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육군총장 공관 방문 확인

여권 "역술인 천공은 아니지 않느냐" 적반하장

막대한 국민 혈세 투입되는 국가 중요 결정 사안

국민에 '과학' 들먹이더니 비합리·불투명한 과정

"이재명과도 만나" 물타기…사적 만남 차원 달라

배후 누구인지, 자문료 등 지급됐는지 밝혀야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백재권의 세상을 읽는 안목' 유튜브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 관저 선정 과정에 풍수 전문가이자 관상가인 백재권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여권은 일말의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한 채 "천공은 아니지 않느냐"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형국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지난해 3월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백 교수가 방문했으며, 당시 청와대 용산 이전 티에프(TF) 팀장이던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부팀장이던 김용현 대통령실 경호처장 등이 동행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제기한 역술인 천공 관여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짓고 조만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부 전 대변인은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와 자신의 저서 등을 통해 지난해 4월 1일 남영신 전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최근 다녀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즉각 부 전 대변인과 그의 주장을 보도한 언론사 2곳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부 전 대변인은 남 전 총장에게서 들은 사실을 토대로 천공 관련 의혹을 제기했지만, 경찰은 풍모가 유사한 백 교수를 천공으로 오인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 4월 10일 육군총장 공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전수조사하는 과정에서 천공이 출입한 흔적은 찾지 못한 대신 백 교수의 방문 사실을 포착했다.

 

국군방첩사령부 부대원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국방부 대변인실 PC 압수수색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국군방첩사령부는 이날 역술인 '천공'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의 자택과 국방부 재직 중 사용한 PC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2023.2.23. 연합뉴스
국군방첩사령부 부대원들이 지난달 23일 오후 국방부 대변인실 PC 압수수색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고 있다.국군방첩사령부는 이날 역술인 '천공'이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방문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의 자택과 국방부 재직 중 사용한 PC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2023.2.23.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국방부 전 대변인과 언론사 기자들을 고발하는 초강수를 두면서도 백 교수의 방문 내용은 지금껏 숨겨왔다. 경찰 수사로 사실이 드러났지만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둘러싼 다른 의혹들과 마찬가지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일부 언론을 통해 대통령실 관계자 발언으로 "천공이 이슈가 됐기 때문에 그 부분만 아니라고 한 것"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할 뿐이다.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떠 백 교수를 "풍수지리학계 최고 권위자"라며 그가 민주당 이재명 대표 부부와도 만났다고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역술인이 아니라도 풍수 전문가가 대통령 관저 선정에 개입했다면 이는 막대한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국가의 중요한 결정 사안이 비합리적이고 불투명한 과정을 밟았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국민을 상대로 툭하면 '과학'을 들먹이며 강조하는 것이 바로 현 정권이다. 과학과는 거리가 먼 백 교수가 무슨 자격으로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육군총장 공관을 드나들었는지, 심지어 여당 의원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을 대동할 수 있었는지 강한 의구심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백 교수가 이재명 대표 부부를 만난 적이 실제 있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한 것과 사적인 만남은 전혀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민간인인 백 교수에게 대통령 관저 선정에 관여하도록 지시 또는 의뢰한 인물이 누구인지, 경호처장까지 동행하도록 한 배후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자문료를 비롯해 어떤 형태이든 비용이 지급됐는지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함은 물론이다. 재발 방지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백 교수는 지난해 2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지인 소개로 윤 대통령 부부와 만남을 가졌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당시 윤 대통령 부부가 2017년 6월 중앙일보에 윤 대통령을 가리켜 '악어 관상'이라고 평한 자신의 칼럼을 두고 "재밌었다"며 신기해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나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사진만 보고도 그렇게 정확히 아느냐"며 자신의 실제 성격이나 가치관과 "정확히 맞는다"고 호평했다는 것이다. 또한 백 교수는 김건희 씨가 자신의 관상을 물어봐 공작 관상이라고 답했다며 "공작상은 매우 드물고 귀한 인물이 된다" "공작상의 귀함 덕으로 남편이 출세한다"고 풀이해줬다고 해당 인터뷰에서 전했다.

백 교수는 윤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2022년 3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관상으로 윤석열을 관(觀)하면 윤석열은 압도적으로 좋은 관상이라는 풀이가 떨어진다. 관상뿐만 아니라 풍수지리로 분석해도 윤석열이 이재명보다 더 좋았다"고 했고, 그해 6월 같은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우세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 이유로 "불통과 단절의 상징이었던 청와대였으나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 그동안 막힌 혈이 '뻥' 뚫리는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는 것"이라며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언급했다.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 지난달 22일 청와대 문에 있는 노란색 봉황장식을 가리키며 일행에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23.1.22. 독자 제공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이 지난달 22일 청와대 문에 있는 노란색 봉황장식을 가리키며 일행에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2023.1.22. 독자 제공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은 24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 관저 이전이라는 중대한 국정 현안이 풍수나 무속 같은 비합리적 미신에 휘둘린 것"이라며 "지금까지 대통령실은 미신 의혹에 백모 씨는 쏙 빼고 진실을 숨기는 것에 급급했다. 그러다 이제는 백모 씨를 역술인과 다르다며 미래예측학 박사라고까지 소개한다. 아무리 국민을 개돼지로 생각해도 이렇게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일부 보도에서 풍수 전문가를 다른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냐며 물타기를 하는데, 결혼할 때 궁합을 보든가 새해 운세를 볼 때와 같이 개인적으로 간 것과 국가안보시설을 보여준 것이 어떻게 같은가?"라며 "관저 졸속 이전에 교통환경영향평가, 군사안보영향평가보다 풍수지리가 더 중요한가?"라고 따졌다. 그는 "수많은 천공의 강연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고 관저 졸속 의혹에 미신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관저 졸속 이전 진상규명에 협조하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강선우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대통령실은 백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천공이 아니라서 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식의 궤변을 해명이라고 내놓았다"며 "애초에 왜 천공 의혹이 제기되었나? 무속인이 국가 의사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무속은 안 돼도 풍수는 된다는 말이냐"고 어이없어했다.

강 대변인은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하진 못할망정 적반하장이 웬 말인가. 국민을 능멸하지 말라"면서 "국가 중대사를 풍수지리에 의지한 것 자체로 위험천만한 발상이고 심각한 문제다. 정부·여당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에 반대하는 국민에게 '과학적 판단'을 하라면서 정작 자신들은 국정 운영에 풍수지리를 동원했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이기중 부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무집행위원회 회의에서 "무속이든 풍수든 비과학적 근거로 국정이 좌지우지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풍수지리학 박사를 받은 최고 권위자라고 강조하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백 교수가 풍수지리학 박사를 받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의 미래예측콘텐츠학과에서는 풍수와 관상뿐 아니라 무속도 학문으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풍수를 믿는지 관상을 믿는지는 개인의 자유이고, 풍수 보는 사람이나 관상 보는 사람에게 자기 돈을 갖다 줘도 그건 내가 간섭할 바 아니다"라며 "그런데 공적인 판단을 하는데 풍수나 관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위험하다. 앞으로 그런 우려가 없도록 하겠다고 하는 것이 맞다"고 국민의힘 대응을 비판했다.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이 '천공'이라고 가짜뉴스를 생산했을 때, 그게 아니고 백재권이었다고 이야기해야 했다"며 "대통령실에서 그때 좀 더 당당하게 정당한 절차에 의해 자문을 듣기 위해서 모셔 온 분이라고 이야기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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