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연대 접근금지 가처분 결정문 뜯어보니
"시체 팔아 돈 버냐" 패륜에 판단 회피한 재판부
법 사각지대 용인한 결정…추가 2차 가해 우려
유가족 "일말의 공감의식 없는 법원에 좌절감"
"법원이 2차 가해 사실상 방치·조장…엄중 규탄"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극우보수단체의 시민분향소 접근을 금지해달라고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소극적인 해석으로 인해 법 사각지대를 이용한 유가족 2차 가해가 더 극성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임정엽 수석부장판사·차승우·송현직)는 6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와 이종철 유가협 대표 등이 신자유연대와 이 단체 대표인 김상진 씨를 상대로 낸 분향소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유가협은 지난해 12월 29일 신자유연대와 김 씨의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앞 이태원 광장 시민분향소 출입과 접근을 막아달라고 신청했다. 또 분향소 100m 이내에서 확성기로 방송하거나 고성을 지르지는 행위, 현수막, 팻말, 벽보 등을 게시하는 행위도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분향소 반경 100m 안에서 방송이나 구호 제창, 현수막 개시 등을 못하도록 해달라는 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향소 설치를 이유로 이미 신고를 마친 신자유연대의 집회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수석부장판사인 임정엽 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1심에서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한 판사다.
막말·패륜성 발언하고 유족 얼굴 도용해 현수막
유가족이 그동안 겪은 2차 가해 고통은 결정문 '별지' 소명자료 목록에 고스란히 나온다.
유가족 측에서 제출한 확성기, 음향증폭장치(앰프) 사용 및 고성 제창 목록을 보면, 신자유연대 측은 지난해 12월 14일 자동차에 설치된 앰프를 이용해 "뭘 더 바라냐" "선동하지 마라"고 발언했다. 12월 15일에는 김 씨가 분향소 참배객들을 상대로 "너희가 인간이냐" "전문 데모꾼" 등의 발언을 했다.
또 12월 19일에는 분향소 옆 신자유연대 텐트 쪽에서 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유가족을 향해 "탤런트 지한이 XX 엄마 시체 팔아서 돈 벌려고 하느냐"고 했다. 당시 고 이지한 씨 어머니 조미은 씨는 이 발언을 듣고 기절했다.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에는 신자유연대 주최 집회 참여자가 "못살겠다 분향소를 철거하라" "못살겠다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고 하울링(소리를 증폭해 소음을 발생하는 것)을 발생시켜 추모 미사를 방해했다.
또 이들은 "악마 신부 물러나라"며 음량을 크게 해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했고, 유가족들을 향해 '징글벨' '울면 안돼' 등 즐거운 곡조의 캐럴을 재생했다. 김 씨 역시 확성기를 이용해 "거짓 신부, 정치 신부 물러나라" "정치 신부 물러가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가족 측이 제출한 현수막 관련 소명 자료를 보면, 신자유연대는 분향소 맞은편에 이종철 유가협 대표의 얼굴이 붙은 현수막을 게재하고 이 대표의 사진 위에 "우리(신자유연대) 앞에서는 도발, 삿대질, 비웃기" "방송 카메라 앞에서는 2차 가해 당한다며 울기"라고 적었다.
아울러 이들은 같은 현수막에 "이종철은 유가족 대표의 자격으로 자식 이름 거론하며 상습적 거짓말로 신자유연대 대표와 신자유연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공개 사과하라!"고 적으며, 오히려 자신들의 명예 훼손을 주장했다. 실제로 김 씨는 이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상태다.
또 "유가족 대표 부부의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막말과 민주당 정치인 옹호의 정치적 편향성은 도를 넘고 있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158명의 고인들로부터 정치적 편향에 대하여 위임은 받았나? 이종철 부부는 사적인 정치감정으로 고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라!"고 적었다.
이와 함께 이들은 "국민들에게 더이상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하는 노동당 꺼져!" "남의 죽음 위에 숟가락 올려 정치선동질하는 민변 꺼져" 등 추모를 방해하고 추모를 돕는 정당과 단체 등을 비난하는 내용의 현수막도 걸었다.
