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받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석하고 있다. 2021.7.27. 연합뉴스
해직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을 받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출석하고 있다. 2021.7.27. 연합뉴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날림’으로 시작됐다. 준비없이 맞이한 해방 정국에 서구의 민주주의가 하루 아침에 이식됐다. 허겁지겁 도입된 민주주의는 독재자들에 의해 마구 유린됐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박정희 유신 독재가 대표적이다.

우리 국민은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다.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혁명과 박정희 철권통치에 맞선 부마민주항쟁, 신군부 권력 야욕에 맞선 5.18민주화운동,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6월 항쟁,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을 심판한 촛불혁명 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점차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과 법률의 구석구석에는 날림의 흔적이 덕지덕지 남아 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이나 성소수자 차별을 외면하는 인권법,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노동법 등은 반 인권적이고, 비 민주적이고, 전 근대적인 날림 민주주의의 잔재들이다. 언필칭 선진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운동가와 성소수자와 노동자들의 인권이 지금도 짓밟히고 있다.

날림 민주주의의 피해를 입고 있는 또 다른 집단은 바로 교사들이다. 50만여 명의 교사들은 선거에서 투표를 하는 것 외에는 정치활동의 자유와 권리가 없다. 국가공무원법은 교사의 정치활동을 전면 금지한다. 정당법은 교사의 정당 가입과 정당 활동을 금지한다. 선거법은 교사의 선거운동을 금지한다. 정치자금법은지지 정당이나 국회의원에 대한 교사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한다.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은 정치기본권을 박탈당한 우리나라 교사집단을 ‘정치천민’이라고 규정한다. 곽 교육감은 “공무원이 가족이나 친지들과 카페나 골방, 식당에 모여 정당, 선거, 후보 등 현실 정치에 관한 잡담을 나누는 것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공개적·공식적인 장이 열린 곳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표현 행위나 지원 행위를 할 경우 엄벌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실로 숨 막히는 정치 참여 전면금지”라고 지적한다.

50만 교사를 ‘정치천민’으로 묶어 두는 악법은 우리 사회의 기형과 후진과 퇴행을 드러낸다.

첫째, 기형! 고등학교의 경우 정치기본권을 제약 받는 교사들이 정치기본권을 100% 누리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20년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춘 이후 벌어지는 모순이다. 만 18세가 된 고교생은 얼마든지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도 낼 수 있다.

둘째, 후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참여금지 법제를 운용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조사에 따르면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등 유럽국가에선 공무원과 교사의 ‘직무 밖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직무시간의 정치활동만을 금지할 뿐이다.

셋째, 퇴행! 조희연 서울교육감 재판은 ‘정치천민’의 존재에서 비롯된 사법 퇴행을 드러낸다. 조 교육감은 2018년 12월 해직 교원 5명을 특별 채용했다는 이유로 지난 1월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조 교육감이 특별채용한 교사들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해직된 교사들이다. 시대착오적 악법을 근거로 교사를 해직하고, 그들을 구제한 교육감을 단죄하는 사법퇴행이 이어지고 있다.

‘스승의 날’인 15일, 서울시의회 서소문별관에서 '서울교육을 지키기 위한 서울시민 이야기 마당'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시민단체인 ‘서울교육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조 교육감에 대한 모의재판도 진행됐다. 1심 재판 과정에서 다뤄진 사실과 쟁점을 토대로 101명의 시민 배심원단이 교원 특별채용의 정당성과 절차의 공정성을 들여다 본 것이다.

시민 배심원단 101명 중 99명은 “무죄”를, 2명은 “벌금형” 평결을 내렸다. 한 배심원의 말을 옮겨보자.

“특별채용은 선출직 교육감에게 시민들이 부여한 고유권한이라고 생각한다. 이전 문용린 교육감 시절에도 특별채용이 있었다. 이번 조희연 교육감 사건에 임태희 경기 교육감과 강은희 대구 교육감이 탄원서를 냈다. (1심 판결이) 과연 공정과 상식에 맞는 것인지 묻고 싶다.”

오는 22일 조 교육감에 대한 항소심 재판이 시작된다. 부디 항소심 재판부는 시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부디 50만 교사를 ‘정치천민’으로 전락시킨 악법의 폐해를 성찰해 주기를 바란다. 부디 1000만 서울시민들이 자녀교육을 맡긴 3선 서울교육감을 편향된 판결로 흔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날림 민주주의와 악법이 만들어내는 기형과 후진과 퇴행에 ‘날림 판결’까지 더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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