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와 미국에서 배우는 교훈
민주공화정의 정신으로 국제연대 강화해야
오늘의 국제 질서는 과거와 같은 ‘가치 협력 체제’라는 레토릭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실은 더욱 냉정해지고 있습니다. 국가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 생존은 자존(自尊) 위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동맹과 협력이라는 외피가 씌어 있어도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힘의 불균형과 비용 전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내란의 충격과 국제적 긴장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면서 동시에 자존의 길을 지킬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서 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의 빛과 그림자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의 경제는 해상 무역과 공예 산업을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올리브유·도자기·금속 가공품이 수출을 이끌었고, 해상로 확보가 곧 국가의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9~449)은 페르시아 제국의 확장 시도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해상 생존권이 충돌한 전쟁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에게해는 물론 발칸반도 지역의 해상권 장악이 결정적 전장이 되었습니다. 2차 페르시아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이었습니다.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 승리를 계기로 점차 해상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에게해 해상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페르시아에 대한 승전 후 아테네는 150여 개 도시국가를 묶어 델로스 동맹을 결성했고, 곧 그 영향력을 300여 개 도시국가로 확대하게 됩니다. 명분은 페르시아의 재침공 대비와 해상무역권 보호를 위한 대응체제였지만, 실상은 에게해 전역에 대한 패권 장악이었습니다. 동맹국들은 은(銀)으로 환산된 공납금(phoros)을 바치도록 강제되었고, 초기 460탈란트에서 페리클레스 집권기에는 1000탈란트까지 폭등했습니다. 아테네의 자체 세수(약 200~400탈란트)를 크게 웃도는 규모였으며, 파르테논 신전(기원전 447~432) 같은 거대 사업도 이 공납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의 이러한 강압통치의 시절을 멜로스(Melos-도시국가, 폴리스)인에게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감내할 뿐이다”(5.89)라고 기록합니다. 아테네의 제국적 오만을 지적하는 표본입니다. 그러나 이 시기 아테네 내부 민주정의 구조적 결함은 심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테네의 인구 30만 가운데 여성과 외국인, 미성년자, 노예 등을 제외하고 실제 정치에 참여한 시민은 기껏해야 10%에 불과한 3만여 명, 그중 오늘날의 의회격인 민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인원은 약 6000명에 불과했습니다. 지도자의 선출 기준도 도덕성과 행정능력보다 웅변술과 선동이 정치인의 덕목으로 부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테네 민주정의 황금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페리클레스의 30여 년간의 개인적 지도력이 아테네 정치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그가 전염병으로 급서하면서 후계 구도는 공백이 되었고, 그때부터 아테네는 왜곡된 의사결정과 책임 회피, 파당정치에 휘둘렸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를 꾸짖는 모습이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 시기 아테네입니다. 제국의 외형은 유지됐지만, 내부 민주정은 이미 균열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맥락에서 <영웅전>으로 명망을 떨친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120)가 지적한 “선장 잃은 거대한 배”라는 비유는 페리클레스의 사후 정치 체제 및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 대중선동에만 몰두한 아테네 민주정의 모습을 질타하는 지적입니다.
알키비아데스: 야심가의 배신이 부른 아테네의 몰락
아테네의 황금기는 페리클레스의 급서와 함께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후계자로 부상한 알키비아데스(Alcibiades, c. 450–404 BCE)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총명하지만, 평소 오만한 태도와 사치, 여성 편력으로 구설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델로스 동맹에서 아테네의 지도력에 저항하는 시칠리아 정벌을 주도하고 스스로 장군직을 맡아 출정합니다(기원전 415). 그러나 출항 직전, 아테네 시민들이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며 숭배하던 헤르메스 신상 수십 개가 파괴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사람들은 이 사건에 알키비아데스의 연루를 의심했습니다. 그는 원정길에서 소환 명령을 받았으나 귀국을 거부, 당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맹주이자 적국인 스파르타로 도주합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국을 배신한 것입니다.
