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시인

농식품부와 해수부의 각종 농어촌지역개발사업, 국토부의 도시재생사업 등 소멸해가는 농촌과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활성화하고 재생하려는 정부의 지원정책은 많다. 하지만 성공사례는 흔치 않다. 도대체, 왜 그런 사업을 마을에서 벌이는지 필요성과 목적이 뚜렷치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관련 법과 정책과 제도의 허점과 오류가 작지않다. 마을공동체의 3대 책임 주체인 행정과 전문가와 주민의 역량, 마음가짐, 태도와 자세도 만족스럽지 많다. 이른바 ‘마을만들기’로 속칭되는 농촌지역개발사업의 근본개념과 기본철학과 기반패러다임부터 재인식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2017년 10월에 경남 김해시 가야의 거리 일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마을기업박람회&공동체 한마당'에 전국에서 참가한 마을기업들의 부스가 차려져 있다. 2017.10.27 연합뉴스
 2017년 10월에 경남 김해시 가야의 거리 일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마을기업박람회&공동체 한마당'에 전국에서 참가한 마을기업들의 부스가 차려져 있다. 2017.10.27 연합뉴스

국가기간산업인 농업과 마찬가지로 농촌 일에도 아무나, 함부로 뛰어들거나 덤벼들면 안 된다. 모름지기 마을공동체사업을 책임지려면, 공공성과 공동체성에 대한 인식과 자세부터 진지하고 투철해야 한다. 특히, 공익보다 사익을 주로 추구하는 외부의 상업적 사설 용역업체는 용역입찰 판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마을공동체사업이라는 공공사업은 공익성과 책임감, 진정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면 잘하고 싶어도 잘할 수 없는 어렵고 무거운 사업이자 업무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 역할과 소임은 온전히 마을을 가장 잘 알고, 마을의 미래를 유일하게 책임질 수 있는 마을주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마을주민이 ‘마을기획자’로 예비계획과 기본계획을 세우고, 마을주민이 ‘마을학교사’로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마을주민이 ‘마을컨설턴트’로 마을의 대안과 해법을 개발하고, 마을주민이 ‘마을사업가’로 마을기업을 세우고 꾸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마을사업 판은 마을의 주인이자 마을사업의 주체인 내부 마을주민이 아닌 상부의 비전문 행정공무원이나 외부의 사설 용역업자가 주도하는 형국이다. 그토록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인 ‘토건식, 관광형 마을 만들기’라는 삽질, 허튼 짓의 늪에서 당장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외부인의 관광지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전시행정용 마을 만들기’가 아닌, 원주민, 귀농인, 출향인 등 내부인의 생활과 생존의 터전을 마련하는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생활공동체마을 살리기’로 패러다임과 방법론을 정상화할 수 있다.

마을기업을 넘어서는 ‘지역사회기업’의 사회적자본

2007년 9월, '마을기업을 세우자'고 처음 제안했다. 귀농해서 한 농업회사법인 농장에서 일하며 마을주민들과 마을공동체사업을 함께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여기서 마을기업이란 '친환경 농업기반, 농촌경영체 중심, 도농상생 생활 · 생태공동체로서, 비록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놓여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마을 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설립하고 경영하는 지속 가능한 사업 단위체'를 뜻한다. 마을주민 스스로 마을공동체사업을 능히 책임지려면 서류상 허울뿐인 위원회나 협의체가 아닌 마을기업이라는 사업주체가 선결과제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후, 행정안전부의 '마을기업 육성사업'을 통해 마을기업도 많이 세워졌고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그 관제 마을기업들이 과연 마을사업의 책임주체로 자리매김이 되었는지 자신이 없다. 아마도 기존 마을기업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의 한계부터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농촌마을 단위에는 마을기업을 함께할 만한 사람도 없고, 자본도 없고, 자산도 없고, 시장도 없고, 전망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마을기업'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올라가야 한다. 양적인 진화에서 질적인 진화로, 경제적인 진보에서 사회적인 진보로, 마을 단위에서 지역 단위로 진화하고 진보해야 한다. 마을을 넘어 마을과 마을, 마을과 지역, 지역과 사회를 협동과 연대의 힘으로 잇고 엮고 묶어야 한다. 지역 또는 지자체 단위의 공동체사업 협동경영체로서 '지역사회기업'으로 발전해야 한다. 적어도 마을(행정리) 단위를 넘어서 적어도 읍‧면 지역 이상, 기초지자체 수준의 사업지역을 기반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주민직영 자조·자치 중간지원조직의 사회적자본

이때 ‘지역사회기업’은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도시재생, 농업, 지역균형발전 등 해당 지역 단위의 각종 연관·연계사업의 계획과 관리와 수행을 총괄적으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해당 지역에 관해서는 일종의 주민직영 자조‧자치 중간지원조직의 역할과 위상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세종시 전의면에서는 전의면민들이 '전의사회적협동조합'을 함께 꾸리며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도시재생뉴딜사업, 마을교육공동체사업, 사회적경제 등의 관리와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일종의 '지역사회기업'의 선행적 모델로서 가히 주민직영 자조‧자치 중간지원조직의 국내 최초·유일의 사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을공동체나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고 재생하려면 법이나 정책, 제도 이전에 먼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부터 준비하는 게 순서다. 행정의 예산과 관심이라는 지원도, 주민의 의지와 학습이라는 자세도, 전문가의 경험과 역량이라는 기술보다 사회적자본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만일, 신뢰, 협동, 연대, 참여, 규범, 네트워킹 같은 사회적 자본이 마을공동체 내부에 충분치 않다면 마을사업은 아예 시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제 마을공동체사업을 제대로, 잘하고 싶다면 각 지역마다 마을공동체의 텃밭에 사회적자본의 씨앗부터 먼저, 깊이 뿌려야 한다. 인적 사회적자본을 위한 '지역사회 생활기술 직업전문학교', 물적 사회적자본을 위한 '유휴시설 지역공유 사회적자산은행', 조직적 사회적자본을 위한 '지역사회기업(협동조합)', 플랫폼형 사회적자본을 위한 '지역주민 직영 자조·자치 융복합 중간지원조직‘ 등 4대 사회적자본 발전소부터 세워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형 마을공동체사업의 입구전략이자 출구전략은 새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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