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땐 '중국을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 곡필
몇 년째 <조선일보>를 관찰 중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며 정권을 창출하기도 하고 퇴출시키기도 한다기에 감시자를 자처하며 <조선일보>를 관찰하고 있다. 내가 관찰한 <조선일보>는 괴벨스가 울고 갈 정도로 대중심리전에 탁월한 재능이 있고 마녀사냥도 잘하지만, 이슈 선점과 의제 설정(아젠다 세팅)에도 능하다. 독자들을 가르치고 계몽하려 하는 태도가 스마트 시대에 어울리지 않아 그 영향력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조선일보>에 예전에 없던 방식의 사설이 실렸다.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라는 거창한 제목의 사설이 7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게재되었는데, 기획 기사를 그렇게 보도하는 건 흔하게 봤지만 사설을 시리즈로 게재하는 건 본 적이 없다. 독특하다.
9월 22일부터 추석 연휴 직전까지 게재된 그 사설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하다.
유례없는 시리즈 사설로 찬(讚)중국 표변한 <조선일보>
첫 번째 사설은 ‘트럼프 관세 폭탄과 보호무역주의, 신냉전 부활로 한국의 자강(自强)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중국은 2015년부터 전기차·배터리·AI 등 첨단 신흥 산업을 집중 육성했고, 10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한국을 추월하고 미국의 패권을 넘보고 있는데, 그 눈부신 변화를 이끈 주역은 중국 공산당이란다. 자강이라 하니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력을 더욱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다’ 하던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얼핏 떠오르지만, <조선일보>의 기획 의도는 그게 아닐 것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한국 같은 서방식 정치인들이 아니란다. 과학과 공학의 소양을 갖춘 엔지니어 정부란다. 그런 중국 공산당으로 인하여 우리의 8대 주력 산업이 모두 위태롭단다. 중국은 국가 총력전으로 나오고 미국은 동맹을 버리고 있는 지금이 우리에겐 선택과 결단의 시간이란다. 일견 비장미마저 느껴지기도 하지만, ‘레드 콤플렉스’에 찌든 <조선일보>의 공산당 찬양도, 미국이 동맹을 버리고 있다며 결단을 촉구하는 비장함도 모두 낯설고 어색하다.
두 번째 사설에서도 공산당 찬양은 이어진다. 중국은 10년 사이에 ‘저가 생산 공장’에서 ‘최강의 제조 강국’으로 환골탈태했고, 우리는 명함도 못 내미는 우주항공 분야에서 우주정거장을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달 뒷면에 세계 최초로 착륙하는 성과를 냈으며, 제조업 경쟁력은 독일에 이어 세계 2위이고, 하버드대가 인공지능·바이오테크·반도체·우주·양자기술 등 5대 핵심 기술의 국가별 경쟁력을 평가했더니, 중국이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단다.
그 놀라운 변화가 단 ‘10년’ 만에 일어났단다. 속도는 경제와 산업의 승패를 좌우하는데, 우리는 도저히 못 따라갈 것 같은 ‘차이나 속도’ 역시 중국 공산당의 작품이란다. 한때는 한국의 발전 속도에 세계가 혀를 내두른 적도 있는데, 민주화 이후 사회·정치 갈등의 불길만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어 우리에게 ‘속도’는 ‘악’이 되고 있단다. 그게 다 정치권이 진영 논리에 빠져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기 때문이란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진영 논리를 퍼뜨린 주역이 <조선일보>라는 걸 <조선일보>는 보지 못한다. 경제는 시장에 맡기고 기업에 맡기라는 것이 보수진영의 주장이고 <조선일보>의 논조였다.
“중국 못 따라가는 건 박근혜 윤석열 아닌 진보정권 탓”
세 번째 칼럼은 중국이 ‘봉제에서 로봇까지’ 모든 걸 다 하니 우리는 할 게 없다는 탄식이다. 중국은 저가 범용품부터 고급 가전제품, 태양광 패널 등 청정 에너지 분야, 통신 장비와 고속철도 같은 국가 인프라 산업, 로봇과 AI에 이르는 최첨단 산업까지 수백 개 업종에서 독보적인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보했고, 이제 중국 제품 없이는 세계인의 현대 생활은 하루도 유지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란다. 제조업을 포기해선 안 되고 제조업 기반 없이는 4차 산업혁명을 쫓아갈 수 없는데, 모든 걸 다 만들고 장악하는 중국 앞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되고 있단다. 암울하여 한숨이 나온다.