스파르타에 의탁한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의 취약성과 전략적 약점을 제공하며 스파르타의 환심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다시 귀족 여성과의 불륜 문제가 터지며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이번엔 페르시아로 도주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평화 중재자로 행세하며 외교적 명분을 쌓았고, 잠시 아테네에 복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땅에 떨어진 명예는 회복되지 않았고, 스파르타가 아테네와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최종 승리하자(기원전 404년) 그는 소아시아로 도주했으나, 결국 프리기아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의 매국행위가 몰락의 단독 원인은 아니었으나, 이미 제도적 역량을 상실하고 동맹국 수탈에 의존하던 아테네를 추락시킨 결정적 가속제였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신자유주의의 그늘 - 왜, 어떻게 확산되었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패권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맹 관리 방식은 협력보다는 지배에 가까웠습니다. 냉전기, 미국이 남미의 군부독재 정권을 비호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민주정부는 토지개혁·자원 국유화·복지 확대 등 미국의 시장·전략 이해와 충돌할 위험이 컸지만, 군사정권은 반공 노선과 대미 종속적 시장 개방에 더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후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라 불린 일군의 경제 자문단이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남미국가(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들을 경제 자문합니다. 이들은 시카고 대학에서 밀턴 프리드먼 등으로부터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경제학 세례를 받은 인물들입니다. 이들은 국영기업 민영화,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또는 해외 매각, 노동조합 탄압, 복지축소, 언론통제, 가혹한 반공정책 등을 주도합니다. 그 결과 남미 각국의 경제는 급속히 퇴행하고 국가의 주요 수익은 기득권 세력과 미국 다국적기업에 돌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 남미 각국에서 종속이론이 급격히 부각된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세계체제에 대한 안티테제였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화(금융·무역), 민영화, 긴축을 핵심으로 삼아 국가 개입의 축소·시장 규율의 확대’를 처방합니다. 남미는 실험실이었고, 그 댓가로 사회 안전망 붕괴·불평등 심화·민주주의의 후퇴가 뒤따랐습니다.
미국 국내에서도 흐름은 같았습니다. 레이건 시절 본격화한 신자유주의는 효율성과 감세를 내세웠으나, 결과는 금융자본의 비대화, 최상위층에 집중된 성장, 복지 축소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 구조의 취약성을 폭로했습니다. 그 뒤로도 불평등과 지역 격차, 중산층 붕괴는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지표는 명백합니다. 1980년 이후 지니 계수 20% 이상 악화, 상위 10% 대비 하위 90% 소득 격차 9.1배→12.6배, EPI 통계(1980~2022) 기준 하위 90% 임금이 36% 증가할 때, 상위 1%는 162% 상승했고, 상위 0.1%는 301% 증가를 기록했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는 미국인의 삶의 만족도가 장기 하락했으며, 2024년에는 주요국 20위 밖으로 밀려났음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신자유주의가 남긴 것은 금융자본이 부풀린 성장의 숫자가 아니라, 미국 중산층의 붕괴와 삶의 불평등 구조의 심화였습니다. 이 사회적 불안과 분노를 파고든 것이 기독교 근본주의로 무장한 극우 세력입니다. 저학력 백인 남성층을 조직해 반이민·반페미니즘을 기치로 혐오·차별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했고, 그 중심에 선 것이 트럼프와 MAGA인 것입니다.
