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옆, 도청하라고 현관문 활짝 열어준 꼴"
문재인 정부 고위직 주축 '사의재' 정면 비판 나서
윤석열 대통령실 용산 졸속 이전 5대 문제점 지적
"공감 없는 위태로운 국정, 그 신호탄이 용산 이전"
법적 절차, 민주적 과정 무시…천문학적 국민 부담
국가 위기 대응 체계에 큰 구멍…안보 우려도 심각
문재인 정부 주요 인사들이 주축인 정책포럼 '사의재(四宜齋)'가 윤석열 정부의 용산 대통령실 이전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미군기지와 담 하나를 두고 붙어있는 곳으로 이전한 것은 도청하라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준 꼴"이라며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사건은 사실상 용산 대통령실이 자초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전 정부 측에서 현 정부의 각종 실정을 조목조목 짚으며 갈수록 목소리를 키우고 있어 파급력이 주목된다.
포럼 사의재는 20일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의 5대 문제점>이라는 제목으로 브리핑 자료를 내고 "대한민국은 깨어 있는 시민의 나라이고 G8이라고 불릴 만한 국력의 나라지만, 지금 대한민국에는 국정 리더십이 사라져버렸다"며 "방향과 비전을 알 수 없는 혼란하고 반시대적인 국정운영에 국민은 불안하고 국력은 소진되고 있다"고 윤석열 정부를 정조준했다. 이어 "공감 없는 위태로운 국정의 신호탄이 바로 대통령실 이전이었다"면서 "졸속 이전의 5대 문제점을 바로잡아 국정 리더십 복원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사의재는 ▲법적 절차와 민주적 과정 무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천문학적 국민 부담 ▲국가재난 및 위기 대응의 컨트롤타워 실종 ▲현실화한 안보 공백, 앞으로가 더 문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했던 행위와 판박이인 반문화적·몰역사적인 청와대 졸속 개방 등 다섯 가지를 핵심 문제점으로 꼽았다.
사의재는 우선 '법적 절차와 민주적 과정 무시'와 관련해 "대통령실 이전은 단순히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옮기는 간단한 문제가 아님에도 윤석열 정부는 불과 열흘 만에 결정했다"면서 "일체의 공론화나 여론 수렴 과정 없이 밀실 야합적이고 제왕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질타했다. 또 "직접 당사자인 국방부 핵심 관계자들조차 언론보도를 통해 국방부 청사로의 대통령실 이전 사실을 접하고 일방적으로 국방부 이전 통보를 받았다"며 "법적 절차와 민주적 과정을 무시한 대통령실 이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는 졸속 이전 그 자체"라고 단언했다.
사의재는 ▲대통령실 이전은 국가의 중대한 결정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았는데 이는 헌법 제89조 및 정부조직법 제12조 위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 ▲국방부 이전은 국방·군사시설 사업계획의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 ▲대통령직 인수위가 일방적으로 이전을 결정함으로써 국방부 장관(집무실), 외교부 장관(관저)으로 하여금 법령상 의무 없는 행위를 하게 했다는 점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이 규정한 대통령 당선인의 권한을 벗어나는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두 번째 문제점인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천문학적 국민 부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이전 비용은 496억이면 된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실제 이전 비용은 1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실 관련 의혹 진상규명단에 따르면 총액은 1조 795억 원에 달한다. 기존에 발표한 496억 원에 더해 추가로 예비비 및 이용·전용 369억 원, 2023년도 예산안 반영 각 부처 예산 1539억 원, 2024년 예산안에 포함 예정인 411억 원, 합참 이전 등 향후 발생할 최소 비용 7980억 원 등을 합친 금액이다.
사의재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처별 쪼개기 예산으로 숨겨놓은 채 아직도 이전 관련 전체 예산을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예비타당성 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는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개방으로 연간 수천만 명이 방문해 경제적 효과가 수천 억 원에 달할 것이라 주장했으나, 터무니없는 거짓으로 드러났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청와대 개방으로 연간 167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연간 관광 수입은 1조 8000억 원, 국내총생산(GDP)은 3조 3000억 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2023년 3월 한 달 동안 청와대 방문객 수는 15만 명대에 불과했다. 게다가 청와대 개방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가면서 청와대 인근에 폐업하는 가게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직접 비용 이외에 졸속 이전으로 인한 무형의 비용도 상당하다. 정상회담 장소조차 변변치 않아서 발생하는 국격 비용, 용산기지 반환 관련 미국과의 관계 변동에서 발생한 외교 비용, 위기 시 군의 신속한 대응과 이동이 제한되어서 발생하는 안보 비용, 대통령의 출퇴근 교통 체증과 집회‧경호 등으로 인한 불편 비용 등 산출 불가능한 무형의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 모든 게 국민 부담으로 귀결된다.
