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법 거부 윤 대통령, 후보 시절엔 정반대 주장

"정부는 과잉 생산된 쌀 매수해 쌀값 하락 막아야"

문재인 대통령 땐 의무 매입 촉구하다 이제와 돌변

당시 국힘도 "문 정부 수수방관…농업 홀대, 무능"

오히려 윤 정부 들어 산지 쌀값 폭락…"관리 실패"

민주, 13일 재투표 추진…"부결되면 국민이 심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부는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추가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부는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추가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의 적은 윤석열'인가.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이 정작 지난 대선 때는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즉각 추가 매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실이 5일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정부의 의무 매입을 한껏 촉구하다가 본인이 대통령이 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표변한 것이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태도가 정반대인 전형적인 경우로, 윤석열의 말을 윤석열의 말로 반박할 수 있는 '윤적윤'의 새로운 사례로 꼽힌다.

지난 2021년 12월 16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쌀값 안정을 위해 정부가 쌀 '시장격리'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장격리란 쌀 생산량이 적정 수준을 초과했을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사들여 가격을 안정시키는 제도다. 윤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정부는 30만 톤의 쌀 시장격리에 나서주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쌀값 하락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에 비해 생산량이 10% 넘게 늘었다"면서 "농민들은 하루빨리 쌀 시장격리 시행에 정부가 나서달라고 아우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농민의 적정한 소득 보전은 국민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인 쌀의 안정적인 수급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며 "안 그래도 수입 농산물의 국내 시장 잠식으로 힘들어하는 우리 농민들이다.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외면하지 말고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추가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며 "또 미처 팔지 못한 쌀을 보관하느라 드는 비용이라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당시 쌀값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주요 정책 사안 중 하나였다. 공급 과잉으로 인해 쌀값 하락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같은 날, 국회 농해수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쌀 가격 안정을 위해 쌀 생산 초과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정점식 국민의힘 농해수위 의원은 "작년 문재인 정부는 쌀값 하락 시 쌀 자동시장 격리제를 도입해 선제적으로 쌀값 하락을 막겠다고 약속한 바 있지만 수수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윤석열 후보는 2022년 2월 25일에도 문재인 정부를 향해 초과 생산된 쌀 30만 톤 중 정부의 우선매입 대상에서 제외된 15만 톤을 즉각 시장격리하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윤 후보가 문재인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제때 충분히 격리하지 않아 농민들이 쌀값 폭락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농업 홀대' 정책과 '무능한 대처'로 농민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게 이 시기 국민의힘 주장이었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여당은 농민의 호소를 계속 외면하다가 12월 28일에야 초과 생산된 쌀 30만 톤 중 27만 톤을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격리하고, 그중 20만 톤을 올해 1월 중 우선 매입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문제는 정부가 당초 약속과 달리 2월 8일에야 뒤늦게 시장격리를 시작했고, 격리 물량 역시 원래 밝힌 27만 톤에 한참 모자라는 14만 5000톤에 그쳤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랬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불과 1년여 만에 태도를 바꿨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자리에 오르자 극적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 사이에 쌀값이 올라 의무 매입 조건이 달라졌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산지 쌀값은 2021년 10월부터 하락세를 보여 20㎏당 5만 5107원에서 2022년 9월 4만 725원으로 1년 새 25%나 떨어졌다. 이는 지난 1977년 관련 통계를 조사한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었다.

 

지난 2022년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주최로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쌀값 폭락 및 농업생산비 폭등 대책 마련, 농업예산 확충을 요구했다. 2022.8.29. 연합뉴스
지난 2022년 8월 2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 길' 주최로 윤석열 정부 농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들은 쌀값 폭락 및 농업생산비 폭등 대책 마련, 농업예산 확충을 요구했다. 2022.8.29. 연합뉴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맹비난했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담양·함평·영광·장성)은 이날 kbc광주방송에 출연해 "2017년부터,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 쌀값이 오르기 시작해 문재인 정부 말기까지는 비교적 쌀값이 안정적으로 유지가 됐다"며 "그런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당시엔 쌀값 메커니즘 개편을 할 때 절박함이 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쌀값이 떨어진 게 윤 정부 들어서다. 2022년에 무려 25% 폭락을 했다"면서 "그건 뭘 의미하냐면, 정부가 얼마나 쌀 가격 결정의 메커니즘을 관리를 잘 했느냐 못 했느냐가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 차원에서 쌀 생산량이 어느 정도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들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그러한 시그널을 쌀 시장에 미리 던져줘야 하는데 그걸 놓친 게 (쌀값 폭락의)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나아가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민주당이 처음에 내놨던 원안이 아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내놓은 조정안을 받아서 일부 수정을 한 수정안"이라며 "그런 만큼 이제 민주당 원안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의원 말대로 민주당은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을 받아들여 정부 매입 요건을 당초 초과 생산량 3%에서 3~5%로, 평년 가격 대비 5% 이상 하락에서 5~8% 이상 하락으로 강화한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수정안은 또 쌀 재배 면적 증가 시 의무 매입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둬 정부의 매입 조건과 재량권을 확대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같은 농민단체들은 이 같은 수정안이 원안보다 훨씬 후퇴해 '누더기'가 됐다고 강력 반발해왔다. 결국 윤 대통령이 수정안에 대해서조차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민주당은 시장격리 조건을 완화한 원안을 새롭게 발의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 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신정훈 쌀값정상화 TF 팀장 및 의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쌀값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 신정훈 쌀값정상화 TF 팀장 및 의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쌀값정상화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규탄 기자회견에서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4.4.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5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금까지 정부는 매사 전임 정부 탓만 하면서 쌀값 폭락을 방치했다. 대책을 협의하자는 야당의 요구는 묵살했다"며 "여당이 대책을 세워서 일을 해야지, 야당이 하는 일을 발목 잡는 것만 해서야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인용한 뒤 "대선 후보일 때 마음 따로, 대통령 되고 나서 마음 따로인가? 윤 대통령 스스로 내걸었던 공약이야말로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아닌가?"라며 "당선을 위해서라면 거짓 약속쯤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박 원내대표는 "작년 쌀값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여당은 근본적인 대책은 고민도 않고 민주당이 제출한 양곡관리법에 대해 반대만 했다. 원만한 합의 처리를 위해 의장 중재안 등 여러 의견을 두루 수용해 8개월간 논의를 거쳐 마침내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마저도 끝내 거부했다"면서 "민주당은 4월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릴 13일,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투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재투표 결과 역시 전국의 농민과 국민이 똑똑히 지켜보실 것"이라며 "양곡관리법이 재투표에서도 부결된다면, 민생과 민의를 모두 저버린 무책임한 집권당을 향한 국민의 평가가 뒤따를 것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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