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유족 등엔 감정이입 안 보여

이름 공개하고 불러야 할 죽음과 아닌 죽음 구별

죽음마저 편 가르기…남북 군사 대결 이용 안 돼

일본 전쟁범죄 피해자 고통도 직시하고 치유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서해수호 55용사 이름을 부르기 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24.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서해수호 55용사 이름을 부르기 전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24.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지난주에 가장 섬뜩했던 뉴스는 윤석열 대통령이 '서해 수호의 날'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울먹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귀빈석에서 김건희 여사도 함께 울고 있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해두자면, 결코 이것을 '가짜 눈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장면에서 나타낸 감정도 아마 진짜였을 것이라고 본다.

분명히 윤석열 부부는 서해에서 있었던 남북간 군사적 충돌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깊게 감정이입 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55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누군가를 잊지 못해 부르는 것은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다짐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분명히 함께 울고 슬퍼하며 위로할 필요가 있는 분들이다. 참가한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의 시간이 됐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런데도 섬뜩했던 이유는 먼저, 이것이 철저한 선택적 공감과 감정이입을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윤석열 대통령은 물난리 속에 죽어간 희생자들의 반지하 방을 방문했을 때나, 10·29 이태원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이러한 공감과 감정이입을 보여 준 바가 없다. 특히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은 그 이름을 부르기는커녕, 다른 사람들이 부르지도 못하게 막았다. 이름을 공개한 언론사를 압수수색까지 했다.

이처럼 슬퍼하면서 위로해야 할 죽음과 그렇지 않아도 될 죽음을, 그 이름을 공개하고 부르면서 기억해야 할 죽음과 그렇지 않아야 할 죽음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죽음과 그렇지 않은 죽음을 철저히 선별하고 있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기준과 유불리에 따라서 죽음의 등급을 나누고 인간적 감정의 작동을 통제한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더 문제적인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이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희생의 경우에는 인간적 감정의 작동을 억제하거나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자신의 정부가 제대로 대비하거나 대처하지 못해서 일어난 재난의 경우에 더욱더 미안함과 책임감을 느끼고 함께 눈물 흘리며 위로하는 게 당연한 데, 그 정반대의 태도이니 말이다.

 

김건희 여사가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서해수호 55용사 호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24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가 24일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8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서해수호 55용사 호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24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55명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도에 있다. 이 죽음과 희생들은 결국,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두 쪽으로 나뉘어 대재앙과도 같은 전쟁을 치르고 아직도 서로에 대한 불신과 적대를 해소하기는커녕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결 태세를 유지하면서 툭하면 크고 작은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데 그 원인이 있다.

1차 연평해전, 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모두 그런 구조가 낳은 비극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서 북한군이 먼저 공격한 경우도, 한국군이 먼저 공격을 한 경우도 있었다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전체적으로 사망한 희생자의 숫자는 북한군이 더 많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사실 이런 구조 속에서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느냐거나, 어느 편이 더 많이 죽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보인다.

죽은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던, 꿈을 가지고 살아가던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고 청년들이었다. 어떤 죽음은 '슬퍼'하고 어떤 죽음은 '기뻐'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물론 매번 우리 군인이 더 많이 죽었다고 '슬퍼'하거나, 북한 군인을 더 많이 죽였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이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이런 상황을 해소하고 평화의 길을 열어서 더 이상의 비극을 막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다짐을 필요로 한다.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4대 종단 기도회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희생자 유가족이 대통령 면담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14. 연합뉴스
1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10.29 이태원참사 4대 종단 기도회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희생자 유가족이 대통령 면담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3.14. 연합뉴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눈물과 다짐에는 그러한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희생자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면서 '반드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하겠다는 다짐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청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더 많은 청년들에게 총을 들고 서해의 화약고로 달려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다. 지금도 불안하기만 한 한반도의 군사적 대결과 전쟁 위기의 상황을 더욱더 상승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져서 섬뜩했던 것이다.

북한 정권의 지도부도 그동안 서해 교전들 속에서 죽은 희생자들을 '영웅'이라고 부르며 '남한의 도발에 대한 보복과 응징'을 다짐해 왔다. 이렇게 양쪽 모두 군사적 대결과 전쟁 위기 상황을 서로 상승시켜가면서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상호 확증 파괴' 현상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서해에서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이 또 벌어질 것이고, 더 많은 비극이 일어날 것이고, 다시 양쪽은 '보복과 응징'을 말할 것이고, 이것은 또다시….

반면에,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 식민지배와 전쟁범죄 희생자들의 울분과 고통에는 별로 감정이입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희생자들이 일본에 보복해 달라거나 일본과 군사적 대결을 준비하자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고, 이처럼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것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미래의 전쟁 준비와 전쟁범죄를 막는 길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왼쪽)와 김성주 할머니가 강제동원 정부 해법을 규탄하고 일본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3.7. 연합뉴스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왼쪽)와 김성주 할머니가 강제동원 정부 해법을 규탄하고 일본의 사죄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3.3.7. 연합뉴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가해국가로서 일본 정부의 책임과 부담을 '통 크게' 면죄해줬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 그리고 오로지 북한에 대해서만 '응징과 보복'을 말하면서 스스로 분노의 감정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 감정도 가질 수 있고 분노를 키우다가 드러내거나 폭발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뒤틀린 감정으로 세상을 파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윤석열 정부는 잘못된 군사적 대결 구조의 희생자들 이름을 또 다른 비극을 불러내는 상징과 주문으로 악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9·11 테러 이후에 조지 부시 정부가 그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중동에서 전쟁을 시작할 때 9·11 테러 희생자의 일부 유족들은 '우리의 이름으로 침략하고 폭격하지 말라'고 절규했다. 결국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눈물에서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진심이 느껴져서 더욱 섬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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