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를 두고 요즘처럼 과학이 많이 소환되는 경우가 없었다. 안전을 과학적으로 논하면 우려가 가실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학을 앞세워 핵발전소 안전과 오염수에 대한 우려를 공포와 괴담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안심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걱정을 준다. 문제의 실상들을 덮어버리기 위해 계산된 정치행위로 보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우려와 공포, 그리고 괴담은 어찌 보면 간단한 상식으로 대부분 판단이 가능하다. 과학이 상식을 초월하는 경우는 그것이 미지의 영역이거나 속임수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지의 영역이란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경우이고, 속임수 영역은 인간 의지에 달려있으므로 과학자의 양심이 매우 중요해진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특히 한 사람이 과학자-교수-원전사업자-원전 수출대리인-전문가-연구원 등 현란하게 변신하기도 한다. 모든 타이틀을 다 섭렵하는 아주 유능한 자도 있다. 전관왕을 획득하면 포상이 두둑하기 때문인지 경쟁도 치열하다.
상식을 이기지 못하는 과학자의 양심
과학은 실패를 용인한다. 그래야 새로운 발견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가 가능해진다. 과학자가 실패를 거듭하던 중 새로운 물리 현상을 발견하고 과학적으로 규명하면 역사에 남는 명예가 주어진다. 학문적 기여도가 크면 권위도 높아진다.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그렇다. 그는 학문적 기여만으로 명성을 얻었고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학자의 위대함은 또한 학문을 탐구하는 순수성에 있다. 핵발전소의 경우 핵분열로 거대한 에너지가 발생하는 핵폭탄 원리를 전기 생산에 이용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거대한 원전산업이 출현하였다. 60년이 넘는 역사로 인해 원전산업이 자리를 잡은 듯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사고처럼 해결하지 못한 근본적인, 그리고 단 한 번의 사고로 돌이킬 수 없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따라서 핵발전소는 단순 아카데믹하게 접근하면 매우 위험하다. 더욱이 최근 10년간 90% 가까이 급격하게 가격이 내려간 재생에너지의 부상으로 핵발전산업은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경년열화 관리를 하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1호기는 1천만 년 동안 3회 노심이 녹는 사고가 발생하고 2, 3, 4호기는 더 낮은 사고 확률로 계산된 보고서를 일본 경산성이 2006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수명연장을 해도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보고서였다. 하지만 권위있는 정부의 과학적 평가에도 불과 5년 뒤 후쿠시마 핵발전소 4개 호기가 모두 수소폭발하고 3개 호기 원자로 핵연료가 녹는 사고가 발생했다. ‘과학의 실패’였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참담했다. 과학이 기업이익을 위해 이용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단 한 번 ‘과학의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후쿠시마 핵발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독자 수습하겠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거절해온 일본이 공해상 핵오염수 투기로 오히려 그 책임을 국제사회에 전가하는 모습은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이처럼 학문적 순수성과 양심을 져버린 과학은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며 산업의 존립 기반을 위협한다. 이를 방어하기 위한 핵산업계의 공통점이기도 한 거짓, 은폐, 속임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사고 위험성’ ‘편익성’… 수명연장 위한 핵과학의 거짓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윤석열 정부 들어 노후 핵발전소 16기를 10년 수명연장 하면 편익이 52조 원이라고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작년 10월 국감에서 이인영 의원에 의해 오류를 바로잡으니 4천억 원으로 밝혀졌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편익도 4조 3천억 원으로 산출했지만 바로잡으니 414억 원으로 줄었다. 16기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으로 얻는 기대 이익 4천억 원은 이로 인한 국민적 위험부담을 고려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수명연장을 위한 개정 시행령은 이미 입법 예고된 상태였다. 현재 추진하는 가동원전 수명연장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과학자들에 의해 ‘적극 지원’받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과학적 자세에 대한 권위와 기대치는 이미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을 국내 최고 과학자로 엄선하여 꾸리겠다고 했지만, 위원장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과학자적 독자 발언을 할 수 없는 산하기관 ‘직원’으로 시찰단을 꾸린 것이 밝혀져 공분을 샀다. 시민소통 주무 부처가 찔끔찔끔 정보를 공개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불신을 조장하여 오히려 국민적 불안감만 높인다. 원자력산업계는 옥스퍼드대의 웨이드 앨리슨 교수를 불러와 허망한 오염수 식수 논쟁을 일으켰다. 결국 과학이라는 가면을 쓴 ‘거짓 과학’은 시민의 ‘상식’이 때려잡았다. 원자력안전위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다핵종제거설비라는 ALPS 시설을 검토했지만 그 성능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2019년을 마지막으로 설비 개선이 완료되어 지금까지 잘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 규제기관이 승인했다지만, 설비 고장은 계속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검증을 명분으로 6개 기관 오염수 저장탱크 시료분석 결과를 비교하는 노력은 훌륭하지만, 투기를 합리화하려는 허울 좋은 쇼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배출 절차를 제대로 준수하는 것이 중요함에도 막상 신뢰할 수 있는 확인 대책은 없다.
온통 투기 합리화를 위한 ‘과학 쇼’
후쿠시마 주변의 방대한 방사능 오염에 의한 생태계 영향은 이미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발표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에서 인용하는 ILC 시료분석(분석기관 간 대조방식) 내용을 보아도 후쿠시마 인근 생선의 방사능 오염도는 최대 5Bq/kg을 넘지 않는 분석결과를 제시하고 있지만 최근 18,000Bq/kg 세슘에 오염된 생선이 발견되어 IAEA 보고서의 진위마저 의심시 되고 있다.
진행 중인 후쿠시마 사고지역의 방대한 오염을 앞에 두고 과학은 어디에 있는가? 과학의 실패로 사고가 발생한 핵발전소의 수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은커녕 오염수 투기를 합리화하며 생태계 오염만 증가시키려 한다. 한일 정부와 핵산업계는 기업이익만 추구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 조장을 멈추고 환경을 살리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의 핵발전소 과학은 해법과 거리가 먼 ‘실패한 과학’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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