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조차 못 구하는 나라가 세계를 구하겠다고?

김평호 저술가 · 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평호 저술가 · 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규칙질서' '가치동맹'.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한국, 호주 같은 나라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표현이다. 자유, 민주, 인권 같은 고상한 용어를 동원하며 어렵게 설명하기도 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규칙질서란 미국이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것을, 가치동맹이란 미국의 목표에 맞춰 행동하는 모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실상 미국 중심의 배타적이고 수직적인 국제조직을 구축하겠다는 이야기지만, 일단 그 문제는 뒤로 미뤄두더라도,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즉 자유, 민주, 인권 같은 규칙이나 가치를 주창할만한 모범국가인가?’라는 질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시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하다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 없이 미국은 비판의 대상이면서 또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나라다. 특히 한국에서 미국은 종교와 거의 동급이다. 미국이 ‘규칙과 가치’라는 구호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이런 여론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미국을 선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물질적 풍요, 새로운 기회 같은 것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자유다. 자유는 미국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미국의 자유를 나타내는 대표적 상징물은 무엇일까? 자유의 여신상? 아니다. 총이다.

지난 2000년 5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단체 중 하나인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 연례총회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렸다. 그즈음 미국은 1년 전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대량살상 사건의 충격에 몸을 떨고 있을 때였다. 범인은 3학년 재학생 두 명. 이들의 무차별 총격과 이어진 경찰과의 대치 속에서 13명이 죽고 24명이 다치는, 그때까지의 학교 총기사건으로는 가장 큰 참극이었다. 강력한 총기규제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협회 회장은 영화 ‘벤허’로 유명한 배우 C. 헤스톤. 그는 개막 연설에서 장총을 번쩍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총은 인간의 자유를 상징하는 도구이다. 내게서 총을 뺏는다고? 그렇다면 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우레와 같은 박수가 총회장을 뒤흔들었다.

 

연설하는 C. 헤스톤. 2000년 NRA 총회
연설하는 C. 헤스톤. 2000년 NRA 총회

극단적으로 들리지만 총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은 그런 수준이다. 실제 총기협회는 자신을 총과 관련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 권리와 자유의 실상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많은 죽음

2020년 4만 3425명, 2021년 4만 8830명, 2022년 4만 4290명. 지난 3년간 총으로 죽은 미국민의 숫자다. 올 2023년은 6월 6일 기준, 1만 8319명을 기록하고 있다.(gunviolencearchive.org 자료). 어림하여 120여 명이 매일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이것이 총의 권리, 총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사태의 실상이다. 죽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타살이든, 자살이든,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집, 마트, 학교, 교회, 사무실, 클럽, 길거리, 어디에나 총과 죽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런 살상의 규모가 전쟁보다 크다. 2021년 기준, 이라크와 아프간 두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은 모두 합해 7천 명 정도다. 순전히 사망자 숫자로만 따질 경우, 미국 내에서는 이라크와 아프간을 합한 전쟁이 매년 5~6차례씩 벌어지는 셈이다. 믿어지지 않는다.

참극의 원인

당연히 많은 연구와 분석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총기가 만연한 사회의 문제라는 지적부터 사건을 저지른 개인의 문제라는 것에 이르기까지 논의는 끝이 없다. 정리하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규제 미비설이다. 미국은 본래부터 총기 규제가 미약할 뿐 아니라 주마다 들쭉날쭉하다. 누구든 일정 나이—이것도 어떤 곳은 18세, 어떤 곳은 21세 이상—가 되어 원하기만 하면 합법적이든, 비합법적이든,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군사용 무기 수준의 총도 구할 수 있는 나라다. 규제가 심한 주에 사는 사람은 규제가 약한 주에 가서 사면 된다. 그런데 그 점을 재차 강조하기라도 하듯, 연방 대법원은 2008년, 총기 소유가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권리라고 판결했다. 이후 총기사건은 이전보다 17% 이상 급증했다.

둘째는 사회구조설이다. 사람들이 직면하는 개인적, 구조적 문제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그에 대해 조직—가정이든, 교회든, 학교든, 직장이든, 정부기관이든—에서 제대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노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이다. 좌절감과 분노, 그리고 항상 곁에 있는 총. 쉽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조합이다. 당연히 해당 사건을 저지른 개인 스스로의 정신적 장애, 우울증, 폭력성 등도 큰 이유 중 하나임은 물론이다.

