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나오기 전 예수가 쓴 (가상)사과문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마가복음 1장 1절). 마가복음 전체를 요약한 표현 같다. 소유격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어 단어는 주어로 번역할 수 있고 목적어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또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을 뜻할 수 있고, 둘 다 맞다고 볼 수도 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예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음을 전제한다. 예수 삶에 커다란 변화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변화는 커다란 위기를 겪은 후에 생겼다. 예수는 어떤 위기를 경험했고, 그 위기에서 어떤 변화를 했을까.

30세 넘은 나이까지 예수는 하루도 맘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유다인은 무엇을 잘못했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두 질문을 예수는 고뇌했고, 오랜 침묵과 은둔을 떨치고, 생애 말년에야 세상에 나타났다. 그때 예수의 심정을 내가 편지로 써보았다.

<사과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유다인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나자렛 산골에 사는 예수입니다. 그동안 목수로 일하면서,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우리 유다인과, 선물하신 우리 땅을 식민지로 장악한 로마 군대에 저는 한 번도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제게 용기가 부족했고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생각은 많았고, 행동은 적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진심으로 제 과거를 반성하고 회개합니다. 이제 새 길을 걸으려 합니다.

예수 올림.

예수는 소시민의 안락한 삶을 떨치고 고난의 길을 자청했다. 가족을 떠나고, 자발적 실업자가 되었다. 가족 부양 책임을 포기한, 크게 비난받을 처신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갈릴래야 예수를 떠났을까?

당시 유다교에 여러 그룹이 있었다. 귀족 출신도 아니고 부자도 아닌 예수는 지배층 사두가이파에 속할 자격이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중산층 중심의 바리사이파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은둔 생활을 하는 에세네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로마군대에 무력으로 저항한 젤로데파에 가담하지도 않았다.

유다인의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 심판이 다가온다고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예수는 감동받았다. 예수는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스승의 부족한 점을 곧 알았다. 여성, 노인, 어린이들이 며칠을 걸어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기는 힘들었다. 인구의 90%가 넘는 가난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찾아 오가는데 드는 여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찾아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세례자 요한과 달리, 예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기로 했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을 떠나 고향 갈릴래아로 돌아와서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병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고, 사람들과 밥 먹고,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예수를 떠나버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예수를 버리고 떠났을까.

 

예수의 성전 정화, 야코프 요르단스, 165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8 x 436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예수의 성전 정화, 야코프 요르단스, 1650년경, 캔버스에 유채, 288 x 436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미술관

노선투쟁과 위기로 점철된 예루살렘 가는 길

예수 행동과 말씀에 모자란 데가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분명히 좋은 사람인데,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을 줄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로마 군대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지 않는 예수가 못마땅했다.

예수는 갈릴래아 활동을 마감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로 결단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민중 노선을 포기하고,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가르치는 엘리트 노선으로 전환했다. 자신은 예루살렘에 죽으러 간다고 선언했다. 제자들에게 권력을 욕심내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했다. 제자들에게 충격이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스승 예수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예수는 갈릴래아 활동에서 위기를 겪었고, 예루살렘 가는 길에서도 위기를 겪었다. 갈릴래아에서 가난한 사람들 대부분 예수를 버리고 떠났다. 예루살렘 가는 길에서도 제자들과 노선 투쟁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고, 제자들을 설득하지도 못했다. 예수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은 무엇인가.

억압하는 자들과의 싸움 택한 예수

예루살렘에서 예수는 생애 최후의 1주일을 보낸다. 예수는 의도적으로 반대자들에게 저항하여 갈등을 일으켰다. 이스라엘의 정치, 종교, 경제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는 성전항쟁을 홀로 결행했다. 유다교 지배층과 식민지 지배세력 로마 군대에게 예수는 위험한 인물이 되었다.

성전항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예수는 체포되거나 처형 당하지 않았다. 예수의 갈릴래아 활동은 유다인 권력층과 로마 군대에게 위협은 아니었다. 예수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했지만, 억압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의 예루살렘 활동은 유다인 권력층과 로마 군대에게 직접적으로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예수는 위기에서 변화를 찾았고 생각은 발전했다. 갈릴래아에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했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억압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유다교에 있던 하나님 나라 사상을 자신의 대표 사상으로 삼았고 메시아 사상을 확장했다.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억압하는 사람들과 싸우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는 메시아 사상은 예수가 인류에게 주는 놀랍고도 아름다운 선물이다.

 

The Crucifixion, 1622년, 제노바에서의 시몽 부에 그림. 위키백과
The Crucifixion, 1622년, 제노바에서의 시몽 부에 그림. 위키백과

위기를 맞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결국 두 가지 질문을 만난다. “나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로할 것인가? 나는 억압하는 사람들과 싸울 것인가?” 20대의 체 게바라는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예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싸울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를 십자가에 매달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는 여러 번 위기를 겪었다. 독자들도 여러 번 인생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스승이요 동지요, 대화 상대로서 혹시 예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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