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돌 빌미 '참전국+알파' 국방장관 결집

대결 일변도 윤 정부, 미국에 맞장구 넘어 앞장

"전쟁재발 땐 자동소집" 옛 '워싱턴 선언' 밑밥

미국, 유엔사에 회원국 전력 작전권 부여 추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서부전선의 중요작전임무를 담당하고있는 화성포병부대의 화력습격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3.10.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서부전선의 중요작전임무를 담당하고있는 화성포병부대의 화력습격훈련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3.3.10. 연합뉴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2018년 2월. 한반도는 전쟁 직전 상황까지 몰렸다.

딱 5년 전이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핵·미사일 등 북한의 군사시설들에 대한 맞춤형 선제타격을 준비한다는 미국과 서방 언론의 앞다툰 보도들로 분위기가 흉흉했다. 이른바 ‘코피(Bloody Nose) 작전’까지 진지하게 거론됐다.

북한이 2017년 6차 핵실험(9월)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11월)를 감행하자, 미국이 군사 옵션을 고려하기에 이른 것이다.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도 ‘북폭’을 검토했었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1차 북핵 위기가 한창일 때였다.

2018년 위기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북·미 양국 설득에 성공함으로써 극적으로 반전됐다.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관과 3월로 예정됐던 한미 연합연습 축소를 북·미 양측으로부터 끌어낸 것이다. 7천만 한반도 주민이 바라던 바였지만, 예상하진 못한 일이었다.

 

탱크 앞에 서 있는 어린 동생을 업은 소녀. [유엔사령부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탱크 앞에 서 있는 어린 동생을 업은 소녀. [유엔사령부 홈페이지] 시민언론 민들레

정전 70주년…종전선언 대신 다시 전쟁 준비?

그해 1월 중순 캐나다 밴쿠버에선 의미심장한 '회동'이 있었다. 6·25 전쟁(한국전쟁) 참전국 외교장관 모임이다. 미국이 참전했던 유엔사령부(UNC) 전력제공국들(Contributors)을 다시 유엔사의 깃발 아래 집결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행사였다. 한반도 유사시 다국적 전력을 모아 유엔사 지휘 체제로 전쟁을 치르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숨겨져 있었음은 물론이다.

밴쿠버 회동에는 한·미를 포함해 20개국이 모였다. 6·25 참전국이 아닌 일본과 인도, 스웨덴도 참가했다. 미국에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함께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까지 참석해 모임의 방점이 유명무실한 유엔사를 '군사적 실체'로 복원하는 데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유엔사를 '전쟁기구'로 부활시키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일 편향에 남북 대결 일변도인 윤 정부가 미국에 맞장구를 치는 수준을 넘어 앞장서서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6·25 참전국인 전력제공국을 비롯한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가 대표적 사례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밴쿠버 외교장관회의'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한미는 정전협정 70주년이자 한미동맹 70주년인 올해 서울에서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를 공동 주최하기로 했다. 사상 최초다. 시기는 제55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가 열리는 오는 11월이 유력하다. 지난 1월 국방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계기로 일반에 공개됐다. 한반도가 정전 70주년을 맞이한, 역사적으로 중대한 해에 분단의 끝과 평화통일의 시작을 알리는 종전선언까진 아니어도 한미가 다시 전쟁 준비에 나서는 역설적 상황이다.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령부 후방기지 [유엔사 홈페이지 캡쳐] 2023 0324 시민언론 민들레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령부 후방기지 [유엔사 홈페이지 캡쳐] 2023 0324 시민언론 민들레

유사시 자동참전 '워싱턴 선언' “국제법 위반”

미국은 제2의 한국전쟁 발발 시 6·25 참전국들의 병력·장비 등을 지원받을 근거로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 27일 당일 유엔사 주도로 워싱턴D.C.에서 발표한 16개 참전국의 공동정책선언을 들고 있다. 이른바 '워싱턴 선언'은 무력 공격 재발 시 참전국 군대의 자동적 재소집과 즉각 대응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하서고 같은 곳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였을 70년 전 '선언'까지 다시 끌어댐으로써 유엔사 참전국을 결집하려는 미국의 집요함이 상상을 넘는다.

국제법 전문가인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워싱턴 선언'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란 견해를 밝혔다. <한반도 종전선언 싫어하는 미국 '유엔사'의 나갈 길>이란 통일뉴스 기고문(2021년 11월 4일)에서였다. 그는 "1945년 유엔 체제가 도입한 집단안보 체제 정의에 의하면, 모든 회원국은 국제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라며 "그래서 국제분쟁 발발 시에도 개별 국가는 무력 사용 및 위협을 무조건 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예외적으로 유엔 헌장 제51조와 제7장에 자위권 행사와 강제조치를 각각 규정하고 있지만, '무력 공격 재발 시 참전국 군대의 자동적 재소집과 즉각 대응'을 약속한 워싱턴 선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로운 결의도 없이 다시 군대 파견을 결의한 것으로서” 유엔 헌장 제51조와 제7장의 관련 규정을 명백히 위반했다”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윤 정부는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 때 '전쟁 재발 시 회원국들의 즉각 참전' 약속을 담은 '서울 선언' 채택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이종섭 국방장관은 "과거 1953년 체결됐던 워싱턴 선언을 갱신할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라며 "유엔사 회원국들도 안보 분야에서 더욱더 결속력을 다져나가는 그런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주장했다.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한 훈련장에서 한국과 미국 해병대원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한국, 미국, 영국 수색부대는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합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2023.3.23. 연합뉴스
 22일 경북 포항시 북구 한 훈련장에서 한국과 미국 해병대원이 함께 이동하고 있다. 한국, 미국, 영국 수색부대는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합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2023.3.23. 연합뉴스

