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집시법 위반했다고 건설노조 사무실까지 압색

장례 뒤 자진출두 의사까지 밝혔는데 경찰 과잉수사

이럴거면 현장 채증 왜 하나…"보여주기식 강압수사"

양회동 열사 아내 "건설노조 강압수사 중단해주세요"

민주당 "당 차원 정부의 노동탄압 대응기구 만들 것"

"최소한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도 사과토록 하겠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압수수색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민주노총 건설노조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압수수색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피도 눈물도 없다. 경찰이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사무실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건설노조가 고 양회동 열사 장례 절차를 마친 뒤 자진해서 경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힌 지 단 하루 만이다.

경찰이 이미 건설노조 집회와 관련해 현장 채증(증거수집) 등을 했음에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등을 조사한다는 명분으로 압수수색까지 벌이는 것은 '보여주기식 강압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의 '영장 자판기' 위상을 또다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시각 양 열사의 아내는 양 열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다시는 건설노동자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강압수사 중단해주세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5.16. 연합뉴스
1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5.16. 연합뉴스

이럴거면 채증 왜 하나…"보여주기, 강압수사, 별건수사"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14분까지 약 8시간 14분 동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건설노조 사무실 정문과 후문, 심지어 인근 골목까지 병력 200여 명을 배치했다.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판사(영장 청구 검사 박상희)가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은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등 건설노조원들의 PC와 노트북, 태블릿PC, USB, 주변기기, 메모지, 업무수첩, 테이블 달력 등 사실상 모든 건설노조의 물품을 압수수색하도록 허용했다.

경찰은 지난달 1일 노동절에 열린 전국노동자 대회와 지난달 11일 경찰청 앞에서 열린 건설노동자결의대회, 지난달 16~17일 1박 2일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총파업 결의대회 등이 모두 집회 신고를 정상적으로 마쳤음에도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경찰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특히 1박 2일로 진행된 지난달 16~17일 총파업 결의대회에 대해서는 차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등을 일부 사용했다는 이유로 집시법 외에도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공유재산법) 위반, 도로법 위반 등의 혐의까지 추가로 적용했다.

그러나 집시법 위반 등을 이유로 압수수색까지하는 것은 '과잉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상적인 신고를 마치고 진행됐고, 집회 당시 경찰이 현장 채증까지 한 상태에서 압수수색까지 한 것은 보여주기식 강압 수사라는 지적이다. 법원의 무분별한 영장 발부도 문제다.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경찰 부상 및 차량 파손 등과 관련해 집회에 사용된 물품을 사무실에서 압수수색한 적 있지만, 단순 집시법 위반 정도의 혐의로 노조 사무실 전체를 압수수색하도록 영장을 발부하는 것은 최근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압수수색을 해도 휴대전화 등 신체 압수수색 정도였다.

 

경찰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을 막고 있다. 2023.6.9. 김성진 기자
경찰이 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무실 앞을 막고 있다. 2023.6.9. 김성진 기자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집회는 신고를 하고 공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누가 주최하고 주관하고 사회를 보는지 명확하게 확인이 된다"며 "이미 채증 사진까지 찍었고 본인도 (집회를) 부인하지 않는데 압수수색을 한 선례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쇠파이프 등 집회에서 있어서 안될 물품이 나왔을 때 누가 계획해서 준비했는지 밝히기 위해 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집시법, 도로법 위반 등 사례로 사무실을 압수수색까지 한 것은 무분별하게 영장을 발부해 보여주기식으로 요란하게 일단 털어보고 별건수사를 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며 "매우 과하다"고 했다.

아울러 건설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건설노조 측이 기자회견을 열고 양 열사 장례를 마무리하면 경찰에 자진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새로운 출석 요구서를 보냈다고 통보했지만, 돌연 이날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뒤로는 대화하는 척하고 앞에서는 보여주기식 강압수사를 한 것이다.

 

강한수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강한수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9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고 있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강한수 건설노조 부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 20여 명은 이날 압수수색 소식을 듣고 사무실 앞에서 모여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윤석열 정권 물러나라" "양회동 열사 살려내라" "노조탄압 규탄한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경찰과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다.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오늘 압수수색은 명백한 공안탄압이자 노조에 대한 불법혐의를 씌우고자하는 경찰의 노조혐오 확산"이라며 "지난달 1일 양회동 열사가 분신한 후 건설노조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하며, 노조탄압에 대한 사과를 촉구해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그 누구도 사과의 뜻을 내비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를 규탄하는 건설노조의 집회에 대해 공권력을 통해 탄압하고자 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실상 집회를 허가제로 통제하면서 이를 어기면 불법으로 규정하겠다고 해왔고, 그 결과가 오늘의 압수수색까지 벌어졌다. 이는 건설노조를 모든 행위를 불법으로 몰아넣어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억압하기 위한 행태"라며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오늘 경찰의 압수수색 행위를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에 맞서 나갈 것이며,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위한 투쟁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회동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3.5.4. 연합뉴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지부 간부 양회동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2023.5.4. 연합뉴스

양회동 열사 아내 "건설노조 강압수사 중단해주세요"

