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 문민 국방장관의 군령권 회수 주장
국힘 정치인, 합참의장에 군령권 이양법 추진
일제 군부, 내각 통제 벗어난 군령권 확보
쿠데타·전쟁 남발…결국은 국가 파멸 초래
미국 국방부 장관에겐 군령권이 없다?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문민 통제 흔들기
국방 분야 일부 구성원들이 국방부 장관에 있는 군령권을 합동참모본부 의장에게 넘기고, 문민 국방부 장관은 군정 업무만 맡도록 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군정권은 군대의 모집, 양성, 교육, 보급, 인사 등에 관한 업무이며 군령권은 실제 전쟁을 위해 군대를 움직이는 업무입니다. 군령권이 훨씬 중요하죠. 군인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도맡던 시절을 마감하고, 64년 만에 문민 장관이 탄생했습니다. 이런 시점과 관련성이 깊은 쟁점입니다.
일부 언론, 문민 국방장관의 군령권 회수 주장
국힘 정치인, 합참의장에 군령권 이양법 추진
몇몇 언론 매체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2025년 5월 11일 자 A신문, 6월 24일 B방송 시사 대담, 10월 3일 C신문이 비슷한 취지로 보도하고 논평했습니다. 10월 3일 C신문은 육군 소장을 지낸 강선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국방부 장관의 군령권을 합참의장에게 넘기며, 대통령이 의장을 맡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합참의장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다른 장관급과 나란히 정규 멤버로 참여하도록 정부조직법 등 관계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국회 의안 관리 체계를 확인한 결과 10월 20일 현재 해당 법안은 발의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주장의 요지와 문제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 때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불법 계엄을 주도했습니다. 이들 보도, 논평에서는 국방부 장관이 군정권과 군령권을 모두 틀어쥔 '제왕적 장관'이라서 불법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진단합니다.
12·3 불법 계엄과 내란은 윤 당시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아랑곳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벌였습니다. 군 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군정권과 군령권이 나뉘어 있다고 해서 친위 쿠데타를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이 문제의 원인인데요. 엉뚱하게 장관이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어서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본말을 뒤바꾸면 곤란합니다.
미국 국방부 장관에겐 군령권이 없다?
사실까지 왜곡해가며 문민 통제 흔들기
둘째, 이들 보도와 논평은 미국에서도 국방부 장관이 군정권만 행사하고 군령권은 행사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A신문 보도는 미국 연방 법전 제10편 제113조에 "국방부 장관은 국방부의 정책 수립, 예산 관리, 인사, 조직 운영 등을 총괄한다. 다만 군령권은 직접 행사하지 않으며, 이는 대통령이 전투사령관에게 위임한다"라고 규정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연방 법제를 필자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여러 차례 거듭 확인했습니다. 위와 같은 표현은 미 연방 법제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국방부 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전투사령관을 지휘하며, 합참의장은 지휘권과 무관하게 자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더군요. 미국 법제에서는 군령권이란 우리식 표현도 쓰지 않습니다. 전투지휘권(operational command)이라고 더욱 명확한 표현으로 장관의 권한을 확고히 해두었습니다. 미 연방법은 문민 통제를 위해 민간인이 국방장관을 맡도록 하고 있습니다.
셋째, 작전을 잘 모르는 문민 국방부 장관보다는 현역 군인 서열 1위인 합참의장이 직접 대통령한테 보고하고 명을 받는 게 효과적이라고 이들 보도와 논평은 주장합니다. 대통령은 국방뿐 아니라 기획재정, 외교, 행정‧안전, 법무, 교육을 포함해 부 이름을 갖는 중앙부처만 따져도 19개 영역을 통할해야 합니다. 국방 분야만 장관을 젖혀두고 대통령이 직접 업무를 챙기게 한다고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죠. 권력 보위를 위해 친위부대를 직할하는 일부 왕정과 독재 국가라면 몰라도, 세계 대다수 민주주의 나라는 '군 통수권자-군대 직거래'를 택하지 않습니다.
일제 군부, 내각 통제 벗어난 군령권 확보
쿠데타·전쟁 남발…결국은 국가 파멸 초래
'군 통수권자-군대 직거래' 선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 헌법을 통해 천황에게 육해군 통수권을 부여한다면서 군대를 내각에서 분리했습니다. 군사 작전 지휘(군령)는 정부와 무관하게 천황 직속의 참모본부가 맡고, 내각은 군의 행정 업무(군정)만 관장하는 구조였지요. 그 결과 정부는 병력 모집과 편성 같은 일에만 관여할 뿐, 군대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하는지 관여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군이 통제 불능의 국가 기관이 됐죠.
일본 군부는 정부 방침을 무시하고 멋대로 군사행동을 벌였습니다. 내각이 전쟁 확대를 억제하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동군은 구실로 삼을 사건을 조작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1931년에는 만주사변을, 1937년에는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켜 중일전쟁을 촉발했습니다.
군부는 직접 정권을 잡으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정치 지도자를 암살했습니다. 1936년 2·26 사건 때는 젊은 육군 장교들이 도쿄 한복판에서 반란을 일으켰죠. 1932년 5·15 사건 때는 해군 장교들이 총리를 암살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군부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하다가 태평양전쟁으로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기에 이르렀습니다. 무모한 전쟁으로 수천만 아시아인이 희생됐고 일본도 폐허가 됐습니다.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민군 관계를 연구해 '군인과 국가'라는 명저를 남겼는데요. 이 책에서 헌팅턴은 민군 관계에 '문민 통제'와 '군국주의'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고, 그중 문민 통제가 바람직한 안보 방식이라고 설파합니다. 일본 군대가 내각 통제를 벗어나 '통수권자 직거래'를 한 것을 최악의 군국주의 사례로 적시했습니다.
우리는 63년 만에 문민 국방부 장관을 갖게 됐습니다. 국방 역량을 발전시키고 국방부와 국군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좋은 기회입니다. 미래지향적인 개혁 아이디어를 활발히 논의해야 합니다. 국방부 장관한테서 군령권을 회수한다고요? 문민 통제를 흔들게 될 겁니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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