세 번째는 전쟁국가설이다. 미국은 시작부터 총과 함께했고 지금까지도 그 폭력의 역사가 여러 다른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국 이전부터 유럽 이주민들은 원주민 인디언을 총칼로 추방하고 학살했다. 농장주들은 총칼로 노예를 다스렸다. 오늘날 극우단체들은 자신을 비애국자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국가조직이라고 내세운다. 사법당국조차 규모를 파악지 못할 만큼 총기는 만연해있고, 타인의 총에 대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총을 사고 서로에게 총을 쏘는 폭력적 사회환경에서 살고 있다.

집단살상 사태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집단살상 사건의 증가다. 집단살상이란 4명 이상이 한꺼번에 사망하거나 부상하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총기사건을 말한다. 통계가 보여주듯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돼 2000년 이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무려 690건에 달해 매일 2건 정도씩의 사건이 발생했다. 올 들어선 5월 9일 기준 203건에 이르고 있다.

 

2014년 이후 집단살상 사건 발생 추이
2014년 이후 집단살상 사건 발생 추이

선정적으로 사건을 다루는 황색저널리즘과 온라인 모방범죄가 대량살상 사건 증가의 원인으로 종종 거론되기도 하나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경악스러운 수준으로 악화하는 정치·경제적 불평등 문제, 극우적 사회문화 현상이 가져오는 대립과 갈등 행태가 배경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사건을 저지른 개인보다 해체돼가는 공동체와 적대적 분열증을 앓고 있는 사회환경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진단이다. 한편 이를 제국 아메리카의 국내 버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정부가 세계 곳곳에 기지와 무기를 배치하고 군을 동원, 개입하는 것과 미국인들이 총기를 가지고 곳곳에서 살상을 저지르는 행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LA의 한 갱단 두목은 ‘우리가 무차별 사격하는 것과 우리나라 군대가 무차별 폭격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뿌리 깊은 군사문화의 폐해를 지적하는 관찰이다.

무기력한 국가

거의 매일 벌어지는 총기살상 사태로 미국 사회는 오열하고 있다. 국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 총기사건과 슬픔의 장례식, 규제강화 여론과 논란, 대책 없이 종결돼버리는 논의와 다시 터지는 총기사건. 이 같은 악순환의 고리는 하나의 통과의례가 된 듯한 양상이다. 그러다 보니 총기사건의 근원적 배경과 맥락을 찾아 대안을 마련하자는 논의보다 총에는 총으로 맞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학교 총격사건을 막기 위해 교사들을 무장 경비원화하자는 주장이 그런 사례다. 총기살상 사태라는 비극이 규제강화의 계기가 되기보다 외려 총기가 더 늘어나고 폭력적 대결 구조만 강화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이다.

총기규제의 강화, 사회구조적 해결책 제시, 국가적 차원의 성찰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지금 미국의 상황을 볼 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선 연방 차원의 규제입법을 책임질 의회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총기 생산업체나 총기협회의 집요한 로비와 낙선운동을 견딜 수 있는 의원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법원의 중요성도 의회 못지않지만, 지금의 최고법원은 판사 다수의 성향과 판결사례로 볼 때 극우에 가까운 조직이다. 지난해 이들은 총기소유뿐 아니라 휴대도 개인의 헌법적 권리라고 판결했다. 사람들에게 아예 총을 가지고 다니라고 부추긴 셈이다. 그뿐 아니다. 경찰력의 과잉행사로 사람이 죽고 격렬한 항의시위가 곳곳에서 반복되듯, 수사, 치안, 공안을 담당하는 행정조직의 폭력성은 오히려 총기 문제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총과 죽음의 상황은 음울하다. 이것이 물론 미국 사회의 전모는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총의 자유와 권리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과 국민의 희생에 미국은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그런 국가가 마치 세계의 양심인 양 나서서 자유니, 민주니, 인권이니 하는 규칙과 가치를 주창하고 있다. 자기 국민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나라가 세계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격이다. 기막힌 역설이다. 역설의 주역이 주도하는 질서와 동맹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고, 오래 갈 수도 없다. 많은 지정·지경학자들이 지적하듯 미국 중심의 세기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미국은 물론 그에 추종하는 국가들이 할 일은 자기들만의 클럽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세계를 직시하고 협력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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