세 번째 문제점인 '국가재난 및 위기 대응의 컨트롤타워 실종'에 관해 사의재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을 졸속으로 이전하면서 국가재난 및 위기 대응 체계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에 있던 국가위기관리센터는 안보와 재난을 망라해 국가 위기 상황을 모니터하고 초동 대응하는 최상위의 국가기반시설로서, 한 치의 빈틈이나 멈춤 없이 가동돼야 한다.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최소 1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를 거쳐 이전을 추진해야 하고, 과도기에는 기존 청와대의 위기관리센터를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단 하루도 청와대 시설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만용으로 위기관리센터 이전을 강행했다. 이 같은 윤석열 정부의 몰이해와 무책임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전가되고 있다.
사의재는 "꽃다운 젊은이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북한의 무인기가 우리 상공을 7시간 동안이나 활보하고, 도시가 침수되는 어이없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지만 국가위기대응체계는 보이지 않고 국민은 각자도생의 낭떠러지로 내몰렸다"며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의 사람과 시스템 모두 문제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 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리더십 부재 그 자체"라고 지적했다.
네 번째 문제점인 '현실화한 안보 공백, 앞으로가 더 문제'에 관해 사의재는 "대통령실, 국방부, 합참 등 군사 안보의 최상위 지휘부를 한 자리로 몰아넣은 무지한 발상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사건은 예견된 참사의 하나일 뿐이며,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인한 안보 공백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수도권 대공방어체계가 심각하게 약화된 상황이다. 종전에는 북악산과 인왕산을 중심으로 촘촘하고 즉각적인 대공방어체계가 구축돼 가동됐지만,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한 뒤 대공감시와 대응을 위한 공역이 절반 이하로 축소되면서 신속한 적기 탐지 및 즉각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아울러 도심 한가운데로 대통령실이 이전되면서 적의 도발이 있더라도 낙탄 사고의 우려 때문에 적시 대응하기 힘들게 됐다. 지난해와 같은 무인기 도발이 재발한다고 해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의재는 특히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은 도청하라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준 꼴"이라고 규정했다. 대통령실 이전 발표부터 실제 이전까지 소요된 2개월 동안에 도청 방지와 보안을 위한 조치와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상가상 도·감청은 무엇보다 '공간적 이격'이 중요한데, 도·감청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미군기지와 담 하나를 두고 서로 붙어 있는 곳으로 이전하면서 도청 방지와 보안 조치마저 졸속으로 처리했다. 미국의 이번 국가안보실 김성한 전 실장 등 도청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다섯 번째 문제점인 '반문화적·몰역사적인 청와대 졸속 개방' 관련해 사의재는 "청와대를 단순한 유희의 장소로 활용하는 계획은 청와대의 역사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반문화적 발상으로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궁궐을 훼손해 경복궁 동궁 자리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경복궁 건청궁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을, 창경궁에 식물원과 동물원을 세웠다.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를 고급 미술관과 상설 공연장으로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비교하며 사의재는 "윤석열 정부의 청와대 활용 계획은 우리 국민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역사적 자산을 값싼 일회용품으로 취급해 소모해버리는 행위"라면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했던 것과 유사한 행위가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사의재는 지난 13일 국회에서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 1주년'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의재는 문재인 대통령 시절 장관이나 청와대 고위 참모 등을 지낸 인사들이 주축이 돼 정책을 연구하는 포럼이다. 지난 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창립 기자회견을 열고 정식 출범했으며,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과 왜곡을 바로잡는 한편 국정운영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 꾸준히 활동 중이다.
코로나19 초기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박능후 전 장관이 상임대표,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과 조대엽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운영위원장은 방정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다. 사의재라는 포럼 명칭은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으로 유배됐을 때 기거했던 장소의 이름을 딴 것인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출신인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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