트럼프 2기의 ‘동맹 착취’ 메커니즘 - 아테네의 그림자
트럼프 2기 정부는 동맹 여부와 무관하게 관세를 무기로 경제적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FTA)이나 WTO 규범은 무력화되었고, 합리적 절차보다 즉흥적·수시적 조치가 우선합니다. 미국의 이러한 무리수는 근본적으로 미국이 세계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추구했던 전략의 결과입니다. 미국경제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쌍둥이 적자(재정과 무역수지)는 이제 미국의 발목을 강하게 잡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재정적자 규모는 2024년 기준 1833조 달러로 매년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미국 GDP 대비 약 6.4 %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2024년 기준 경상수지 적자는 1.13조 달러로, 이 또한 매년 확대되고 었습니다. 이는 미국 GDP 대비 약 3.9 %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재정과 무역수지 적자는 고스란히 국가부채로 이어집니다.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 규모는 37조 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로 인한 1년치 이자만 해도 1조 13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자 지급으로만 2024년 미국의 연방정부 1년 예산 지출(6조 7520억 달러)의 약 16.7%가 지출되어야 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자만 해도 미국 1년 국방비로 지출하는 9천 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고, 미국 전체 사회보장액 수준에 달합니다. 미국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이미 빨간 불이 들어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달러라는 기축통화로 인해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미국 국채의 가치가 나날이 하락하고 있어,국채발행만으로는 원금은커녕, 이자 갚기에도 벅찬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선택한 것이 만만한 동맹국의 손목을 비트는 일방적 수탈 방법인 것입니다.
미국이 선택한 관세율 15%, 30%, 50% 같이 오로지 미국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임의적 부과가 여의치 않거나, 불리해지면 하루아침에 뒤집기가 다반사입니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기로 강력히 반발하자 미국은 어느새 꼬리를 내리고 유화적 태도로 바뀝니다. 반대로 브라질에 대해서는 보나소우르 전 대통령의 내란 기도 혐의 재판을 문제 삼아 일방적 50% 관세를 통보했고, 일본에는 가히 전쟁배상금이라 불러야 할 수준의 5500억 달러 규모의 직접투자를 압박해 관철했으며, 한국에도 3500억 달러 직접투자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는 거부했습니다. 미국이 만들어준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자민당 80년 독재를 이어온 일본과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하며 키워온 대한민국은 이 지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일본은 미국의 굴욕적 요구를 거부할 만한 국민적 기반을 갖추지 못했지만, 대한민국은 ‘빛의 혁명’을 통해 내란을 종식시킨 국민주권 정부이고, 자존감이 강한 대한민국 국민은 미국의 강탈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 투자에 나섰던 기업들도 이제는 대미 투자를 줄이거나 재검토에 들어갔고, 유럽 각국의 적극적인 유치 러브콜을 받고 있는 형국입니다. 미국은 고대 아테네처럼 협조적이지 않은 국가에 대해 아직까지 무력 제압은 시행하고 있지 않지만, 그 대신 가혹한 경제 제재와 동맹을 지렛대 삼는 투자·공장 입지 강요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미국의 처지가 그리 단단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미국 내의 트럼프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기류가 강하고, 미국 기업들조차 트럼프 정책에 난감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총 730억 달러가 넘는 투자가 무산된다면, 미국으로서도 큰 경제적 타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유럽 각국은 독일이 20억 유로(한화 약 3조원)에 달하는 지원을 약속하고, 프랑스, 영국, 스페인도 차제에 한국 기업들을 유치하여 기술 도약을 노릴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당장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즉시 투자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 내부의 사정은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결코 녹록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메커니즘은 고대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국을 상대로 공납금을 증액하고 군사·정치적 자율성을 박탈했던 방식과 기묘할 만큼 닮아 있습니다. 패권의 외피를 두른 수탈 구조, 협상 대신 압박, 연대 대신 복속. 아테네의 오만이 현대의 관세·투자 강요라는 방식으로 되살아난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장기적으로 미국 자신에게도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관세 폭등은 미국의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실업률을 증가시킬 것입니다. 또한 미국 주요 기업들의 원가상승 압박과 함께 경쟁력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반도체 수요 75%를 한국기업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만약 한국기업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유럽의 러브콜에 따라 이전하거나, 유럽 기업들과 적극적인 기술동맹을 맺고 맞선다면, 미국은 AI(인공지능)를 비롯해 산업 전반이 큰 타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동맹국들은 ‘수탈 피로감’에 내몰려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고, 새로운 무역·외교 파트너를 찾아 떠날 수 있습니다. 공급망 다변화, 역내 협정 강화, 중국·유럽 등 대안적 축과의 연대가 가속되면, 오히려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은 약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아테네가 동맹국들의 반발과 이탈 끝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몰락했듯, 미국 역시 단기적 이익을 위해 동맹을 수탈한다면 장기적으로 고립과 쇠퇴를 자초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경고 - 규범의 침식에서 제도의 왜곡으로
스티븐 레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랫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2018)에서 규범(norms)의 침식, 포퓰리즘 지도자와 정당의 일탈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재집권 현실을 목도한 뒤 펴낸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2023)는 미국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 더욱 강한 비판과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상원·선거인단·게리맨더링·대법원제도 설계(institutional architecture) 자체가 소수의 의사를 다수 위에 구조적으로 가중시키는 왜곡을 낳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규범 회복만으로는 부족하며, 헌법·선거제도·대의제의 근본 개혁만이 왜곡된 소수의 다수 지배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제안이자 경고입니다.
