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큰 이유 중 하나는 바이든이 취해온 대러시아 군사주의 노선의 부정적 파장, 즉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 전쟁의 지정·지경학적 역풍 때문이다.
전쟁 1년 반여. 러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우세가 가시화하고 있다. 바그너 용병대장 프리고진의 난동이 있었지만, 하루 만에 정리됐다. 서방의 바람(?)과 달리 국내정세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미국의 전쟁 대리인 우크라는 병참부터 전술, 전략에서 내려앉는 중이다. 오래전부터 예고했던 반격은 4주 차 만에 자신의 더 큰 피해로 이어졌고 지금은 사실상 중단상태다. 미국이 동원한 경제제재는 오히려 러시아 국내산업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또 이전보다 에너지 교역 루트를 확장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그만큼 안정화되었다. 한편 다른 나라들은 브릭스나 상하이 협력기구 등의 조직을 키우고 협력을 강화하면서 미국을 건너뛰는 국제 질서를 조직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들 간의 독자적 금융결제 시스템을 가동하거나 확대방안을 논의하면서 미국의 버팀목이던 달러패권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 같은 국제 질서의 변동상황에서 위축·고립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쪽은 러시아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다. 최근 인도에 거의 모든 것을 내어준 미국 외교가 그것을 보여준다. 바이든의 대러시아 군사주의 전략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이는 그의 재선 가도뿐 아니라 미국으로서도 위험신호다. 그 때문에 바이든이 더 큰 군사적 도박을 감행할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위태로운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계속 지도자 노릇을 하겠다며 나섰다. 민주당은 그를 내년의 대선 후보로 이미 굳혔다. 이런 사정은 트럼프가 가장 앞서가는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민주, 공화 양당 모두 다른 지도자를 내세우지 못한다. 유권자도 미국 사회도 다른 정치적 선택지 없이 대내외적 모순을 격화시킨 인물들을 다시 맞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바이든의 군사주의
군사주의는 ‘국제문제를 군사적 관점 위주로 해석하면서 무력개입 이외의 외교적 해결노선을 폄하하거나 외면하는 사고’를 뜻한다. 바이든은 이미지와 달리 수십 년 정치경력 동안 강경노선에 기울어 있었고 전쟁도 마다하지 않은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대외정책팀은 네오콘과 강경 자유주의자 일색이다. 바이든은 특히 우크라 상황에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2014년 오바마 정부 시절, 마이단 쿠데타에 국무부의 뉼란드 차관이 직접 개입했고 거기에 바이든이 관련돼 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마이단 쿠데타는 이후 우크라가 벌인 돈바스 내전의 시작점이고, 돈바스 내전은 러시아와의 전쟁까지도 염두에 둔 도발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 미국의 직·간접적 지원이 크게 작용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바이든의 우크라 개입 논리는 무엇일까? 요약하면 ‘도미노 이론’이다.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이라거나, 규칙질서·가치동맹에 대한 도전이니 말하지만 쉽게 말하면 도미노 이론이다. ‘우크라에서 러시아를 막지 않는다면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이 유럽은 물론 세계정복에 나선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에나 통할 법한, 아니 그 시대에서조차 허황한 논리로 판명된 낡은 사고방식이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우크라에 엄청난 규모의 재정 및 군사 무기를 지원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러자 미국은 열화 우라늄탄(소형 핵폭탄)에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지원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이젠 아예 F-16 전투기까지 제공하겠다고 한다. 제대로 된 공항도 없고 훈련된 조종사도, 유지보수 인력도 사실상 없는 우크라가 F-16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미국산 전투기가—조종사가 누가 될진 모르지만—나토 공군기지에서 출격, 러시아군과 영토를 공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텐데, 바이든은 그것이 나토의 대러 선전포고이고, 곧 3차대전을 의미한다며 스스로 불가하다고 했었다. 그 말은 이제 뒤집혔다. 바이든의 군사적 도박이 이렇게 실행된다면 그 파장은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다.
미국이 우크라에 개입한 이유 중 하나는 우크라를 나토 회원국으로 만들고 거기에 미군을 주둔시켜 러시아를 전략적으로 억제,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풍부하게 매장돼 있는 우크라의 천연가스, 철광석, 석탄, 희귀금속 자원 등도 노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우크라 전황이 드러내 준 것은 현재 미국의 역량과 전략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 물러서기에 미국은 너무 멀리 지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강경 네오콘 국무부와 현실주의 국방부 사이의 대립 이야기가 나오는 지금 바이든의 미국은 진퇴양난이다.
군사주의의 기원과 교조화
그러나 적대적 군사주의 노선의 책임을 바이든과 주변의 강경파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왜? 바이든이나 네오콘은 군사주의 국가 미국의 역사 중 최근에 나타난 인물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나라’라는 카터 대통령의 자기비판이 말해주듯 미국은 본래부터 그런 뿌리에서 성장한 나라이다.
그러나 유의할 것은 미국엔 강한 반군사주의 전통도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건국 당시 미국에서는 군의 성격과 규모, 구성을 규정한 헌법 조항을 두고 큰 논란이 벌어졌었다. 논란의 요체는 필요할 때 군을 조직하고 늘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평화기에 상비군을 유지하는 것은 폭군을 불러올 우려가 있으므로 의회의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남북전쟁이 끝나자 백만 병력에 이르던 연방군은 1년 만에 5만 7000명 수준으로 대폭 축소되었고 이후 3만 규모로 다시 낮아졌다. 480만 규모의 1차대전 시기 미군도 전후 75만으로 줄었으며, 800만에 이르던 2차대전의 미군 역시 전후 2년 만에 90만으로 감축되었다.
