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지킨 역사 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독립·민주정신 반영한 역이름 단 2곳뿐

서울 버스정류장 이름 고작 15곳 그쳐

상징적 장소 몇개 역 시범 실시 어떤가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매헌) 역. 연합뉴스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매헌) 역. 연합뉴스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이름에 '무신사역'이란 대형 의류 기업 이름이 병기한다는 결정에, 지역 정체성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의 지하철공사와 국가철도공단은 기존 역 이름 아래 괄호에 또 다른 역 이름을 추가하는 역명 부기(付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꾸준히 찬반이 존재하지만, '만성 적자 해소'라는 분명한 실익 때문에 사업 자체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역 이름도 공공재이니만큼 기업 이름만이 아닌 공공성과 역사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미 부기된 역이름들을 보면 독립이나 민주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부근에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있기 때문에 '매헌'을 부기명으로 사용하고 있고, 올해 6월 서울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이름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들어간 두 사례뿐이다. 사실 '남영(南營)'이라는 이름 자체도 일제 잔재인데, 그 아래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넣었으니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순우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식민지 비망록 26>에 남영동을 '고약한 지명'이라고 부르며 그 유래를 기록했다.

 

남영역 간판 아래 부기된 민주화운동기념관 Ⓒ 방학진
남영역 간판 아래 부기된 민주화운동기념관 Ⓒ 방학진

1946년 10월 일본식 지명 잔재를 일소하는 차원에서 종전의 ‘연병정’(練兵町)을 대체하기 위한 지명이 창안되었는데, 이때 성급하게 붙여놓은 명칭이 ‘남영동(南營洞)’이다. (중략)

『한국지명총람 1(서울편)』(한글학회, 1966)에 수록된 내용에 따르면, 이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서울 남쪽에 영문(營門)이 있던 곳이라고 하여 남영동으로 개칭함”이라고만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영문’이 어느 시대에 존재했던 것인지, 아님 무슨 문헌상의 근거라도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관련 자료가 제시된 바는 없다. 그저 짧은 소견에 생각건대 남쪽에 있는 병영, 즉 남영은 일본군대의 용산 병영 그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따름이다. (중략)

애당초 ‘연병정’이라는 이름은 일본군대가 이 땅에 침탈의 흔적으로 남겨놓은 것이고, ‘남영동’ 이니 ‘남영역’이니 하는 것은 다시 거기에서 파생한 말이니 이래저래 꽤나 고약한 이름이 아닐 수 없겠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남영동’이라는 지명은 삭제되어야 하고, 다른 적절한 명칭을 찾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이순우, 『민족사랑』 2017년 6월호, 민족문제연구소)

 

용산연병장 위치가 표시된 「경성급용산」 지도자료.  『조선철도여행안내』(1915). 붉은색은 현재 남영역 위치 Ⓒ 이순우
용산연병장 위치가 표시된 「경성급용산」 지도자료.  『조선철도여행안내』(1915). 붉은색은 현재 남영역 위치 Ⓒ 이순우

독립운동가 이름을 대중교통 시설에 표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 서울 버스정류장 100곳에 독립운동가 이름을 나란히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는 15개 설치에 그치고 말았다. 파급효과를 볼 때 버스정류장보다는 철도역 이름에 부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사실 전국 방방곡곡이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사적이기에 거의 모든 역 이름에 독립과 민주의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과유불급일 수 있으니 대표적으로 몇 개만이라도 부기를 검토하면 어떨까. 역 이름 부기가 아니더라도 안국역처럼 구내 일정 공간에 독립·민주화운동 내용을 꾸준히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피로써 헌법에 새긴 독립과 민주의 역사를 기념식 때 만이 아닌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의중앙선 신원역 → 신원역(여운형역)
경의중앙선 오빈역 → 오빈역(정미의병역)
수도권 1호선 안양역 → 안양역(원태우역)
인천 2호선 시민공원역 → 시민공원역(인천5.3항쟁역)
에버라인 강남대역 → 강남대역(김혁장군역)
김포골드 구래역 → 구래역(김포독립운동기념관역)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통해 널리 알려진1907년 정미의병을 대표하는 이 사진의 촬영 장소는 몇 해 전 양평 오빈역 부근으로 확인되었다. Ⓒ 우리역사넷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통해 널리 알려진1907년 정미의병을 대표하는 이 사진의 촬영 장소는 몇 해 전 양평 오빈역 부근으로 확인되었다. Ⓒ 우리역사넷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