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흉기' 노릇 했던 이진숙 체제 해체

'윤석열-이동관-김홍일-이진숙 3년 폭주'도 끝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방통위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설치해 자신이 면직되는 ‘방미통위법’에 반발하고 나섰다. “헌법소원, 가처분,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절차를 통해 이 법이 졸속으로 통과됐고 너무나 위헌적 요소가 많다는 걸 국민에 알리겠다”라고 했다.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범여권 정당 주도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안이 통과돼 자동면직되는 이 위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쏟아낸 말들은 그러나 그가 왜 방통위장으로서 부적격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기자회견에서의 그의 발언들은 '방송이 언론 자유에 대한 흉기'라고 하면서 그 자신이 자청해서 언론 자유에 대한 치명적 흉기 노릇을 맡았던 이의 말답다. 숱한 반(反) 적격 시비에도 불구하고 전 대통령 윤석열 씨에 의해 임명 강행돼 방송 장악 작전을 밀어 부쳤던 그 자신이야말로 언론자유를 해치는 폭주를 벌인 것에 대한 일말의 반성도 성찰도 없다. 그가 지난해 8월 방통위장에 임명된 이래 보여왔던 모습들, 새 정부 출범 뒤 국무회의에까지 참석해 자신의 임기 보장을 주장함으로써 방송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된 방통위원장의 임기 보장 제도를 오히려 파행적인 방통위 운영과 독단적인 행보를 옹호하는 방패막이로 썼던 모습 그대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9.28 연합뉴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28일 국회에서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설치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9.28 연합뉴스

그는 “내가 내 사형장에 들어가서 내가 사형·숙청되는 모습을 지켜보려고 한다. 이게 역사의 기록이니까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라고 했지만 그가 ‘사형’을 당한다면 국회나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먼저 시민사회와 언론계, 공영언론의 상식으로부터의 사형을 당한 것이었다.

 “방송·통신에 대한 심의는 객관적이고 국민의 입장에서 법에 따라 심의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말 자체는 타당하지만, 이 위원장 그 자신만큼은 할 수 없는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방송 심의를 하고, 민주노총을 위한 심의를 하지 않을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지만 역시 윤석열의 ‘하명’을 받아 언론 장악 폭주를 벌인 이로서 결코 할 수는 없는 말이다.

이 위원장은 “내가 나가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가치에 맞는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이 들어와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맞는 방송을 할 것이다"고 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철학이 아닌 공영방송 본연의 철학과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 새롭게 설치될 방미통위의 과제다. 새로운 위원장이 철학과 가치를 보여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만 이 위원장에게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철학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걸 철학이라고 한다면 이진숙의 철학이라가보다 윤석열의 철학을 따른 것이었고, 그건 권력 호위와 연장의 철학이었을 뿐이다.

이 위원장은 특히 “정무직인 저를 사실상 면직 해임시키는 건데 왜 정무직은 해임시키고 임용직은 안 되나”라며 “구멍 많은 ‘치즈 입법’이고 ‘치즈 법령’이고 저에 대한 표적 입법”이라고 주장했다. '표적 입법'이라는 말에 일말의 진실은 있다. 다만 이때 '표적'은 이진숙이라기보다는 공영방송 황폐화의 원인에 대한 표적이다.

이 위원장에게는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원화된 방송 미디어 거버넌스는 융합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비정상적 구조였다"는 법률 개정의 취지에 대한 동의 여부나 그 자신의 거취를 떠나 방송3법 개정이 국회 이전에 시민사회와 언론계,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논의했던 개혁법안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 따위는 전혀 없다. 

이 위원장의 퇴진은 지난해 8월 임명된 직후 국회에 의해 탄핵소추 됐다가 5개월 만에 헌재 기각으로 방통위장에 복귀한 것에 이은 제 2의 파면이다.  '2인 방통위'는 ‘2인 체제 의결’의 적법성을 다투는 본안 판결이 날 때까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기를 시작할 수 없다는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왔지만 이를 무시한 채 탄핵 소추를 당한 대통령이 임명한 2명의 위원만으로 중요한 의결을 쏟아냈었던 이진숙 방통위는 이로써 종료된다. 탄핵 기각 복귀 뒤에도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사장 선임을 강행했다가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던 이진숙 방통위 파행의 종식이다. 내란 진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작은 내란, 언론계의 내란을 점화시켰던 이진숙-김태규 2인 방통위의 부활 시도의 종지부다. 나아가 전임 이동관 김홍일 위원장에 이어 이진숙 체제까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노골적으로 위반한 3년간의 방통위 폭주를 끝내는 것이다. 또한 정권의 호위병, 내란세력의 수족으로 추락한 모습을 보인 국가기간 공영방송 KBS의 정상화의 길을 여는 문도 열게 됐다. 

이 위원장으로선 이번의 면직이 오히려 기회가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내년 지방선거 출마설이 있는 그는 정권에 의해 희생되는 순교자이며 그에 맞서 싸우는 투사로 의 이미지를 자신에게 씌우려 한다. 그러나 그에겐 당장의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대전 MBC 사장으로 재직하던 2018년에 대전지역 유명 빵집에서 53만원 어치의 빵을 법인카드로 구매한 것 등 ‘법인카드 유용' 혐의로 고발된 건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지난해 7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고발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사용처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함께 고발 1년 만인 지난 7월 첫 소환 조사를 시작으로 4차례 조사를 벌여 이 위원장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iMBC 주식 보유와 관련된 직무 관련성 논란 속에서, MBC 관련 직무를 수행한 것이 공직자윤리법 위반으로 판단되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언론과 SNS를 통해 무죄를 주장해 왔다. 그 혐의가 어떻게 판명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점은 그의 형사법적 무죄 여부와는 별개로 공영방송 장악 죄과에 대한 평가 및 응당한 댓가를 치르는 것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 방통위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방송 장악 시도와 관련된 작업들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도 이진숙 방통위 체제의 온전한 종식을 위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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