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 '중간착취왕국 대한민국' 기자회견
대법원 불법 파견 판결에도 현대차 현장 ‘그대로’
현대제철에선 파견을 자회사로 해결 ‘꼼수’
“고용노동부가 불법 파견 실태 전수조사 해야”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젊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하다가 가장 많이 산업재해로 죽는다. 일터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노인이 돼 노인 빈곤에 허덕인다. 빈곤에 허덕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인이 자살한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김수억 씨는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 씨는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공멸한다”고 말했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던 1998년 처음으로 도입된 뒤 25년이 됐다.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대표적인 법으로 기능해 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직장갑질119’와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28일 경향신문사 별관에서 ‘파견법 25년, 중간착취왕국 대한민국’ 기자회견을 열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파견노동자의 숫자가 공식적으로 30만 명이라고 하는데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이라고 판정한 사내하청 노동자 등 파견과 유사한 노동자는 300만 명이 넘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 심각한 것은 노동자들이 본인이 어느 업체 소속인지 모르며 용역 노동자인지 파견노동자인지 모른다는 것”이라면서 “파견노동자만 파견법에 규정돼 있을 뿐 용역, 도급, 위탁, 프리랜서 등 다른 유형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불법 파견의 대표적 사례는 현대자동차다. 김현제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은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다. 김 지회장은 “2010년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 확정판결을 받은 뒤 공장을 점거하고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투쟁에 나섰다”면서 “이후 돌아온 것은 손해배상 소송, 고소, 고발, 징계 해고 협박, 노조 탈퇴 회유였다”고 말했다. 이어 “손해배상 소송을 남발해 하청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옥죄는 무기로 활용했으며 회사가 하청업체 관리자를 시켜서 인감도장을 수집한 뒤 회사 마음대로 소송 취하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또 “지난 5월 4일 울산지법에서 현대차의 불법 파견에 대해 벌금형을 내렸다”면서 “진정 제기 이후 19년 만에 나온 판결이었지만 정작 현대차 법인에 벌금형 3000만 원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결국 법원이 불법 파견으로 범죄 수익을 계속 창출하라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받아들였다”면서 “창출된 범죄 수익은 그대로 회사에 귀속되고 벌금 3000만 원만 내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지회장에 따르면 그동안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를 중간에 끼워 넣어 다단계 하청을 만들어냈다. 현대차와 무관해 보이는 형태를 띠었지만, 현장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김 지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만들어 파견 기간과 업종 확대를 예고한 바 있다”면서 “결국 현대차와 같은 다단계 하청구조를 확대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환태 현대제철 당진 비정규직 지회 법규부장은 “2013년 현대제철 비정규직 지회를 만들었다”면서 “처음 3년은 현장에서 열심히 투쟁만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약 5년 동안 3200명이 불법 파견 소송을 제기했고 2021년에 6500명이 있었다”면서 “2021년 자회사가 생기면서 소송 인원이 줄었고 지난 6월 기준 2000명이 불법 파견 소송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또 “현대차에서도 봤지만, 대법원이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해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다”면서 “대법원 확정판결은 종이 쪼가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공사의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사례는 현대제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부장은 “공공부문에서 자회사 형태로 정규직화한다고 정리되면서 현대제철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면서 “대법원 확정판결도 이제 소용없어지게 됐으며 현대모비스, 현대위아도 그런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 지회에서 자회사 방안에 반대했고 53일간의 총파업으로 저항했다”면서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은 246억 원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 고발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또 “자회사는 정규직이라고 떠드는데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서 “정규직이라면 온전하게 정규직 전환이 되어야지 이런 식으로 꼼수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현기 노무사는 파견법 위반 통계를 설명했다. 민 노무사는 “예상보다 위반 건수가 대단히 많았다”면서 “유형별로 보면 5조와 7조 위반이 많았다”고 말했다. 파견법 5조는 근로자 파견 대상 업무와 절대 금지 업무를 규정하고 있다. 민 노무사는 “현대차 등에서 보는 제조업 직접 생산에는 파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7조는 파견사업자가 고용노동부에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만큼 불법 파견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라면서 “파견 사업주도 시행 25년이 지난 이상 더 이상 파견법을 몰랐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민 노무사는 또 “정부에서 불법 파견을 시정하라고 해도 사업주가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면 그만”이라면서 “이제 고용노동부가 전수 조사를 실시해 불법 파견을 뿌리뽑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의 김수억 씨는 “2200만 노동자 중 30인 미만 사업장 비중이 40%이며 이 중 0.3%만 노조에 가입돼 있다”면서 “노조가 가장 절실한 계층이 이들이며 진짜 사장과 교섭을 할 수 있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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