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파괴자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
주권적 역량을 갖추는 것은 모든 시민의 기본권
국민주권정부는 어떤 정부인가?
작년 12월 3일, 한 미치광이 대통령에 의해 하마터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릴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4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대패하고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 야당들이 그의 정책들을 봉쇄하며 그의 사퇴를 압박하자, 그는 계엄령을 통해 아예 국회를 해산하고 야당 지도자들을 감금하거나 (아마도) 살해함으로써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다행히 시민들이 국회에 출동한 군인들을 막고 군대의 일부 중견 간부와 젊은 군인들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은 덕분에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는 빠르게 종결되었다.
이후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은 국회의 윤석열 탄핵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를 끌어내었고, 덕분에 한국의 헌정질서는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그리고 탄핵 선고 직후 시행된 대선을 통해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는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이 민주주의 수호와 회복 과정을 ‘빛의 혁명’이라 부르는데, 이 과정은 한 마디로 헌법에 추상적으로만 주권자로 규정되어 있는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수호자가 되어 헌정질서를 지켜낸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새롭게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핵심적 정체성 또는 별칭을 ‘국민주권정부’라고 정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나 이 ‘국민주권’ 개념은 썩 그렇게 분명한 개념은 아니다. 국민주권 개념은 국민들이 나라의 방향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최종적인 지위와 권위를 지닌다는 정도의 뜻을 담고 있다. 이 개념은 흔히 한 정치공동체가 외부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그 운명을 결정한다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자주성을 이야기하면서 영어를 그대로 쓰는 자가당착을 보이지만) ‘소버린 AI’를 이야기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정에서 우리 주권이 침해되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그러나 이런 맥락의 국민주권을 강조하려고 국민주권정부라는 별칭을 붙인 것 같지는 않다.
한편, 국민주권 개념은 또한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정부라는 말은 그냥 민주주의 정부를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대의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 여기서 국민주권이라는 개념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빛의 혁명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가 이런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국민주권 개념을 채택했다고 볼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이런 맥락의 국민주권은 ‘인민주권(popular sovereignty)’으로 이해되었다. 루소에 기원을 두는 이런 이해는 소수의 엘리트나 권력자들이 아니라 주권자인 인민들이 스스로 나라의 법과 정책 등을 만들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둔다. 그래서 이런 주권 개념은 강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연결되었다. 아마도 빛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주권 개념은 이런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국민주권정부가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완전히 대체하는 정부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이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든 정치적 사안을 국민투표 같은 절차를 통해 결정할 수는 없다. 아마도 국민주권정부라는 말은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한다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성숙시켜 온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가 지닌 의미를 강조하는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하지 싶다. 우리는 이런 의미의 국민주권을 ‘시민주권(civic sovereignty)’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의미로 보면 우리 국민들은 국민주권정부에서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서 주권자로 호명되는 수준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공동체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더 많은 기회를 기대할 수 있다.
시민주권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국민주권정부는 시민주권정부다, 이런 정부는 적극적 시민참여를 통해 탄생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증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도 시민들의 참여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시민주권은 단순한 상징적 선언 이상의 것으로 실질화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섞은 일종의 혼합형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대의민주주의라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어떻게 이 시민주권을 실현할 것인가이다. 시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나 절차가 필요할까?
우선, 스위스나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을 들 수 있다. 스위스와 캘리포니아주 시민들은 정부의 주요 법안이나 정책에 대해 국(시)민투표를 통해 최종적인 수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며, 일정 수의 시민들의 의사만 모을 수 있으면 법률과 헌법개정안도 발의할 수 있다. 공직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시민이 직접 소환하고 해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대의제의 틀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으며, 이런 직접민주주의 제도들은 보완적으로만 활용된다. 그렇지만 이런 제도들은 대의제를 더 건강하고 더 책임감 있으며 더 유능하게 만든다고 평가된다.
시민주권은 또한 사법절차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도 실현될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배심원제도가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대배심(grand jury)’ 제도를 통해 검사의 기소 과정에도 시민참여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독일에서는 ‘참심제’라는 걸 운영하는데, 무작위로 선발된 평범한 시민이 직업 법관과 동등한 지위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심지어 일본과 대만에서도 최근 ‘재판원제도’를 도입했는데, 미국식 배심제와 독일식 참심제를 혼합하여 재판에서 주권자 시민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이런 재판에서 판사들의 자의적 판결은 체계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최근 들어 시민주권을 잘 실현할 수 있다고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도는 ‘시민의회’다. 이 시민의회는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된 일정 수의 시민 대표들이 특정 사안에 대해 전문가의 견해를 참조하면서 심층적 숙의를 진행하여 정책을 결정하거나 권고안을 마련하는 숙의 민주주의의 장치다. 캐나다, 아일랜드, 아이슬랜드 등에서 공식적인 대의제 의회의 지원으로 실험되면서 많은 성과를 내었고, 지금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문제를 두고 ‘공론화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실험한 적이 있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는 이재명 정부가 이런 모든 시민주권 제도들을 당장 도입하겠다고 나서는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발표된 국정과제를 보면, ‘시민참여와 숙의공론 활성화’(국정과제 9번) 정도가 시민주권 개념에 제대로 부합하는 과제로 설정된 것 같다. 이를 위해 시민참여와 숙의, 민주시민교육 및 시민사회 활성화를 담당하는 (가칭)‘국가시민참여위원회’를 설치하고 근거법령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또 국가 주요 의제별로 공론화 위원회를 구성하고 숙의공론을 진행하겠다고도 한다. 그밖에 정치·사회 개혁 정책에 관해 시민사회와 제 정당이 참여하여 논의하는 사회대개혁 소통 플랫폼도 설치하겠다는데, 느슨하게는 시민주권 개념에 부합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시민주권 제도들을 전부 한꺼번에 도입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버거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양극화한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이해할 만하다. 그래도 국민주권정부임을 내세운다면 국민발안제나 국민소환제는 물론 사법절차에 시민참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더 강하게 공약하고 기획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론화위원회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은 환영하지만, 이를 제대로 된 시민의회로 공식화하고 제도화하기로 했다면 더 좋았겠다.