그러나 전후 대소련 봉쇄를 핵심 노선으로 하는 냉전 경쟁체제에 들어서면서 이런 전통은 사라졌다. 봉쇄정책의 구체적 실천방안은 해외 곳곳에 미군을 ‘전진배치(Forward Strategy)’, 즉 기지를 건설하고 소련과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안보라는 개념은 이제 법이 정한 영토의 방위 차원을 넘어, 지구적 범위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군대를 유지하고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압도적 군사력 추구의 논리로 확장되었다. 상비조직으로서의 군은 더욱 커졌고 그와 함께 군산복합체도 성장했다.
194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 대략 800여 개의 미군기지가 퍼져있다. 지구적 범위로 이뤄지는 힘의 투사는 소련 억제라는 좁은 명분을 넘어, ‘세계의 경찰’ 또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치장되었다. 물론 실제로는 필요할 때 언제 어느 곳에든 신속하게 무장병력을 배치, 미국식 질서와 가치를 강제하는 제국의 구현이었다.
이런 군사주의 노선은 냉전 이후 오히려 강화된다. 예전의 전통이라면 냉전의 종식은 군 규모와 기지의 대폭 축소, 냉전조직(예: 나토, 안보조약 체제 등)의 재구성, 다자주의적 평화의 길로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1990년 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미군은 7개월여 만에 압도적이고 신속한 승리를 거둔다. 미국의 힘과 미군의 역량, 그리고 강력한 군대의 효과가 입증된(?) 것이다. 연이어 아프간, 보스니아, 소말리아, 중앙아시아 곳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발생했고 2001년 9/11 테러사태는 무질서한 세계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런 배경에서 세계 유일의 강자인 미국에 책임과 사명이 주어졌다는 논리가 힘을 얻기 시작한다. 일극패권 유지와 확대라는 노선은 드디어 탄탄대로를 걷는다. 네오콘 지배시대가 온 것이다.
냉전체제가 종막을 고할 무렵, 레이건은 미국은 이제 “세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권력”이라고 외쳤다. 이후 클린턴은 “민주적 자본주의라는 미국의 비전 이외에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고 기염을 토했다. 전체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로 역사는 막을 내렸으며 이제 지향해야 할 목표는 미국이 지도하는 ‘자유, 민주, 그리고 자본주의의 세계’이다. 미군의 사명은 그 비전을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집단을 막아내고 필요하다면 가혹한 징벌을 가하는 것이다. 바이든은 이를 이어받아 ‘규칙질서’니 ‘가치동맹’을 내세우면서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중국과 갈등을 일으키는 중이다.
군사주의 판타지
1999년 11월, 아들 부시는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강한 패권 대신 위대함을, 화려한 영광 대신 정의의 길을 택한 나라이다.” 미국이 정의로운 나라인가? 역사는 부시의 발언을 반박할 무수한 증거와 사례로 차고 넘친다. 2022년 3월, 바이든은 우크라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자유와 억압, 규칙질서와 힘의 질서 사이의 격돌이다.” 기원과 배경을 따져보면 우크라 전쟁은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쟁은 미국의 도발과 러시아의 대응이 맞선 지정학적 갈등의 산물이다.
사실을 벗어난 수사는 판타지다. 부시의 발언이 ‘미국 판타지’라면 바이든의 주장은 ‘우크라 판타지’이다. 바이든 정부와 군대, 주류 정치인과 정당, 로비조직, 이익단체, 군수기업, 씽크탱크, 주류 언론, 이들은 모두 그런 판타지를 생산하고 유통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판타지는 ‘러시아 가해자—우크라 피해자’, ‘푸틴 악마—젤렌스키 용사’, ‘러시아 패배—우크라 승리’ 같은 내러티브다. 가짜와 거짓이 사실과 진실을 압도한다. 문제는 타자를 대상으로 하는 판타지에 자신들도 속아 넘어간다는 것이다. 자기기만의 최정점 중 하나는 발트해 가스관 폭파 테러 책임을 우크라에 전가한 작태다. 미국과 유럽국가 주류사회의 누구도 진실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도 진실을 모르게 되거나 자기가 만든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게 된다.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미로 속에서 이들은 길을 잃고 해결의 경로는 멀어진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정의로운 나라 미국이라는 판타지의 바탕에는 ‘미국과 반미국’이라는 적대적 세계관이 놓여있다. 반미국의 세계에는 국가(예: 러시아, 중국)부터 테러조직(예: 알카에다), 이데올로기(예: 공산주의, 사회주의), 종교(예: 이슬람)까지 존재한다. 적대적 세계관은 냉전 시기부터 본격화되고 90년대를 지나며 매우 급진화한다. 예방전쟁을 통해 반미국 분자들을 제거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강제이식하는 것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 자유를 앞당기는 길이라는 부시 네오콘의 논리가 그것이다. 바이든의 군사주의는 여기에 맞닿아 있다. 그것이 지금 우크라 전쟁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적대적 세계관에 기초한 군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미국은 딜레마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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