이 밖에 "이태원 참사를 즐거워하는 이재명" "세월호 팔아 집권한 문재인·이재명 민주당! 제도정비·법령정비 안하고 뭐했나?" 등이 적힌 현수막과 함께 "문재인 정권 때 해병대 헬기 마리온 추락 사고 사망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문재인 정권 때 창진호 전복 사고 사망·실종되신 분들을 추모합니다" 등 이태원 참사와 무관한 현수막들을 분향소 인근에 걸었다.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는 재판부
하지만 재판부는 신자유연대 측이 12월 14일 자동차에 설치된 앰프를 이용해 "뭘 더 바라냐" "선동하지 마라"고 한 발언에 대해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이나 유가족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12월 15일 김 씨가 분향소 참배객들을 상대로 "너희가 인간이냐" "전문 데모꾼" 등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분향소 설치에 관하여 대립하는 사람들이 시비를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이나 유가족들에 대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12월 19일 신자유연대 회원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유가족을 향해 "탤런트 지한이 XX 엄마 시체 팔아서 돈 벌려고 하느냐"고 한 것에 대해서도 "신자유연대 회원이 했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했다. 또 김 씨가 이 대표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것도 판단 이유에 넣었다.
재판부는 12월 25일 성탄절 추모 미사에 대해서도 정의구현사제단이 주재한 것이므로 신자유연대 측이 정치적 집회로 보고 행위를 했으며, 다른 종교행사에서는 방해가 없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유가족들의 종교행사를 방해할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현수막에 대해서도 "분향소 설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그 주된 내용이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을 비판한 것이고,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이나 유가족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대표의 사진을 도용한 현수막에 대해서는 "유가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하는 내용"이라 인정했지만 "이미 철거된 상태"라며 "신자유연대 측은 설치 후 30분 만에 철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현수막 외에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망자들이나 유가족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현수막은 게시된 적이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신자유연대 측이 장래 유가족들의 추모감정을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현수막을 게시할 개연성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부족하다"고 했다.
또 재판부는 신자유연대가 분향소 설치 이전인 지난해 11월 집회 신고를 마쳤다며, 유가족들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 설치 협조요청'이라는 공문만 발송하고 용산구청이나 용산경찰서에 정식신고를 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임의로 분향소를 설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장에서 유가족들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격권이 신자유연대 측의 '집회의 자유'보다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따라서 분향소 설치를 근거로 신자유연대 측을 배제하고 이 사건 광장을 배타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가족 "공감의식 없는 법원에 좌절…2차 가해 조장"
유가족들은 법원의 이 같은 판단에 2차 가해 행위를 사실상 방치한 결정이라면서, 즉각 항고하겠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결정 뒤 인터넷에서는 관련 뉴스에 2차 가해성 댓글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고 있다. 악성 댓글로 인해 10대 생존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에게는 고려 대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가협은 6일 성명서를 내고 "유가족들의 2차 피해와 고통을 외면한 법원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결정에 대해 즉각 항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면서 "피해자인 유가족들의 관점에서의 판단이 아니라, 가해자인 신자유연대의 관점으로 기울어진 판단을 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유가족들의 2차 피해와 그 고통에 대한 일말의 공감의식 없는 법원에 좌절감을 느낀다"며 "분향소 바로 앞에서 확성기 등을 사용해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159명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그만두라고 하거나 분향소를 철거하라는 등의 2차가해 행위가 표현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이번 결정은 추모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2차 가해행위를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결정이고, 나아가 이 결정은 참사로 희생된 희생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조장까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부당하다"며 "유가족들의 2차 피해를 외면한 법원의 결정을 엄중히 규탄한다"고 했다.
한편 신자유연대는 전날 법원 결정문과 함께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신자유연대는 유가족과 정치권, 일부편향 언론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2차 가해자라고 낚인(낙인의 오타로 추정)이 찍혔다"며 "이제 법원에서 판결이 나온만큼 그동안 그들이 얼마나 가짜뉴스를 퍼트렸는지가 입증되었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유가족이나 언론, 정치권에서는 신자유연대가 유가족을 2차 가해했다는 기사를 써서는 안 될 것이고 기존에 기사들도 삭제하거나 정정보도 해주시기 바란다"며 "56일째 진행되고 있는 용산 이태원광장 봉쇄작전 집회에 응원해주신 국민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고 했다. 의도적으로 이태원 광장 분향소를 괴롭혔다는 점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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