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마다 남문서점서 여는 '영화인문학'

지난주 4.3 기념행사 겸해 우리춤 공연도

양윤모 평론가 "평화의 가치 전하려 기획"

  '목요 영화 인문학'이 열리는 남문서점,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목요 영화 인문학'이 열리는 남문서점,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제주 남문서점에서 매주 목요일 7시 '목요 영화 인문학'이 열린다.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를 통해 인문학 이야기를 풀어가는 무료 영화 상영회다. 주최자는 양윤모 영화평론가다.

지난 목요일(8월 28일) 행사는 제주 4.3 77주년 기념으로 한 '2025 제주 평화영화 상영회'로 진행됐다. '제주 평화영화 상영회' 매년 1년에 한번씩 열리는데 올해가 아홉번째다. 이날 행사는 영화 상영 이외에도 우리춤 공연이 함께 진행됐다. 

요즘 같은 세상에 영화를 공짜로 보여준다니. 그것도 수년간 매주 목요일 빠지지 않고 행사를 했다니 좀처럼 쉽지 않았을 일이다.

호기심과 기대로 본 공연은 조금 놀라웠다. 서점 2층에 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있다.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이수자 이종호와 그의 딸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전수자인 이현선, 두 예술가가 조명도 무대도 갖추어지지 않은 작은 교실 크기의 공간에서 우리 춤 공연을 했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전수자 이현선의 공연, 사진 한요나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전수자 이현선의 공연,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복식을 갖춘 선녀옷 같은 당의를 입고 나와 도도하게 춤을 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무거운 옷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엷은 미소를 띄고 태평무를 추는 그의 표정은 내내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게 이현선의 태평무 공연이 끝났다. 

이어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이수자 이종호의 선비학춤 공연이 시작됐다. 정중동이 흐르던 선비학춤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자 거대한 선풍기와 같은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좁은 공간 여러 숨결들로 후끈해진 관객석에 다른 세계에서 불어오는 듯한 시원하고 신선한 바람을 맞았다. 그는 공연이 끝나자 한 마리의 학처럼 격한 사냥의 춤을 마치고 날아가듯이 춤을 추며 공연장에서 퇴장했다.

 

선비학춤을 추는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이수자 이종호,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선비학춤을 추는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이수자 이종호,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두 공연자가 부녀지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은 남문서점의 '목요 영화 인문학' 주최자인 양윤모 영화평론가와의 인연으로 공연을 하게 됐단다. 명망있는 예술가들의 이런 무료 공연은 무척 드문 일이다. 

돈이라는 동그라미에 연연하지 않는 연대의 힘으로 이루어진 공연이었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마치 동화같고 아름다운 사연이 아닌가. 관객과의 대화 시간도 유머러스하고 편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국가무형유산 강령탈춤 이수자 이종호는 동래학춤에서 선비학춤이 된 사연을 풀어놓았다. 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전수자인 이현선은 춤을 시작한 사연과 태평무가 본인에게 가지는 의의 등을 이야기했다.

휴식 시간에는 와인과 과일, 빵으로 가벼운 디너가 제공됐다. 참가자들이 행사를 위해 준비해 왔단다.

 

사회를 맡은 문학박사이자 시인 강은미.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사회를 맡은 문학박사이자 시인 강은미.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이어 '목요 남문 인문학'이 이번 주에 추천한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중국의 젊은 감독이 본인의 친지로 실제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비전문 배우 남자 주인공과 전문 배우 여자 주인공을 조합시켜 저예산으로 제작했다. 이 영화는 중국에서 검열에 걸려 상영이 돌연 중단되는 등 적잖은 파란을 일으켰다.

 

'먼지로 돌아가다' 영화 상영 장면, 사진 한요나
'먼지로 돌아가다' 영화 상영 장면, 사진 한요나

행사에 참석한 모두가 옹기종기 앉아서 영화를 보았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의 토토와 알프레도의 작은 극장 같기도 하고, 수십년 전 한국에서 동네 사람들이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 주말의 명화를 보는 것과 같은 따스한 어수선함이 있었다.

영화는 돈에 팔려 노총각의 집에 팔려온 장애가 있는 여자와 노총각의 짠내나는 러브스토리였다. 사람들은 돈이 없고 가난한 두 부부를 무시했고, 돈이 최우선인 사회는 그들의 집을 빼앗고 부수고 내몰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난은 당당했고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

영화의 결말은 비극이었으나, 자막으로는 그가 잘 살았다는 해피엔딩을 언급해 더욱 슬펐다. 영화 속에서만이 아닌 영화 바깥에서도 억압이 있었던 것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자막이었기 때문이다. 이적의 노래 중 해피엔딩이라는 곡이 있다. 그 이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상투적 이야기 뒤편에 진짜 사연은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가사를 담은 곡이다. 

우리의 현실은 동화와 너무 멀다. 현실 속에서 모두는 지리하고 긴 일상의 무게 속에서 누구나 각자의 비극이나 사고를 떠안고 살아간다. 구원은 없고 탈출구도 없다. 해피엔딩이라는 결말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의 행복을 기원하면서 매일을 견딘다. 

희망을 찾자면 그런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평화와 연대를 외치는 사람들이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희망이 있다. 인생에서 이해타산이 아닌 관계들이 있고 그 관계는 기적이고 사랑이라는 것을. 

언어로 다 전달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문화와 예술이 전달한다. 문화와 예술의 역할이 세상에 더 커져야 한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은 시각과 청각으로 구현된 표현의 이면에 담긴 메세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양윤모 영화평론가,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양윤모 영화평론가, 사진 한요나 시민기자

"우리의 평화가 결국 모두를 구할 것이다"

행사가 끝나고 이런 기획을 한 양윤모 영화평론가가 궁금해졌다. 왜 '목요 남문 인문학'이라는 행사를 시작했을까? 연락을 해서 질문을 보냈더니 이런 답변이 왔다.

"일상 속에서 주변에 내면의 평화라는 가치를 전하고자 합니다. 투쟁하는 평화도 소중하지만 일상의 개인들에게도 평화가 추구할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생 후반의 목표'를 정했습니다.

문화 예술의 소비자인 대중은 수동적으로 계몽당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인식합니다. 대중의 수용성은 고정관념이라는 강박을 이미 초월해 있습니다. 

예술과 평화는 대중의 가슴을 울리고 관객도 공연의 일부가 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창의와 변혁의 '목요 영화 인문학'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 영화평론가 양윤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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