유엔사, 1978년 한미연합사에 작전권 이양

1950년 7월 27일 도쿄에서 출범했던 유엔사는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었다. 가장 큰 변곡점은 1975년 유엔총회의 해체 결의였다. 그 시한은 이듬해인 1976년 1월 1일이었다. 그러나 유엔사를 주도해온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에 1978년 11월 한미연합사령부(CFC)를 창설하고 유엔사의 작전권을 CFC에 넘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유엔사의 기본 임무는 평시에는 정전협정 관리, 한반도 유사시에는 전력 제공으로 축소됐다.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 후방기지(UNC-Rear)는 한반도 유사시 전력제공국들의 병력과 장비를 원활하게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숫자를 확대하는 한편, 유엔사에 회원국 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다시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정전협정 관리와 유사시 전력 제공이란 유엔사의 기본 임무와 관련해 "유엔사 체계 최신화 방안”을 유엔사 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미래연합사령부의 창설과 전시 작전권 전환, 그리고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추진 등의 문제와 맞물리면서 유엔사의 역할을 놓고 한미 간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유사시 한반도에 진입할 유엔사 전력제공국의 수를 최대한 늘리려 했던 반면, 문 정부는 그것이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 위기를 조장할 우려가 있어 적절치 않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두 번째 3천t급 잠수함인 '하쿠게이'가 20일 취역했다. 사진은 2021년 10월 14일 고베에서 열린 진수식 모습. 2023.3.20 연합뉴스
일본 해상자위대의 두 번째 3천t급 잠수함인 '하쿠게이'가 20일 취역했다. 사진은 2021년 10월 14일 고베에서 열린 진수식 모습. 2023.3.20 연합뉴스

미국, 유엔사 전력제공국에 일본 참여도 염두

처음엔 '유엔사 전력제공국' 개념에 대한 한미의 견해는 일치했다. '6·25전쟁 때 전투병력을 파병한 나라 중 195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재참전 의사를 밝힌 나라'로 한정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6월 미국이 <유엔사 관련 약정 및 전략지침>을 개정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은 전투병 파병과 무관하게 참전국 모두로 그 개념을 넓히고 앞으로 '기여할' 국가로까지 확장을 시도했다.

미국은 6·25 때 의료지원국인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의 가입을 요청했다. 그래서 전투병을 파병했던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등 14개국을 포함해 17개국으로 늘어났다. 미국은 비참전국에게도 문호 개방을 추진했다. 뭣보다 일본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냈음은 물론이다. (경향신문 <박성진의 군 이야기> 2019년 7월 15일자).

미국은 유사시 한반도에 진입할 유엔사 전력제공국 병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새로 창설될 미래연합사가 아니라, 유엔사에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다. 한국군 대장이 맡을 미래연합사령관이 다국적 전력과 장비 등을 통솔할 '현실적 능력'이 없다는 인식이 그 밑에 깔려 있다.

 

주한미군이 사드 발사대 훈련 사진과 함께 공개한 패트리엇 사진. [미 국방시각정보시스템] 연합뉴스
주한미군이 사드 발사대 훈련 사진과 함께 공개한 패트리엇 사진. [미 국방시각정보시스템] 연합뉴스

미국, 유엔사에 회원국 전력 작전권 부여 추진

그래서 미국 일각에서 유엔사에 지원전력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부여하는 것을 넘어, 유엔사를 아예 '독립적인 전투사령부'로 만드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로버트 에이브럼스 유엔사령관은 부인했다.  그는 2019년 강연에서 "유엔사를 어떤 작전사령부로 탈바꿈하려는 비밀계획 따위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미, 유엔사 '독립 전투사령부화' 염두> 2020년 11월 17일)

윤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강제동원 문제 대응에서 보듯 미국의 말이라면 무조건 듣고 보는 윤 정부인 만큼 유엔사 문제도 미국의 뜻대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작권 전환은 유보된 채로 유명무실해질 개연성이 높다.

전작권 전환 문제와 맞물려 2014년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미국이 본격화한 '유엔사 재활성화'(UNC Revitalization) 작업은 윤 정부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1978년 작전권 이양 이후 반세기 가까이 '동면' 상태에 있던 유엔사가 가공할 전쟁기구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재무장을 통한 일본의 군국주의화와 맞물려 한반도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은 또한 '유엔사 재활성화'라는 구상에 따라 유엔사 전력제공국 결집을 위해 한미 군사연습에 이들 국가의 참가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그 빈도와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역대급인 '자유의 방패' 한미 연합연습의 일환으로 진행된 한·미 해병대 쌍룡 연합상륙훈련에 영국 해병 특수부대 코만도(Commandos) 1개 중대가 처음으로 참가한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쌍룡훈련에는 호주가 참가했다. 둘 다 전력제공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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