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해방신학 공부하며 가난한 이의 피눈물 배워"
"좋은 종교인, 나쁜 종교인 구별하는 능력 길러야"
"내란 일으킨 윤석열 지지하는 목사는 멀리해야"
"정의구현사제단은 유네스코 등재할 국보지만…"
"사제단 뒤에 가려진 나태한 신부들이 더 많아"
"민주주의 파괴하는 가장 큰 세력은 극우 개신교"
"개신교 목사 10%만 사제단처럼 해도 세상 바꼈어"
"남보다 먼저 스스로 십자가 져야 진정한 신학자"
"빈부격차·불평등 없는 사회 위해 해방신학 알릴 터"
저명한 해방신학자인 혼 소브리노(Jon Sobrino)의 최초 아시아 제자인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해방신학자로서 먼저 십자가를 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남미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시골이나 공장, 시장을 떠돌며 성서의 '잉크 냄새'가 아닌 '피 냄새'를 맡았다.
제주에 거주하는 그는 성서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썼으며 칼럼 집필, 유튜브 방송 출연, 시민단체 활동 등으로 바쁜 와중에도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내란청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신학자로서 극우화한 정치권과 종교계에도 가감없는 비판을 내놓는다.
김 소장의 꿈은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없는,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에 가까워져서 더 이상 해방신학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 12일 제주의 한 호텔 카페에서 김 소장을 만나 해방신학의 의미, 해방신학자로서 바라보는 종교계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 봤다.
200여년 천주교 집안서 자라로 독일·남미 유학
가난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 닦아주는 해방신학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200년 이상 천주교를 믿어온 집안 출신입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전주에서 10㎞ 떨어진 산속에 숨어 살던 믿음의 선조들이 제 조상이에요. 6·25 때 할아버지가 북한군에게 학살당하셨죠.
2남 2녀 중 장남인 저는 전북 완주군 상관면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주고등학교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 러시아 소설을 탐독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어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신부가 되려고 광주 가톨릭대학에 진학해서 2년 공부하다가 독일로 떠났습니다."
-독일 유학 후 다시 남미 엘살바도르로 유학을 갔더라고요?
"독일 마인츠 대학교에서 8년 동안 신약성서를 전공했고, 남미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UCA)으로 가서 해방신학을 공부했습니다."
-해방신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신학은 하느님이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한다면, 해방신학은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최초의 해방신학자는 예수입니다. 1960년대부터 남미의 가톨릭 신학자들이 종교가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고 착취하고 억압해 온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해방신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신학하는 관점과 방법론의 하나로서 해방신학은 이제 세계적으로 종교계와 학계에서 두루 존중받고 있습니다."
-엘살바도르 유학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1981년부터 1992년까지 12년간 벌어진 엘살바도르에서 내전으로 8만 명이 희생됐습니다. 내전 끝난 지 5년 후인 1997년에 저는 해방신학을 공부하려는 열정에서 엘살바도르에 도착했어요. 겁 많은 지금의 저 같으면 못 갔을 텐데요. 혼 소브리노라는 저명한 해방신학자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스페인 소수민족인 바스크족 출신으로 18살 때 엘살바도르에 가서 60년 이상 예수회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그분이 가르치는 대학에서 3년 공부했어요. 소브리노 교수님과 독일어나 스페인어로 자주 토론을 했습니다. 스승에게 저는 아시아인 최초의 제자입니다.
5·18 광주 항쟁 두 달 전인 1980년 3월 24일 가난한 사람들 편을 들다가 독재정권에 살해된 로메로 대주교의 삶을 또한 깊이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독일과 남미의 신학 공부는 어떻게 달랐나요?
"독일에서 성서는 학문적 연구 대상인 문헌이었다면, 남미에서 성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 눈물이 담긴 현실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성서는 잉크 냄새가 났다면, 남미에서 성서는 피 냄새가 났습니다.