협력 : 인류가 남긴 생존의 지혜
역사는 말합니다. 힘으로는 잠시 지배할 수 있으나, 협력을 거부하면 고립과 몰락을 피할 수 없다고. 이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한 연구가 있습니다. 2019년 옥스퍼드대학교 인류학자들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60개 사회에서 600여 개 출처, 60만에 달하는 규모의 단어가 제시하는 윤리·규범 기록을 비교 분석해 ‘보편 도덕 7규칙’을 도출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평범한 윤리 규범들입니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 윤리규범이 인간이 다른 종(種)과 달리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룬 사회적 기본 약속이라고 진단합니다. 추려진 지극히 평범한 윤리규정들은 ① 가족 보호(부모 공경, 자녀 돌봄) ② 집단을 돕기(충성, 단결) ③ 은혜 보답(호혜) ④ 용기(공공 위험 감수) ⑤ 상급자 존중(질서 유지) ⑥ 공정 분배(분배 정의) ⑦ 소유 존중(도둑질 금지). 이 규범들의 핵심은 한 가지로 수렴합니다. 도덕은 협력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장치이며, 협력은 인류가 다른 종과 구별되는 생존의 비밀이라는 점입니다. 협력하지 못한 집단은 진화하지 못하고 사멸했습니다. 오늘의 국제정치가 이 유산을 다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300’이 일깨우는 상징성 : 저항과 용기, 협력
영화 〈300〉의 배경은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라이 전투입니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1세(Leonidas I, ?–BC 480)가 300명의 정예병과 소수의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압도적 병력을 앞세운 페르시아군에 맞선 사건입니다. 이 전투는 제2차 페르시아 전쟁(BC 480–479) 초기에, 크세르크세스 1세(Xerxes I)가 침공한 직후 벌어졌으며, 살라미스 해전(BC 480)과 플라타이아이 전투(BC 479)에 앞선 방어전의 서막이었습니다.
군사적 결과만 보면 그리스군의 패배였습니다.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300명을 포함한 다수가 전사했고, 페르시아군은 남그리스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협곡이라는 지형을 활용해 며칠간 진격을 지연시킨 효과는 결정적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아테네는 해군을 재정비하고, 펠로폰네소스 지역도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300명의 전사(戰士)가 남긴 상징성-“희생을 통한 자유 수호”-은 그리스 전역의 결속과 사기를 다졌고, 그 기반 위에서 살라미스의 대승과 플라타이아이의 최종 승리로 이어지는 전세 반전의 고리가 형성되었습니다.
