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펜타닐 패치 사용률 발표 ‘충격적’

언론들도 ‘청소년 마약 심각’ 받아쓰기

식약처, 6일 뒤 ‘과장됐다’ 취지 반박 자료

여가부, 반박 자료 안내… 정권 코드 맞추기

“검찰 조직 필요 입증 위해 마약 부풀리기 의심”

펜타닐은 미국에서 ‘좀비 마약’으로 불린다. 펜타닐에 취한 중독자들이 마치 좀비처럼 몸이 뒤틀려 멈춰 서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펜타닐은 미국에서 ‘좀비 마약’으로 불린다. 펜타닐에 취한 중독자들이 마치 좀비처럼 몸이 뒤틀려 멈춰 서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최근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의 마약 사용 실태’가 담긴 통계 자료를 냈다. 며칠 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를 냈다. 한 부처의 발표 자료에 다른 국가 기관이 이를 부정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다.

발단은 여가부가 22일 발표한 ‘2022년 청소년 매체 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 결과였다. 여가부 자료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이번에 신규로 조사된 환각성 물질 및 약물인 ‘식욕억제제(나비약) 복용 경험’은 0.9%, ‘진통제(펜타닐 패치) 사용 경험’은 10.4%로, 주로 병원에서 처방(식욕억제제(나비약) 62.7%, 진통제(펜타닐 패치) 94.9%) 받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자료가 나오자 연합뉴스는 22일 오전 6시 ‘청소년 10명 중 1명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패치 사용한 적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연합뉴스 기사가 나오자 다른 매체 수십 곳이 거의 유사한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여가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은 전국 초(4∼6학년)·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 1만7140명이다. 자료대로라면 조사 대상 중 1782명(10.4%)이 펜타닐 패치를 사용한 셈이다. 또 합법적으로 처방받은 비율이 94.9%(1691명)이며, ‘다른 사람(성인)에게 얻어서’ 구매한 비율도 9.6%(171명)나 됐다. 즉 비정상적으로 얻은 비율이 10% 가까이 되는 것이다.

펜타닐은 미국에서 ‘좀비 마약’으로 악명이 높다. 이 약의 중독자가 좀비처럼 몸이 기괴하게 뒤틀려 정지된 상태로 거리에 서 있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는 약물로 국내 언론도 이런 세태를 다수 보도했다. 이런 위험한 약물을 우리 청소년 10%가 경험했다면 우리도 ‘마약 왕국’으로 불릴만한 놀라운 일이다.

여가부 발표 4일 뒤인 26일 식약처는 출입 기자들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펜타닐 패치 처방을 받은 20세 미만(청소년) 환자는 482명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여가부의 자료(1만7140명 중 1691명)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22일 자료를 내고 연합뉴스가 기사를 게시하자 다른 매체들이 '청소년 10명 중 1명이 펜타닐 패치 사용'이란 오보를 쏟아냈다. 인터넷 화면 갈무리.
여성가족부가 22일 자료를 내고 연합뉴스가 기사를 게시하자 다른 매체들이 '청소년 10명 중 1명이 펜타닐 패치 사용'이란 오보를 쏟아냈다. 인터넷 화면 갈무리.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인가? 이 사태를 보면 여성가족부가 정권의 ‘마약 마케팅’에 코드를 맞추고, 언론이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동조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선 여가부가 조사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뉴스1의 보도에 따르면, 여가부는 조사에서 질문 문항을 ‘최근 1년 동안 다음에 제시된 약-진통제(펜타닐 패치)-을 복용해 본 적이 있나요? 복용해 본 적 있다면 어떻게 구했나요?’라고 했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은 진통제를 복용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을 해석해 답한 것으로 보인다. 답변 시에 괄호 안 펜타닐 패치는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여가부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조사의 요약본이다"라며 "질문 문항 등이 포함된 조사 결과 전체는 7월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 연합뉴스의 ‘정권 코드 맞추기’가 의심되며, 다른 언론들의 ‘무분별한 받아쓰기’가 문제였다. 뉴스 도매상인 연합뉴스는 여가부 자료 중 마약에 초점을 맞춰 제목을 뽑고 기사를 전개했다. 다른 매체들이 여가부 자료를 보며 ‘펜타닐 처방이 이렇게 많다는 게 상식적인가’라는 기초적인 의문을 가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위험성이 높은) 펜타닐 패치 처방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만약 처방이 나온다면 정신과 쪽에서 나올 수 있지만 드문 일이다”라고 말했다.

통상 정부 부처는 발표 자료에 대한 오보가 나오면 반박 자료나 설명 자료를 낸다. 하지만 여가부는 수많은 매체에서 자료를 잘못 해석해 ‘청소년 마약 심각’ 기사를 냈는데도 이에 대응하지 않았다. 정권의 마약 코드에 발맞추기 위해 보도들을 묵인하거나 조장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또 여가부는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환각성 물질 및 약물’ 경험을 묻는 문항을 추가했다. ‘청소년 매체이용 유해환경 실태조사’는 여가부가 통상 2년마다 실시해 발표하는 자료다.

현 정권은 마약 퇴치를 강조하고 있다. 마약은 추방해야 할 해악이지만, 마약 단속을 통해 국민 통제와 억압 분위기를 만들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다.

현병호 교육매체 ‘민들레’ 발행인은 최근 기고문에서 “우리 사회에서 마약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 시작한 시점은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하던 시기와 겹친다”며 “검찰 조직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편으로 마약 사건을 부풀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시사IN의 올해 초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마약 관련 정신과 전문의 마쓰모토 도시히코 씨도 최근 한국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당국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약물남용 방지 계몽을 하기 위해 특히 ‘본보기’로 삼기 좋은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를 노리고 체포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몰락하는 장면’이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로서 사람들의 처벌 감정을 충족시키고, 왜곡된 쾌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연출’에 속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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