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불미스런 일…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어"

與, 불매운동‧광고중단 촉구…국세청 520억 부과

"이 XX들" "쪽팔려서" 발언이 가짜 뉴스? 적반하장

정당한 보도마저 트집 잡아 언론 자유, 헌법 무시

TBS엔 예산 지원 중단 '극약 처방'…길들이기 가속화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11.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2022.11.1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MBC(문화방송)에 대한 적의를 갈수록 노골화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는 MBC를 본보기 삼아 언론을 길들이고 특히 비판적인 매체들을 상대로 탄압을 본격화하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동남아 순방 당시 대통령 전용기에 MBC 취재진 탑승을 배제한 조치를 두고 부정적 여론이 큰 데다 국정 지지율도 저조한 상황에서 지지층 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판을 키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0일 MBC 기자가 윤 대통령에게 공세적으로 질문을 던진 뒤 대통령실 참모와 설전을 벌인 데 대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대통령실은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심각하게 본다는 언급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으나 대통령실 출입 금지 등 추가적인 통제를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용산 대통령실 1층 현관 안쪽엔 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림막이 들어섰다. 윤 대통령이 출입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던 곳으로, 1층 기자실 출입문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지점이다. 지난 18일 MBC 기자와 대통령실 참모 간 충돌을 계기로 가림막을 세워 출근길 문답을 중단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지만 대통령실은 이를 부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호상 보안 이유가 존재한다"면서 "(출근길 문답 중단 여부 등은) 어떤 결정도 내려진 바 없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8일 출근길 문답에서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의 헌법 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어 "더구나 그것이 국민들의 안전 보장과 관련되는 것일 때는 그 중요성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고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자 MBC 이기주 기자가 "MBC가 뭘 악의적으로 했다는 거죠? 뭐가 악의적이에요?"라고 따져 물었고, 이에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가는 분한테 그렇게 이야기하면 예의가 아니지"라고 지적하면서 2분가량 설전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2022.11.18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2022.11.18 연합뉴스

그 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을 미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쓴 것처럼 우리 국민뿐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거짓 방송했다"며 "마치 대통령이 'F'로 시작하는 욕설을 한 것처럼 기정사실화해 한미동맹을 노골적 이간질했다. 이게 악의적"이라고 몰아붙였다.

여권에서는 MBC를 향해 총공격에 나선 모양새다. 국민의힘 MBC 편파·조작 방송 진상규명 TF(태스크포스)는 19일 성명을 내고 "MBC 지도부는 헌법이 '가짜뉴스'마저 보호해준다고 착각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은 MBC에 대한 불매운동과 기업들의 광고 중단까지 촉구했다. 임이자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했다. 이밖에 권성동‧김기현 등 친윤계 의원들이 총출동하다시피해 파상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종혁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이기주 기자가 당시 슬리퍼를 신은 점을 문제삼았다. 김 비대위원은 "이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팔짱 끼고 슬리퍼 신고 회견장에 서 있는 모습은 기자라기보다 주총장을 망가뜨릴 기회를 찾고 있는 총회꾼 같아서 씁쓸하다"며 "기자는 깡패가 아니어야 하지 않나"라고 '깡패'에까지 비교했다.

그러나 이 모든 'MBC 때리기'와 가짜 뉴스 타령은 윤 대통령 본인의 '입'에서 발단이 된 것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적반하장에 해당한다. 지난 9월 미국 순방 중 "이 XX들이" "쪽팔려서"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다수 국민이 녹취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했음에도 이를 한사코 잡아떼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는 강변은 차치하더라도, 대통령실은 적어도 윤 대통령이 비속어를 썼음을 기자단 브리핑을 통해 시인한 바 있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당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이 XX들'이라고 한 건 맞지만 그건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국회를 향한 것이었다는 요지로 설명해 그 자체로 파문을 일으켰다.

한 기자가 "국회를 향해 '이 XX'라고 한 것에 대해 입장이 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묻자 김 수석은 "보통 개인적으로 오가는 듯한 거친 표현에 대해 느끼시는 국민적 우려는 잘 듣고, 알고 있다"고 답하기까지 했다. '이 XX'라는 '거친 표현'이 있었음을 거듭 인정한 것이다.

전용기 탑승 배제가 '헌법 수호'라는 윤 대통령의 주장도 궤변이다. 우리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해 언론 자유를 명시하고 허가나 검열을 인정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자유'와 '헌법'을 입버릇처럼 꺼내는 윤 대통령이 실은 편협한 언론관으로 무장한 채 정당한 보도 내용마저 트집 잡아 언론 자유를 억압하며 헌법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법학계에서는 대통령실이 자의적으로 MBC 취재진의 전용기 탑승을 배제한 행위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15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등 안건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TBS 구성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2.11.15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안 등 안건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TBS 구성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2022.11.15 연합뉴스

국세청은 MBC 정기 세무조사를 실시해 520억 원의 막대한 추징금을 부과한 상태다. 여권은 MBC 외에도 이미 TBS(교통방송)를 고사시키기 위해 예산 지원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동원하는 등 비우호적 언론들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언론 길들이기의 고전적인 수법들이지만 비판적 매체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없을 수 없다. 동시에 이 같은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정권 행태를 두고 정치권 반발과 비판 여론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무엇이 가짜뉴스인가. 자신이 했던 욕설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린 것이냐"며 "대통령의 뻔뻔함에 기가 막힌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더 황당한 것은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이 가짜뉴스라는 말에 항의하는 기자에게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며 호통을 쳤다는 것"이라며 "무슨 예의를 어겼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은 아예 꺼낼 수 없는 봉건 왕조냐"고 따졌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말실수는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면 됐을 일이다. 왜 자꾸 논란을 키워가는 건지 안타깝다"며 "백번 양보해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면 침묵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0일 페이스북에서 "MBC 기자가 슬리퍼를 신었다는 집권여당의 응대는 좁쌀 대응"이라고 했고, 민주당 임오경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치졸한 꼬투리 잡기"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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