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맞아 가장 필요한 목소리

뉴스타파 역작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기억하고 진실 밝혀야

인권과 사회정의, 차별과 혐오 반대 위해서도

뉴스타파는 민들레와 함께 거의 언제나 감탄하면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언론 중에 하나다. 너무 많은 뛰어난 탐사취재와 보도들이 있지만 근래에도 봉지욱 기자가 집요하게 추적한 대장동의 진실, 시민단체들과 협업한 검찰 특활비에 대한 보도들은 정말 대단하고 다른 어떤 언론에서도 볼 수 없는 탁월한 성과였다. 다른 언론들이 이 같은 취재와 보도를 하지 못한다면, 대신 ‘뉴스타파 받아쓰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이다. 조중동 받아쓰기는 좀 그만하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근래 가장 인상 깊고 중요하게 본 뉴스타파 작업은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4화 – 민간인 학살>편이었다. 특별페이지도 있다.(<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이것은 지난 3년 동안 이루어진 <당신이 보지 못한 한국전쟁> 시리즈의 최신편인데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이해 공개했다. 따라서 4편을 보고서 여유가 되면 지난 1~3편도 찾아보면 더욱 좋다.

한국전쟁은 역사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전쟁 중에 하나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특집은 그동안의 피해 신청과 조사 결과를 담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이 학살의 양상과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먼저 지적하는 것은 학살이 크게 세 가지 시기에 집중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50년 7월이다. 이것은 북한이 침공해 오면서 남한이 후퇴하던 시기인데, 이승만 정부의 군경은 인민군에게 협조할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미리 학살해 놓고 후퇴해 갔다. ‘보도연맹’ 학살이 이 시기에 벌어졌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미래의 ‘부역죄’를 저지를 사람을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처형한 셈이다.

둘째는 50년 9~10월이다.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하나는 첫째 시기에 학살당한 희생자의 유족들이 인민군과 손잡고 군경의 가족에게 보복 학살을 벌였다. 피가 피를 부른 처참한 비극이었다. 또 하나는 인천상륙 작전으로 반격에 나선 국군이 인민군을 쫓아내고 다시 그동안에 인민군에게 협조했다고 지목된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다.

셋째는 51년 1월이다. 이 시기에는 중공군 개입 후에 다시 전쟁 상황이 급변하면서 미군의 전략적 폭격, 초토화 폭격이 벌어진 시기이다. 총과 칼로 바로 앞에서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폭탄을 투하해서 단번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출처 – 뉴스타파, '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출처 – 뉴스타파, '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다음으로 뉴스타파는 학살의 주체가 누구였는지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분석한다. 그 결과, 학살의 71%는 남한의 군대와 경찰이, 15%는 미군이, 14%는 북한 인민군과 동조세력이 저지른 것으로 나온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학살의 더 많은 부분이 남한 군경에 의해서 저질러졌을 것이라던 그동안의 여러 역사적 분석들과 다르지 않은 결과다.

이것은 남한 군경이 특별히 더 잔인한 집단이었기에 나온 결과라기보다는, 학살이 벌어진 세 가지 시기가 보여주듯이 전쟁의 구체적 진행 과정과 특성이 낳은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미군이 저지른 학살의 경우에는 피해 신청이 들어와도 현재 외교적 조건에서는 조사가 어려워서 밝혀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조사 과정에서 그동안 북한 인민군 소행으로 알고 있던 학살이 사실은 남한 군경의 소행으로 밝혀진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학살의 구체적 양상들은 정말 참혹하다. 악명 높은 대전 골령골 학살의 경우 한 지역에서만 7000명이 죽었고, 머리뼈와 뼛조각들이 끝없이 나왔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말해진다.

미군이 저지른 전략적 폭격, 초토화 폭격도 정말 끔찍한데, 특히 포항 바다에 모여 있던 흰옷을 입은 피난민들이 영문도 모르고 기총소사당하며 온 바다가 핏빛으로 변하던 상황에 대한 증언은 듣기만 해도 참담하다. 초토화 폭격에 주로 사용된 것은 ‘악마의 무기’라 불린 네이팜탄인데 2100도로 타오르는 끈적이는 젤리 형태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 폭격이 장기간 집중된 북한 대다수 지역은 ‘석기 시대로 돌아갔다’고 알려져 왔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북미 관계와 북한의 핵무장 추구에도 큰 영향을 남겼다. 뉴스타파는 진실화해위원회에 피해와 조사 신청을 한 사람은 실제 희생자의 10%에 불과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전쟁과 학살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기억과 기록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윤석열 대통령은 “백선엽” “맥아더” “한미동맹”에 대해서만 거듭 강조하며 기억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몸서리쳐지는 전쟁의 끔찍함에 반대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말하던 사람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낙인찍고 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다시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심지어 “종전선언을 절대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극우익 성향의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학살의 희생자들을 ‘인민군 부역자’로 의심하고 “부역 여부를 살펴보겠다”는 망언들을 하며 유족들의 피멍 든 가슴에 칼질을 해대고 있다. 따라서 진실화해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며 이제 시작에 불과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진실 규명을 지속할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다.

한국전쟁과 군부독재 시절에 어떤 불의와 야만들이 있었는지 밝혀내기 위해 2005년에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졌고, 2020년에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궤적을 보면 그나마 민주화 투쟁의 성과로 민주당 정부 때 만들어져서 조금씩 나아가다가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방해 속에서 중단, 소멸하는 분명한 패턴을 볼 수 있다.

 

출처 – 대전 골령골 학살, 뉴스타파 '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출처 – 대전 골령골 학살, 뉴스타파 '이래도 전쟁인가, 당신이 보지 못한 민간인학살' 특별 페이지

이 모든 것에서 나오는 결론은 분명하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처럼 피비린내 나고 몸서리쳐지는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믿기 어려운 대량 학살의 역사에 대한 진실 규명과 역사 청산이 매우 중요하다. ‘빨갱이’라고, 사상이 다르다고, 어떤 사람들은 고문하고 죽여도 되는 벌레 같은 존재가 됐다. 이것은 오늘날의 ‘종북몰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셋째,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인권과 사회정의에 대한 어떤 논의도,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는 어떠한 논의도 이것을 빼놓고는 가능하지 않다. 멀리 해외에서 찾을 것도 없이 혐오 정서 -> 혐오 발화 -> 혐오범죄 -> 대량 학살로 나아가는 ‘혐오 피라미드’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여기 있다. 넷째,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세력과 가로막고 부정하는 세력이 ‘별로 다르지 않다’라거나, ‘종북 혐오의 문제는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라는 한가한 태도는 옳지 않다.

종전선언을 추진한 세력도,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세력도 모두 똑같고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은 급진적인 게 아니라 공허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번에 정말 중요한 작업을 했다. 수많은 생명이 짓밟힌 과거의 전쟁과 학살을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 미래의 전쟁과 학살을 막아내기 위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모두가 이번 정전협정 70주년에 한국 사회와 정치권과 언론에서 가장 듣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필요했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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