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극복,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에 헌신”
분단 시대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원로 역사학자가 별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는 23일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고 밝혔다. 향년 90세.
고인은 우리 근현대사 연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학자로 평가받는다.
1933년 10월 25일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소년 시절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정국 속 극심한 좌우 대립을 목격하며 역사 공부에 뜻을 두고,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피난지인 대구에서 고려대 사학과 입학했다.
1953년 7월 휴전이 조인되고 같은 해 9월 대학을 따라 서울로 상경해 식민사학 극복론에 관심을 갖고 백남운, 이청원, 김한주 등 사회경제사학 계통 연구를 접했으며, 신채호 선생의 민족주의 사학 등을 알게 됐다.
1959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다 모교 교수로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논설문을 통해 현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197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분단시대 사학’ 개념을 사용했으며, 1978년 창비에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펴냈다. 같은 해 여름 해직교수협의회가 계획한 국민교육헌장 반대운동 대학교수 성명으로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에서 취조를 받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이후 성북경찰서로 연행돼 또다시 취조받았다. 서울에서의 광주학살 항의집회 때 읽을 성명서 작성과 학생선동 강연 등을 계획하고 김대중으로부터 선동자금을 받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한 달간 유치장 생활 후 석방됐지만, 고려대에서 해직됐다.
1984년 2학기 개강과 함께 4년 만에 복직해 강단으로 돌아온 뒤, 근현대사 연구와 저술 활동을 활발히 이어갔다. 1987년 민족해방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되는 식민지 시대 민중의 삶을 규명하기 위해 ‘일제시대 빈민생활사 연구’를 창작사(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했다.
1991년 민문연 창립 당시 고문으로 참여하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월간 ‘사회평론’ 발행인 등을 맡았으며, 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저술 활동을 통해 진보적 민족사학 발전에 계속해서 힘을 쏟았다.
1998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을 맡아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같은 해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통일고문을 지냈다. 1999년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뒤, 2001년 상지대 총장을 맡아 학교 운영 정상화와 학원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노무현 정부에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과거사 진상 규명에 헌신했으며, 광복 6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을 맡았다.
1978년 대표작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비롯해 ‘한국근대사’ ‘한국현대사’ ‘한국민족운동사론’등 180여 권의 저작을 남겨 한국사 연구에 크게 기여했다.
1988년 제3회 심산학술상, 1992년 제18회 중앙문화대상 학술상, 1999년 제13회 단재상, 2000년 제2회 한겨레통일문화상, 2002년 제6회 만해학술상, 2005년 제3회 민족화해상 개인부문, 2007년 청조근정훈장 등을 받았다. 2010년에는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창비)을 출간해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민문연은 부고를 전하며 “평생을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에 앞장서는 등 역사와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고 고인을 삶을 기렸다.
빈소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며, 발인은 25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경기 고양시 청아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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