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 속히 폐지해야

이재명 대통령과 엇나가는 과기부의 행보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2025.11.7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7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 국민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2025.11.7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2025년 7월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30여년간 지속된 PBS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 대폭 개선(폐지)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재명 정부가 드디어 연구기관들을 옥죄고 있던 수많은 병폐들에 대한 근본대책을 수립하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었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즉시 환영의 메시지를 내기 시작했으며 전 언론에서도 국정기획위원회의 결정에 긍정적인 보도들을 쏟아냈다. 사회개혁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져온 조선일보조차 ‘환영’하는 기사를 여러 개 보도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대부분의 언론에서 ‘환영’ 일색으로 보도가 된 이유는 바로 오랫동안 PBS가 과학발전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왔다는 것이 진보 보수 모두의 공통된 인식으로 자리잡아왔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거나 과학기술정책을 연구해온 학자들 대부분이 그 현실을 정확히 직시할 수밖에 없고, PBS가 문제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PBS 폐지는 수십년간 국회 과방위(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질의의 단골 소재였으며 오랜 숙제였다. 그럼에도 ‘진실’을 외면하고 ‘개혁’을 바라지 않는 일부 사람들, 과학자와 과학계를 ‘돈먹는 하마’로 여기고 불신하는 일부 정부부처 관계자들로 인해 PBS는 오랫동안 ‘무너뜨려서는 안되는 성곽’이었다.

이제는 이재명 정부가 도입한지 만 29년 만에 PBS라는 ‘성곽’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보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최종적으로 담기게 된, PBS폐지와 관련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국정과제를 담으면서 PBS의 문제점도 함께 담았다. ‘단기·파편화된’ 연구시스템을 ‘중장기, 임무중심형’으로 전환한다는 문구를 담으면서, PBS가 중장기적이며 융합적인 연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과학기술 연구는 장기적이고 협동을 해야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음에도, 프로젝트별로 경쟁적으로, 쪼개기로 진행되면서 과학기술 연구가 분절적으로, 단기적으로 이뤄져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이다.

PBS는 도대체 무엇일까

PBS, 즉, Project Based System(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은 연구가 프로젝트(과제)로 진행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즉, 연구관리체계를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하는 것이다. 언뜻 듣기로는 연구가 ‘과제’별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PBS’에 숨은 ‘신자유주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PBS 이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는 정부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출연금 형태로 연구비를 지급했다. 정부 연구개발 자금을 기관 중심(Institute-based funding)으로 지원한 것이다. 이 비용에서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인건비와 경상비(건물운영비, 연구시설비 등)를 부담했다. 그리고 연구기관 안에서 기관장과 과학자들이 소통하여 각종 연구과제가 진행되었다. 필요한 경우에는 연구기관들의 연합 형태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몰아치면서 김영삼 정부는 미국의 ‘PBS제도’를 한국에 도입하여 과학자들을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으로 내몰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 모든 과제가 내려오도록 하고 과제 안에 과학자들의 인건비와 연구기관의 경상비를 포함시켰다. 즉, 과제를 따야 과학자들이 월급도 받고 연구기관이 운영이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더 이상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정부 ‘소속’ 연구기관이 아닌, 민간연구소와 다를바 없는 상황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상 ‘민영화’였다. 과학자들이 과제를 ‘따지 못하면’ 과학자들은 월급을 받지 못하고 연구기관 역시 경상비가 없어서 행정직원까지 모두 해고해야 하며 전기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IMF를 불러온 김영삼 정부의 최악의 정책, 바로 ‘한국식 PBS’였다.

최악인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 과학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 연구’를 통해 과학강국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PBS가 도입된 순간 도전적 연구는 아예 불가능해졌다. 과학자들은 ‘생존’을 위해 연구 자체보다는 외부 자금 확보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연구능력보다는 인맥 등을 통해 과제를 ‘따는 능력’이 더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연구 아이디어나 장기적인 학문적 기여보다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과제 중심의 활동으로 내몰렸고 ‘수주능력 뛰어난’ 과학자들이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연구 현장에서는 안정적인 연구 문화가 약화되고, 경쟁과 불안감이 팽배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는 ‘협력만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연구환경 풍토를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말았다.

PBS제도가 이공계 기피 현상 초래

과제 유치 실패는 곧바로 인건비 부족과 생활 불안으로 이어지며, 과학자의 자존감과 직업적 안정성에 타격을 준다. 장기적으로 연구기관의 인적 자원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기 저하와 지속적인 압박 속에서 과학자들은 탈진을 경험하거나,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 다른 기관이나 민간 영역으로 이탈하게 된다. 우수 인재의 유출은 연구기관의 역량 저하로 직결되며, 연구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미친다. 실제로 연구기관에서 지속적으로 청년 과학자들의 유출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다. 특히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에서는 인건비의 불안정성이 과학자의 도전을 가로막는 주요한 걸림돌로 작용했다.