건설노조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던 오전 9시 30분 양 열사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산하 건설노조 탄압 대응 태스크포스(TF)와 양 열사의 유족, 건설노조원이 참석하는 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는 양 열사 유가족과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진성준·강민정·김주영·양이원영·우원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양 열사의 아내는 이날 간담회에서 "(고인이)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하던 일이 잘 안 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인력 사무실을 다니게 되면서 철근 일을 하게 됐다"며 "용인, 경기도, 광주, 청송, 청주, 울진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남편에게 아이들 커가는 모습을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다고 속초로 왔으면 좋겠다고 덜 벌어도 같이 있자고 설득했고, 남편은 속초로 왔다. 속초에 와서 건설 현장을 여기저기 개인적으로 찾아다녔지만 단 한 곳도 채용해주는 곳이 없었다"며 "그래서 찾은 곳이 건설 노조"라고 했다.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시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건설노조 탄압 대응 TF와 양회동 열사 유가족, 건설노조원 등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시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건설노조 탄압 대응 TF와 양회동 열사 유가족, 건설노조원 등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그는 "노조 가입 후 일자리도 얻게 됐고 일용직 건설 근로자지만, 한 달에 한꺼번에 받는 일당이 월급 받는 월급쟁이 같았다. 경제적인 안정도 찾게 되고 무엇보다 저희 가족이 함께여서 정말 기쁘고 좋았다"며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조에 가입했고 가족을 위해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한 아이들 아빠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디 아이들의 아빠가 선택한 이길이 억울하지 않게 꼭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다음 주에 열리는 현안 질의에서 국회의원님들이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란다"며 "다시는 건설 노동자가 이런 일을 겪지 않게 강압수사 중단해 주세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라고 했다.

양 열사의 아내가 미리 써온 글을 읽으며 연신 눈물을 흘리자, 의원들도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거나 눈물을 참기 어렵다는 듯 눈을 질끈 감기도 했다.

양 열사의 친형 양회선 씨는 "동생이 그런 마음을 결정하기 전에 조사받을 때, (경찰이) 순댓국집 자주 가는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조사 받으면서 뭘 시켜주냐고 물어봤다"면서 "(경찰에게) '순댓국 좋아하지 않나'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심리적 압박 부분도 상당히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시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건설노조 탄압 대응 TF와 양회동 열사 유가족, 건설노조원 등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9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압수수색이 이뤄지던 시각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건설노조 탄압 대응 TF와 양회동 열사 유가족, 건설노조원 등이 참석한 간담회가 열렸다. 2023.6.9. 건설노조 제공

또 양 씨는 <조선일보>의 유서대필 조작 보도와 분신 방조 보도에 대해 "아무것도 저희는 안 했는데 이렇다 할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며 "저희한테는 폭압이다. 나중에 아이들이 (양 열사 분신 당시) 폐쇄회로(CC)TV를 본다면 아이들의 상처는 어떻게 지울 수 있겠는가. 감히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또 그런 부분이 발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며 "상처도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자꾸 그런 부분이 자행이 된다면 저희로서는 참 더 감당하기가 힘들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도 밝혀야 하지만 유가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겨내야지, 이겨내야지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슬프고 한쪽으로는 그런 부분이 더 가슴이 아파서, 아직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며 "동생의 명예회복을 최소한만이라도 해야지만 동생을 저희가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고 덧붙였다.

TF 단장인 진성준 의원은 "한 달이 넘고 40일이 다 돼가도록 양희동 열사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우선 양 열사를 편히 모시는 것이 최급선무이고 정부가 최소한의 성의 있는 조치만 하면 유족들을 설득하고 건설노조에 말씀을 드려 장례를 치르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양회동 열사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려는 경찰에 맞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2023.5.31. 건설노조
31일 오후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양회동 열사 분향소를 강제 철거하려는 경찰에 맞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2023.5.31. 건설노조

진 의원은 최근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청 노동자 유혈진압을 언급한 뒤, "당초 건설 노조에 대한 탄압에 대한 대응 TF로 출발을 했는데 윤석열 정부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고 전면적으로 노동 탄압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당이 총력으로 대응하기 위한 체제를 갖춰야 되겠다고 당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 건설노조 국한TF가 아니라 정부의 노동탄압 전반에 대응하는 당내 대책기구를 확대하고 격상해서 설치해달라고 요청했고, 당 지도부가 그것을 받아들여서 노동탄압 대책기구를 거당적 차원으로 구성하고, 또 당에서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 해 나가기로 결정했다"며 "양 열사 문제뿐만 아니라 노동탄압 전반에 대해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6월 국회가 열려있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대정부 질문이 진행되고 노동문제를 현안으로 다루는 환경노동위원회뿐만 아니라 유관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등에서 일제히 청문회 같은 것을 추진해서 정부의 과도한 탄압, 무도한 노동 정책 전반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해나가자고 결의했다"고 했다.

또 양 열사 장례와 관련, "경찰청장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 사퇴, 대통령 사과도 요구하고 있지만, 모든 요구들이 다 충족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적어도 주무장관인 고용노동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서 조문하고 유족들과 건설노조에 심심한 유감과 사과의 뜻을 표하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춰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것이라도 최우선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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