2025년 9월 4일(목), 미국 연방국토안보부 산하 ICE/HSI는 조지아주 엘라벨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Battery) 건설 현장과 현대차 메가플랜트 일대에서 대규모 이민 단속을 전개했습니다. 미국 당국은 영장에 따른 합법적 집행이라 주장했지만, 이후 절차·처우·신분 확인을 둘러싼 다수의 문제 제기가 뒤따랐습니다. 총 475명이 구금되었고, 이 중 약 300명이 한국 국적이었습니다. 단일 사업장에서 이뤄진 역대 최대 규모의 이민 집행이라는 평가가 나왔고, 범법 행위가 없었음에도 수갑과 족쇄가 적용된 장면이 공개되면서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흘 뒤부터 한·미 당국 협의가 급물살을 타 9월 7~12일 다수의 한국인이 석방·귀국조치에 들어갔고, 9월 11일 전세기 탑승, 9월 12일 한국 도착으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투자·공장 건설을 위해 입국한 기술자들을 불법적이고 야만적으로 감금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파장은 지속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간단한 유감 표명만 했고, 공식 사과는 없었습니다. 이에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재발 방지와 비자 제도 개선 없는 추가 파견·공사 재개 불가라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동시에 조지아·텍사스 등 주정부와 지역사회는 경제 피해 우려를 내세워 조속한 정상화를 요구했습니다. 여론 면에서도 워싱턴포스트/입소스(9/11–15, 성인 2513명) 조사 기준, “트럼프의 이민 처리”에 대한 평가는 찬성 44% 대 반대 55%로 부정 여론 우세가 확인됩니다.
이 사건은 공급망·투자 환경 전반의 재점검을 촉발했습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단기 비자 관행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준법·컴플라이언스 체계 강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일부 한국 기업은 유럽 주요국과의 협력 확대를 모색하며, 투자 다변화와 새로운 기술동맹 구상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메모리 칩 등 핵심 품목의 가격 급등 속에서도 세계 각국 기업들은 한국 기술과의 연계를 서두르는 분위기입니다. 작은 균열처럼 보였던 조지아 사태가, 결과적으로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 재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300’의 상징성이 현재를 비춥니다. 스파르타의 300명은 전장을 지킨 뒤 전세 역전의 심리적·정치적 토대를 남겼습니다. 조지아의 300명 한국 기술자 역시 자존과 공정이라는 원칙을 환기시키며, 일방적 수탈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와 제도 개선 요구를 분명히 했습니다. 70여 년 동맹의 균열을 막는 길은 감정의 격화가 아니라 상호 존중·제도 개선·책임 있는 파트너십을 통해 신뢰를 재건하는 것입니다. 기업이 먼저 목소리를 낸 이번 사례는, “한·미 관계의 질적 업그레이드”를 향한 실용적 압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길: 민주공화정의 재정립과 국제 협력의 확대
국제 질서가 혼탁해질수록, 우리는 정체성을 단단히 세우고 협력 기반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 핵심은 민주공화정의 정신입니다. 우리 헌법 제1조의 주권재민, 권력분립과 상호 견제, 시민 참여는 교과서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최적으로 작동시키는 핵심 자산입니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하 민주주의의 붕괴가 정체성과 경쟁력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민주공화정의 가치는 장식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존의 최소 장치로 재인식되어야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확대가 국가 전략이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9월 23일 제80차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국제적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기후 위기·팬데믹·개발 격차·기술 불평등 등 공동 과제를 다자주의로 해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역량 공유·기술 이전·지속 가능한 재원 배분·국제 거버넌스 참여 확대라는 방향은 옳습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닌 실행입니다. 제도 설계·예산 배분·외교 협력의 로드맵을 통해 비전을 정책으로 전환할 때, 한국은 신뢰와 실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아테네는 내부 민주정 붕괴와 동맹국 수탈로 몰락했고, 미국은 신자유주의·극우화속에서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시민의 힘과 국제 협력의 가치를 바탕으로 다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민주공화정의 정신과 국제 협력의 실천-이 두 축이 생존과 자존의 길입니다. 조지아에서 곤욕을 치른 한국인 300명의 경험이, 그리스의 ‘300’처럼 새로운 세계 질서로 향하는 출발점이 되도록, 우리는 원칙·제도·연대를 갖춘 현실적 변화로 응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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