인건비 불안정성과 과도한 경쟁이 누적되면서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적 결과는 바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과학자들이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확보하지 못하고, 과제 수주 경쟁에 매몰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자 젊은 세대는 과학자의 삶을 매력적인 진로로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정작 과학에 재능있는 아들, 딸을 의대로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실제로 대학원 진학률이 점차 감소하고, 이공계 전공생들이 연구직보다는 의학 계열, 전문직, 공무원 등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연구를 지속할수록 생활 불안정과 낮은 보상에 직면한다는 현실은 잠재적 인재들의 진입 자체를 막아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이공계 기피는 단순히 특정 학문 분야의 인력 부족 문제에 그치지 않고, ‘과학자 기피 현상’으로 확대되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어린이들의 장래 희망이 ‘과학자’였지만,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은 ‘과학자의 꿈’을 꾸지 않는다. 과학자는 국가 혁신 역량의 핵심이지만, 현재의 제도적 환경 속에서 과학자는 ‘불안정한 직업군’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과학자의 경력경로가 불투명하고, 성과 압박과 경쟁에 내몰리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우수 인재는 과학자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보다 안정적이고 보상이 명확한 진로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헌신할 인력이 점점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 전반에서 의대 선호 현상이 강화되었다. 연구직의 불안정성과 낮은 보상이 부각될수록, 청년과 학부모들은 ‘안정적 직업’으로 대표되는 의사라는 직업군에 몰렸고, 이 현상은 갈수록 심해져 이미 정점을 찍은 상태다. 과학기술 인재가 의료 분야로 쏠리면서 국가 연구개발 생태계 전체의 인적 자원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이공계 전반의 다양성과 혁신 잠재력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연쇄적인 현상은 국가 경쟁력의 전반적인 하락으로 귀결된다. 과학기술 분야의 인재가 줄어들고, 창의적 연구가 위축되면, 장기적으로 국가의 기술 혁신 역량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 성과 중심의 PBS 구조가 장기적 연구 생태계를 붕괴시키는 구조적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PBS 폐지를 통해 안정적 인건비 보장과 연구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과학자 개인의 불안정성은 사회 전반의 인재 구조 변화를 촉발하고, 이는 결국 국가의 지속적 발전과 경쟁력을 위협하는 치명적 요인이 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1996년 김영삼 정부 때 도입된 PBS는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사회적 문제로 지적되었다. 심지어 IMF가 터지면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자 대량해고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따라서 연구직의 정규직화와 PBS제도를 바꾸자는 논의는 IMF가 끝난 2000년부터 바로 이뤄졌다.

그러나 왜 20년이 넘도록 진행되지 못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재부를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의 저항에 과학계와 청와대가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료들의 과학자에 대한 시각은 최상목의 발언 ‘기재부는 엘리트, 과학자는 카르텔’에서 단번에 인식할 수 있다. 즉, 기재부 관료들 스스로는 안정된 직장에서 일을 해도 성과를 내지만, ‘과학자들은 직장이 안정되면 성과를 못 내고 부패를 저지른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PBS 폐지를 원하는 과학계와 합심한 3번의 민주정부의 발목을 모두 잡아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9년 3월, <현장 과학자와 정부가 함께 하는 국가 R&D 제도 혁신>이 발표되면서 PBS 폐지가 공식화되었지만, 3년동안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정부는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막상 과기부 관료들의 미온적 태도, 기재부의 반대 속에서 흐지부지 3년이 흘러갔고 결국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민주정부’를 믿었던 과학자들의 실망이 컸다.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민주정부’를 뛰어넘은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지 않았는가. 이재명 대통령은 11월 7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과학자들에게 밝혔고 많은 과학자들이 열광했다.

이를 위해 이재명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PBS 폐지이다. 3차례 민주정부 실패 전철을 절대 밟지 말아야 한다.

이재명 정부와 다르게 가는 과기부의 행보

그러나 막상 이재명 대통령과 과기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과기부는 지난 9월 PBS를 폐지한다면서, 윤석열 정부 당시 추진되던 ‘기관전략개발단(ISD, Institute Strategy Development)’을 다시 들고 나와 PBS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이재명 정부와 PBS 폐지’라는 이름 아래 ‘윤석열 정책’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셈이다. 그러자 과학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다. 겉으로는 ‘PBS 폐지’, 속으로는 ‘윤석열’을 추진하겠다는 데 찬성할 사람은 없었다.

과학자들의 저항이 심하자 10월 과기부는 그제서야 2029년에 PBS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그 '단계'는 모호했다. 당장 2026년부터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2026년부터 시작되는 신규 과제는 변화가 없었다. 2026년 신규 과제라도 과학자 인건비와 연구기관 경상비를 모두 연구기관에 출연금 형태로 지급해야 함에도 이를 추진하지 못하겠다는 입장만 밝혔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또다시 ‘말만 앞서고’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제기되었다. 사실상 ‘Again 문재인’, ‘Again 윤석열’ 상황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과기부는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 국민 앞에서, 과학자들에게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다시 과학인을 꿈꾸며, 장래 희망으로 ‘과학자’를 적어내는 과학기술 강국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정책 방향에 따라 과기부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을 ‘단기성과만 노리는 생계형 과학자’로 전락시키는 PBS제도 폐지를 2026년 신규 과제부터 당장 시행해야 한다. 이를 바로 시행해야 과학자들도 이재명 정부의 과기부는 ‘다르다’고 신뢰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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