네 번째 사설도 중국 경계령이다. 중국은 더 이상 ‘빠른 추격자’가 아니란다. 지금 당장 경제성이 없거나 성숙도가 낮아 다른 나라가 시도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 놓고 그 시장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게임 체인저’란다. 반도체·원전·배터리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은 물론이고 인공지능(AI)·로봇·드론 등 미래산업 전반에서 ‘먼저 가서 길목을 지키는’ 중국의 전략은 한국의 미래를 없애고 있단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위기도 중국에서 왔지만 해답도 중국의 성공 전략 안에 있다며 모든 걸 다 아는 현자 행세를 하더니 엉뚱하게 진보정권 탓을 한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교육·금융·공공 등 4대 부문 개혁으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모두 적폐로 몰려 뒤집혔고 문재인 정부는 근시안적 시야와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미래를 선점할 모험적인 정책과 투자에 관심이 없었단다. 연구소조차 불을 꺼버리는데 미래 경쟁을 할 수 있겠냐고 성을 낸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조선일보>의 문재인 혐오는 거의 병적이다. 박근혜의 국정 농단이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려는 것이었나? R&D 예산을 대폭 줄여 연구소의 불을 끈 건 새벽까지 폭탄주와 싸웠다는 대통령 윤석열이다.
이명박이 잘 개발한 해외자원 문재인이 팔아먹었다는 술주정
다섯 번째 사설은 세계 곳곳에 전진기지를 구축한 중국에 대한 질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었으나 이젠 세계가 ‘중국의 공장’이 되고 있단다. 중국이 소유권 또는 운영권을 가진 아프리카와 남미의 광산, 유럽의 항구와 공장을 표시한 지도를 보면 중국은 이미 지구 차원의 제국이란 말이 과장이 아니란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인데, 중국의 경제 영토가 확장된다는 건 우리가 설 땅이 좁아지는 것이라고 탄식을 한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자원외교를 한답시고 국고를 탕진한 이명박을 옹호한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이 개발한 해외 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수사하는 식의 정쟁으론 희망이 없단다. 이명박은 해외 자원을 확보했는데 문재인은 그걸 헐값에 팔아넘기고 수사를 했다는 건가? 이쯤 되면 사설이 아니라 술주정뱅이의 주사라고 함이 옳다. 나는 지금도 이명박이 자원외교 한답시고 탕진한 수십조 원의 국고가 누구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는지 궁금하다.
여섯 번째 사설은 인재 양성에 관한 얘기다. ‘짝퉁의 나라’ 취급을 받던 중국이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을 추월하여 미국을 위협하는 기술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젊은 인재 대군’이 있단다. 최대 빅테크 기업인 화웨이의 전체 직원은 21만 명쯤 되는데, 그중에 연구개발 인력이 11만 4000명으로 절반이 넘는단다. 글로벌 상위 10개 연구기관 중에 중국과학원이 1위이고 중국과학기술대(3위), 저장대(4위), 베이징대(5위) 등 8곳이 중국이란다. 우리의 서울대는 52위, 카이스트는 82위란다. 또 한숨이 나온다.
윤석열 편들었던 입으로 이공계 인재 걱정하는 기막힌 위선
중국의 이공계 인재 양성은 공산당의 일관된 계획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또 공산당을 찬양한다. <조선일보>는 불리한 기억은 삭제하고 유리한 기억만 남기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이 있나 보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은 불쑥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의사들을 자극하여 파업을 유도한 뒤 검찰을 동원한 강제 진압으로 추락한 민심을 끌어올리려는 선거용 꼼수였고, 안 그래도 심각한 이공계 이탈에 더 불을 지를 게 뻔했다. 그때 <조선일보>가 이공계 이탈을 걱정했던가? 의사들에게 반감이 큰 민심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윤석열의 꼼수를 비호하지 않았었나?
마지막 사설은 중국에서 배우자는 거다. 서구식 자유시장 경제가 ‘민간의 효율성’을 금과옥조처럼 여길 때, 중국은 공산당 국가 권력이 민간과 한 몸처럼 움직이며 가공할 속도와 효율성, 창의성을 만들어냈단다. 미국은 중국을 배제하려고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란다.
