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평양 협상과 북한 도발 감소 밀접한 상관관계“
셔먼, 국무장관에 “진지하고 긴급한” 대북 회담 주문
영 김 “구속력 있는 한반도 평화는 힘 통해서만 보장”
크리튼브링크 “평화협정보단 당장의 문제에 집중해야”
프랭크 엄 ”억제보다 외교…강자인 미국이 양보해야“
정전 70년에도 남한과 북한 모두 '힘에 의한 평화'를 내걸고 대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미국 의원이 극한 대치를 타개할 방안으로 '한반도 평화법안'(The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제정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반도 평화법안'은 한·미와 북한 간 전쟁 상태를 종식한다는 공식 선언과 함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북한과 회담에 나설 것을 미 국무부 장관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 법안의 골자라고 하겠다.
주인공은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브래드 셔먼 의원(민주)이다. 그는 법안을 2021년 처음으로 발의했지만 작년 12월 의회 회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그러나 셔먼 의원은 포기하지 않고 지난 3월 다시 발의했고, 지금까지 의원 33명이 동의해 법안은 하원 외교위에 회부된 상태다.
이 법안은 특히 한·미와 북한 간 전쟁 상태의 '공식적이고 최종적인 종식'을 규정한 구속력 있는 평화협정을 위해 북한은 물론 남한에도 "진지하고도 긴급한" 외교적 관여를 추진할 것을 미 국무장관에게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법안에는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를 추진하고 미국인의 북한 여행 제한을 재검토할 것을 미 국무부에 주문하는 내용도 있다.
셔먼, 국무장관에 "진지하고 긴급한" 대북 회담 주문
셔먼 의원은 27일(현지 시간) 미국 의회에서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라는 주제로 브리핑을 열어 '한반도 평화법안'의 제정 당위성을 강조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계로 민주당 소속인 앤디 김, 매릴린 스트리클런드 하원의원도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 방문 중인 민주당의 김경협(국회평화외교포럼 대표) 의원과 정의당의 이은주 의원, 진보 성향의 한인 유권자단체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관계자 등도 동석했다.
브리핑에서 셔먼 의원은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단절된 상황에서 평화협정과 연락사무소 설치가 대화 재개를 촉진하는 신뢰 구축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감안해 재발의한 한반도 평화법안에 주한미군 주둔을 명시하는 내용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셔먼 의원은 19일 워싱턴D.C. 소재 케이토(Cato) 연구소 정책포럼에서 "이전 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은 다음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걸음"이라며 "우리 방식대로 모든 것을 달라는 식의 협상보다는 현실적인 입장이 합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핵분열 물질과 핵무기를 확보하고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미국의 현 대북 정책은 실패라고 지적한 뒤, 미국이 북한과 협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보단 핵무기 수량을 통제하는 군축으로 전환하고 핵무기의 타국 판매를 막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더 많은 당근과 채찍, 그리고 더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영 김 "구속력 있는 한반도 평화는 힘 통해서만 보장"
셔먼 의원의 '한반도 평화법안'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한인 1.5세대인 영 김 미 하원 외교위원회 인도·태평양소위 위원장(공화)이 자청해 나섰다.
영 김 위원장은 이날 정전협정 70년에 즈음한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한국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들이 희미해지자 많은 이들은 한반도 비핵화를 진전시킬 유일한 길은 김정은 정권의 협상 복귀를 위해 일방적 양보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셔먼 의원의 '한반도 평화법안'을 지목했다.
영 김 위원장은 또한 △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 2007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 2018년 판문점선언 등을 예시한 뒤 "여기서 중대한 문제는 북한이 한결같이 한반도에 평화를 만들려는 이전의 시도들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핵실험이 남한에 적대하지 않고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평화를 약속한 수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북한의 실질적인 후속 조치는 거의 없었다"며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신뢰할만한 협상 상대가 아니며 핵무기 개발 관련 제재를 피하고자 불법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북 화해와 협력,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련의 남북 합의를 북한이 위반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핵 문제 관련 합의를 비롯해 결정적 순간에 대부분 합의 이행을 안 한 쪽은 미국이라는 점은 외면했다.
영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평화는 말만으로 달성될 수 없으며 행동이 필요하다"면서 "구속력 있는 보장은 오직 힘을 통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다.
이어 "한미 양국은 특정한 조건을 북한이 충족할 때에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모든 핵 시설과 무기의 불가역적인 파괴 및 해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모든 불법 활동의 완전한 중단 등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리튼브링크 "평화협정보단 당장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5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평화체제 구축을 명시한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이어지자 평화협정 이슈는 아예 뒤로 제쳐둔 상태다.
셔먼의 '한반도 평화법안'에 대해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18일 하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당장의 위협은 점점 더 위험해지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이라며 "솔직히 평화협정보다는 당장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몇 술 더 뜬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을 추진했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사실상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양상이다.
대표적 사례는 지난달 28일 윤 대통령의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69주년 축사였다. 그는 "반국가 세력들은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 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이어 "북한이 다시 침략해 오면 유엔사와 그 전력이 자동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한 종전선언 합창이었다"고도 했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팩트가 틀린 얘기다.
"워싱턴-평양 협상과 북한 도발 감소 밀접한 상관관계"
이렇듯 한국의 윤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조야에서 대북 초강경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한반도의 평화 유지를 위해선 '강자'인 미국이 형식적 대화 노력 대신에 북한에 일정한 일방적 양보를 해서라도 협상에 대한 진정성을 더욱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동북아시아 담당 프랭크 엄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왜 북한에 양보를 해야 하는가'란 제목의 26일 자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주목할만한 경험적 증거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에 관여할 때 북한은 훨씬 더 낫게 행동했다"면서 그같이 주장했다. 엄 선임연구원 2011~2017년 미 국방부에서 한반도 담당 선임보좌관을 지냈다.
엄 선임연구원은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1990년과 2017년 기간에 워싱턴이 평양과 협상한 것과 북한의 도발 감소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연구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포함한다면, 양자 정상회담들이 열린 2018년엔 북한의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가 전혀 없었던 반면, 외교가 무너진 2019~2003년 기간엔 100회 이상의 미사일 발사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랭크 엄 "억제보다 외교…강자인 미국이 양보해야"
엄 선임연구원은 "비판론자들은 미국은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외교를 무시하는데 그것은 단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2002년까지 기간에 양국 간 외교, 군사, 민간 채널들이 집중적으로 가동됐으며, 북한은 미사일 시험을 한 차례 했을 뿐 핵실험이나 플루토늄 재처리는 일절 하지 않았다면서 이런 성과들은 깔볼만한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을 통해 공개된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도 거론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이는 제네바합의와 관련해 그 구체적 조항은 아니더라도 정신을 위배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미국의 생산적 대응은 가동 중인 대화체를 부수고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보단 대화체를 활용해 그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것이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힘에 의한 평화란 접근법을 옹호하는 많은 이들은 평양 등 다루기 힘든 못된 행위자와 상대할 때 '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서 "그들이 놓치는 중요한 점은 뭣보다 '억제'가 주는 것은 시간이며 그 시간은 억제가 더는 필요 없도록 갈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엄 선임연구원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속적 평화에 도달할 수 있는 여건을 창출하는 것이 1953년 정전협정의 목적"이라면서 "미국과 남북한 정부들은 한반도 운명에 관한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 억제보다 외교를 우위에 놓아야 하며 그것은 빠를수록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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