‘민주시민교육원’을 설립하라
민주시민교육을 시민참여와 관련하여 국정과제에 담은 일 역시 일단 환영할 만하다. 아마도 국정기획위원회는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활성화하여 시민주권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시민들의 주권적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도 함께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옳은 접근법이다. 민주시민교육은 시민주권의 핵심적 필요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주권자인 시민들이 제대로 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는 주권 행사는 텅 빈 의례 이상이 될 수 없을 터이다.
주권적 역량을 갖춘 시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누구도 날 때부터 시민적 역량을 가질 수는 없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 전체에 걸쳐 시민들은 올바르게 주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가치와 태도를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시민들이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할 경우에도 다양한 의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숙의하는 훈련이 되어 있으면 훨씬 더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주권적 역량을 갖추는 것은 모든 시민의 기본권이기도 하기에, 민주 정부는 이를 위한 체계적 방편을 마련하고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국정과제에서 이렇게 중요한 민주시민교육을 (가칭)국가시민참여위원회 같은 조직에서 담당하게 하겠다고 한 계획은 조금 뜬금없어 보인다. 민주시민교육은 좀 더 독립적인 지위에서 좀 더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진행되게끔 제도화해야 한다. 국정과제에서만 보더라도 교육부 차원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이 강조되고 있고(100번), 심지어 통일부도 ‘평화·통일·민주시민교육’을 추진하겠다고 한다(117번). 민주시민교육은 이런 식으로 분절적으로 실행되어서는 안 된다.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처럼 국가 전체 수준에서 이 교육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가칭) ‘민주시민교육원’ 같은 기관의 설립이 절실하다.
각 부처가 따로 저마다의 맥락에서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는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이래서는 너무 파편적이고 비효율적이다. 하나의 전담 조직이 있어야 시민들이 생애주기 동안 다양하게 경험할 민주시민교육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는 기본적으로 직접 교육 활동을 수행하기보다는 다양한 수준의 자발적인 시민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을 위해서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공적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 이런 기관은 예컨대 여러 부처의 협력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전문적인 교재나 교수법 또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며 평가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민주주의 및 민주시민교육 관련 쟁점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토론하며 연구하는 과정을 이끌고, 교사나 교육활동가들을 위한 전문적인 연수 등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원이 민주시민교육의 연구와 실천의 허브로서 기능해야 한다.
지금 국회 행안위에는 이런 민주시민교육원의 설립에 초점을 둔 ‘민주시민교육활성화법안’(신정훈 의원 대표발의)이 계류 중이다. 사실 민주시민교육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도록 지원하자는 법안들은 지난 30년 동안 계속해서 발의됐다. 그러나 주요 정당들간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공적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적으로 편향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발의된 법안들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어 버렸다. 이번에도 이런 일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엄중한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다. 윤석열을 탄핵하고 이재명 정부를 출범시켰다고 우리 민주주의가 온전하게 회복되어 안정을 찾았다고 믿으면 안 된다. 미국을 보라. 의사당 습격이라는 내란을 획책하기까지 했던 트럼프가 더 강한 지지기반과 인적 자원을 가지고 대통령직에 복귀하여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전범으로 여겨졌던 미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면 안 된다. 극우가 준동하는 데는 다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들이 더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민주시민교육이 부족, 또는 실패했다는 결정적 징후이기도 하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주된 지지 기반이 옛 동독 지역이라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이 지역에는 과거 동독 시절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은 시민들이 아직 많다. 실제로는 이주민들을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주민 혐오 구호에 이끌리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고 체계화하는 국가적 노력을 위해 점점 더 노골적으로 극우화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민주시민교육활성화 법안에 대한 지지 여부야말로 정당의 극우성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민주시민교육 활성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이 당이 결국 극우 정당일 뿐이라는 데 대한 자기인증이다. 왜냐하면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지원 체계를 확립하는 일은 극우를 비롯한 민주주의 파괴 세력으로부터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초적인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국회의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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