엄청난 중국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선일보>는 쓰나미에 올라타야 한단다. 누구는 더 높은 방벽을 쌓자고 하고 누구는 중국과 결별하자고 하지만 방벽을 쌓을 게 아니라 중국의 심장부로 뛰어들어야 한단다. 중국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이 상당수 철수했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단다. 거대 중국 시장을 포기해선 안 된단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사이에서 지혜롭게 앞길을 열어가야 한단다. 정치만 정상화돼 국익 문제에선 협력하면 불가능하지 않단다. 중국의 성공 방정식을 우리도 도입해야 한단다. 파도의 힘을 이용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파도가 높을수록 더 멀리 간다는 희망가로 <조선일보>는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시리즈 사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중국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 곡필은 누구 작품이었나
화가 난다. 친중 낙인을 찍고 중국 혐오를 조장하는 선봉에 <조선일보>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혼밥 외교’로 폄하하며 중국이 홀대했다고 중국 혐오를 조장했고,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는 혐오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바이러스 명칭에 지명을 쓰지 않는 것이 국제적인 합의임에도 굳이 ‘우한 코로나’라는 호칭을 쓰고 중국 혐오를 부추기며 중국인 입국을 금지하라는 대중 선동을 했고, 윤석열 정부에선 미국 맹종의 편향적 외교를 찬양하며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게 중국을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는 곡필로 탈중국을 강권했었다.
그뿐인가. 202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유세에서 미-중 갈등 상황에서 우리는 중국을 자극하지 말고 그저 ‘셰셰’ 하며 지내는 게 좋다며 실리 외교를 비유적으로 말했더니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친중 반미’ 낙인을 찍고 ‘기승전 이재명 혐오’를 확산시켰다. 총선 선거일까지 <조선일보>는 거의 매일 ‘이재명 셰셰’를 비열한 언어로 조롱하며 악담을 퍼부었고, 그런 행태는 2025년 대선에서도 반복되었다. 그건 보도가 아니라 선전 선동의 대중심리전이었고, 국익보다 수구 집단의 기득권을 더 중시하는 ‘족벌언론’ <조선일보>의 선거 개입이었다.
<조선일보>가 중국 굴기의 주역은 유능한 공산당이라고 찬양하고, 이제는 민간 주도가 아닌 공산당 주도의 중국에서 배워야 하며, 탈중국이 아니라 중국의 심장부로 뛰어들어야 하고, 미-중 패권 다툼의 사이에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시리즈 사설이 게재되는 동안에도 <조선일보> 지면에는 대통령이 된 이재명에게 여전히 ‘친중 반미’ 프레임을 씌우는 기사들이 빠지지 않았다. 진영 논리에 빠져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로 인해 중국에 뒤지게 했다고 비판하면서 궤도를 이탈하여 극우로 향하는 국힘당을 편들었고, 극우 집단의 위협적인 ‘중국 혐오’ 시위를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했다.
<조선일보> 유일한 애국의 길은 ‘혐오 팔이’ 안 하는 것
나는 경제전문가도 아니고 중국통도 아니지만, ‘중국 쓰나미 어떻게 넘을 것인가’ 사설의 위기의식에 공감한다. 사설에 인용된 자료는 한경협(구 전경련)이나 재벌기업의 연구소에서 받은 것 같다. 김대중 전 <조선일보> 주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국주의적인 극우 대통령이고 미국 MAGA(미국제일주의)의 수령인 트럼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느라 위기의식을 드러내지 못하는 재계의 요청이 있어 <조선일보>가 시리즈 사설을 게재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있지만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조선일보>의 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관찰자인 나는 <조선일보>의 ‘중국 쓰나미’ 사설이 불편하다. 오늘의 위기를 있게 한 책임이 있는데도 딴청을 부리고 남 탓이나 하면서 가르치고 계몽하듯이 중국 쓰나미 경계령을 발동하는 <조선일보>의 행태가 역겹다. 밥상을 어지럽힌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면서 정권 뺏겼다고 속이 뒤틀려 ‘혐오 프레임’에 매달리는 놀부 심보에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조선일보>에 당부하고자 한다. 나라 경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혐오 팔이’ 좀 하지 말라고. 그것이 국익이고 <조선일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애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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