주중에 대학에서 공부하고, 주말에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시골이나 공장, 시장에 가서 직접 보고 이야기 나누고 그랬어요. 독일에서 신학의 기초를 닦았다면 남미에서 심화 학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종교인과 나쁜 종교인 구별할 능력 길러야
통일교·신천지, 극우·대형교회 목사는 나쁜 종교
-한국에 돌아와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2002년에 제주에 정착해 영어학원 강사로 생계를 꾸리느라 성서 연구나 집필을 못했습니다. 12년간 그렇게 우물쭈물 살다가 2013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책 읽고 오전에 원고 쓰고, 오후 4시부터 밤 10시까지 영어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말에 서울 촛불집회도 다녀오고, 시민단체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서 주석을 다시 쓰고 있다면서요?
"2013년부터 지금까지 책을 12권 썼고, 3권을 번역했습니다. 2018년까지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주석을 출간했어요.
올해부터 새로 주석서를 쓰고 있습니다. 존중받는 성서학자들의 책을 읽고 비교하고 또 내 의견을 정하기 때문에, 성서 주석이 쉽지는 않습니다. 네 복음서에 대한 제 생각이 그동안 적지 않게 바뀌었고, 성서학계의 새로운 연구 흐름도 참조해 다시 쓰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종교인으로서 느끼는 점이 있을 텐데요.
"좋은 종교인과 나쁜 종교인을 분명히 구분하는 능력을 우리 자신이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종교인과 나쁜 종교인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요?
"좋은 종교는 해방 종교, 나쁜 종교는 아편 종교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가난한 백성을 속이는 종교는 나쁜 종교요 아편 종교입니다. 가난한 백성을 편드는 종교는 좋은 종교요 해방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에 해방 종교적인 모습이 있고, 아편 종교적인 모습도 있겠지요. 가난한 백성을 속이는 종교인은 나쁜 종교인이고, 가난한 백성을 편드는 종교는 좋은 종교인입니다.
악의 세력과 연합하는 종교는 나쁜 종교입니다. 나쁜 종교의 대명사가 통일교와 신천지라면, 나쁜 종교인의 대명사는 극우 종교인들과 대형교회 목사들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예수를 팔아먹지만 예수를 따르진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그 일당을 지지하고 동조하는 목사나 교회나 종교는 멀리 해야 합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유네스코 등재할 국보
사제단 뒤에 가려진 나태한 신부도 많아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50년 동안 희생적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 나라 국보요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사제단이 임의 단체라면서요?
"사제단은 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정의,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한 사제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한국 천주교에 신부가 약 6000명 가까이 되고, 정의구현 활동을 열심히 하는 신부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신부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시민들이 잊어서는 안됩니다.
20만 명이 넘는 개신교 목사 중 10%인 2만 명이 사제단처럼 윤석열 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했다면,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는 벌써 제 자리를 잡았을 겁니다. 목사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어 너무나 아쉽습니다. 불교나 가톨릭에는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덜 하는 모습이 있다면, 개신교에는 해선 안 될 일을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나쁜 종교 쉽게 안 사라져…스스로 정의로워져야
민주주의 파괴하는 가장 큰 세력은 극우 개신교
-한국 종교가 곧 망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종교의 일탈 행위를 보고 분노하는 시민들은 종교는 어서 망하고 없어져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하겠지요. '나쁜 종교는 곧 망할 것이다'라는 말은 '악한 사람들은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정말로 곧 사라집니까? 나쁜 종교가 정말로 곧 망합니까? 악한 사람들이 곧 사라지지는 않을 것처럼, 나쁜 종교가 곧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슬픕니다.
나쁜 종교가 저절로 무너질 거라는 기대는 안일한 생각입니다. 나쁜 종교의 생존력은 질기고 무섭습니다. 나쁜 종교인도 많지만 나쁜 신도 또한 많습니다. 썩은 생선에 파리가 꼬이듯이, 나쁜 종교인에게 나쁜 신도들이 모입니다. 나쁜 종교인들과 나쁜 신도들은 한 패거리이고 똑같은 악의 세력입니다.
