동 사건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는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수수 사건 공판에 유동규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하려고 하자 다른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일제히 “전면 재수사로 연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남 변호사 등의 진술이 검사의 회유·압박 등으로 오염됐을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더욱이 검찰이 증인채택을 강행해 28일 열린 재판에 남 변호사가 증인으로 출석하자 김만배 씨 측 변호인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회유, 압박, 답변 유도, 암시 등을 받았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남 변호사의 최근 검찰 진술은 절박한 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서 나온 진술일 가능성이 높고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진술 신빙성을 강하게 문제삼았다.

 

1억6천만원대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9.5.16. 연합뉴스
1억6천만원대 뇌물수수·성접대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19.5.16. 연합뉴스

檢 증인 사전 소환 관행 제동 건 ‘김학의 파기 환송 판결’

김만배 씨 등의 변호인들이 ‘진술 오염 가능성’을 이유로 들어 남 변호사의 증인 출석을 반대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삼는 근거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판례’다. 사업가 최 모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 재판에서, 최씨는 검찰 조사와 1심 때 진술을 뒤집고 항소심부터 김 전 차관에게 불리한 증언을 내놓기 시작해 김 전 차관은 항소심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이후 최씨가 항소심 증인신문에 앞서 검사와 따로 면담을 한 사실이 드러나 대법원은 2021년 6월 10일 “검사가 증인신문 전에 증인을 소환해 면담했다면 회유나 압박 등으로 증인의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검사가 증명하지 못하면 증인의 법정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공판에서 증인신문할 사람을 검사가 미리 수사기관에 불러 면담하고, 이후 해당 증인이 법정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 검사가 회유·압박·답변 유도·암시 등으로 증인의 법정진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이 담보돼야 한다”며 파기 환송의 이유를 밝혔다.

이 판결은 법조계는 “검찰이 공판에 앞서 증인을 소환·면담함으로써 증언 내용에 영향을 주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20년 6월 19일 열린 3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6.19. 연합뉴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20년 6월 19일 열린 3차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0.6.19. 연합뉴스

조국 전 장관 재판에서도 문제된 ‘증인 사전 면담’

이에 앞서 조국 전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재판에서도 ‘진술 오염’이 크게 문제가 된 바 있다. 2021년 5월 8일 열린 첫 공판에서 이인걸 전 특검반장과 이모 특검반원이 증인 출석 전 ‘사건 기록 열람’을 이유로 검사실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태연하게 밝히자 당시 재판장이었던 김미리 부장판사는 "원래 그러는 것이냐.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김학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 환송 결정이 있기 직전인 6월 8일 2차 공판에서도 이 모 특검반원이 진술 전 검찰을 방문했던 사실이 밝혀지자, 김 부장판사는 6월 19일 3차 공판을 열자마자 “검찰 쪽 증인이 법원 출석 전 검찰에서의 진술조서를 열람한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이를 자제해달라”며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특수성이 있다. 검사가 신청한 증인들은 일반인이 아니라 검사이거나 수사관으로 장기 재직한 인물들이고 참고인 조사도 마쳤다”며 “그래서 자칫 잘못할 경우 진술 회유의 의심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 사건과 달리 매우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검사도 이 점을 유의해 증인 사전 접촉을 피해달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김학의 사건’ 대법원 판례와 조국 전 장관 재판에서도 나타난 ‘진술 오염’에 대한 사법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따라, 구속 만료 석방을 전후해 기존 입장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발언들을 이어가고 있는 유동규 전 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의 증언과 진술이 재판부에 의해 어떻게 판단될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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