나쁜 종교를 빨리 없어지게 하려면 우리가 나쁜 종교에 빠지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나쁜 종교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먼저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나쁜 종교인들에게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내란 세력의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가 40%가 넘었다는 현실을 민주 시민들은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개신교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윤석열 내란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가장 큰 세력은 개신교 극우 세력입니다. 김장환, 전광훈, 손현보 목사나 대형교회 목사들처럼 알려진 극우 목사들의 행태만 사악한 것이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한국 개신교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커다란 방해 세력이 되었다는 현실이 슬픕니다. 그런 현실이 훌륭한 목사나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는 듯해서 또한 슬픕니다. 개신교가 크게 회개하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곧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내란 동조·가담한 목사들 법적 처벌해야
종교 단체 부동산·기업체 과세가 효과적
-나쁜 종교를 줄이거나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종교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사법부가 내란에 동조하는 설교를 한 목사들을 내란 동조범으로 감옥에 보내야 합니다. 그런 목사들은 종교인이 아니라 범법자들입니다. 내란을 동조하라는 말은 성경에도 없고, 종교 사전에도 없습니다.
나쁜 종교를 줄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종교 과세 얘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와 종교인이 소유한 부동산과 사업체에 철저히 과세해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종교 단체의 재산에 과세하는 정책을 만들고 잘 실행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스스로 십자가 져야 진정한 신학자
불평등 없는 사회 위해 해방신학 널리 알릴 터
-집필 활동만 하다가 촛불행동 집행위원, 시민언론 민들레 창간위원과 칼럼니스트, 뉴탐사 종교토론 등 시민 단체 활동을 활발하게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백성들이 고통받을 때 함께 피 흘리는 교회는 존경받습니다'라고 로메로 대주교는 말했어요. 해방신학자가 어두운 현실을 구경만 하면 안되겠지요. '생각은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발로 한다'라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멘토인 베투 신부가 말했어요. '지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보다 '지금 내가 누구 곁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앞에 나서서 활동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나요?
"신학자는 남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연구나 집필만 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 부끄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변변찮은 저 한 사람이 세상 변혁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만, 신학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활동 중 '민주 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이하 민사네)‘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하고 있는데 민사네는 어떤 단체인가요?
"2022년 가을에 감신대 박충구 교수, 인하대 김영 교수, 연세대 정종훈 교수 그리고 저 4명이 '윤석열 정권에 저항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네 게바라' 이름으로 촛불집회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모임의 시발점이 될 줄은 그땐 몰랐어요. '네 게바라'에 함께 활동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어나서 민사네 모임을 결성했고, 지금 약 40명 정도 회원이 시국 논평을 발표하고 포럼도 열고 공부하면서 촛불 집회에 참여해 왔습니다.
다음 달부터 <시민언론 뉴탐사>에서 백승종 교수님과 민사네 회원들이 참여하는 시민 교육 유튜브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게 시작합니다. 우희종 교수, 양희삼 목사, 제가 고정 출연하는 종교 토론 프로그램도 다시 시작됩니다. 평민 지식인들이 민주 시민 교육에 앞장서는 <시민언론 뉴탐사> 프로그램을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해방신학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빈부 격차와 불평등을 부추기고 악용하는 악의 세력은 나라 안팎에서 더욱 세련되고 교활하게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하려 날뛸 것입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해방신학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해방신학이라는 학문조차 필요없는 세상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에 가까울 것입니다. 해방신학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방신학자들은 열심히 해방신학을 알리고 실천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촛불 시민 보유국입니다. 예수는 촛불 시민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 곁에 언제나 있습니다. 예수의 매력을 학문적으로 실천적으로 알리는 저술과 강의를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어리석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김 소장은 "악의 세력은 스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우리가 악의 세력에게 끈질기게 저항하지 않으면, 악의 세력은 윤석열 일당보다 더 지독하고 잔인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라며 시민들이 더 많은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촛불집회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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