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의 가뭄 재난은 인재(人災)다
강원도 동해안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인 강릉과 속초. 겨우 60킬로미터 떨어진 이 두 도시가 보여주는 풍경은 마치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문명의 극단적 대비를 연출한다. 한편에서는 물대포와 워터캐논이 토해내는 수백 톤의 물줄기 속에서 즐거움에 겨운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바로 그 옆에서는 물 한 방울마저 금처럼 아껴가며 절망적인 일상과 사투를 벌이는 시민들의 참담한 현실이 펼쳐진다.
일찌감치 지하댐 만들어 물 풍족 도시로 거듭난 속초시
강릉 시민들이 극심한 물 부족으로 물티슈로 세차를 해야 하는 처참한 상황에 내몰린 바로 그 순간, 속초에서는 싸이의 '흠뻑쇼'가 물의 향연을 마음껏 펼쳤다. 또 8월 23일에는 1만 5천여 명이 몰린 '워터밤' 페스티벌이 성대한 물 낭비의 축제로 화려하게 진행됐다.
이는 결코 기상이변이 빚어낸 불가항력적 결과만은 아니다. 속초시의 선견지명 있는 행정력과 강릉시의 무기력하고 안일한 행정 무능이 만들어낸 냉혹한 필연이자, 지방자치단체장들의 행정 역량이 시민의 삶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참담한 현실 교육의 장이다.
속초시는 오랫동안 '만성적 물부족'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2018년 취임한 김철수 전 시장(민주당)이 '물 문제 완전 해결'을 1호 공약으로 천명하고, 이를 공허한 선거 레토릭이 아닌 실질적 정책으로 구현해냈다. 지하 암반관정 개발, 지하댐 건설,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을 통한 종합적 수원 확보 전략——이것이야말로 민생을 챙기는 행정가의 면모다.
반면 강릉의 현실은 어떠한가. 시민들이 목마름에 신음하는 동안, 행정당국은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 60킬로미터라는 지척의 거리에서 벌어지는 이 참혹한 대조는 결국 리더십의 차이, 비전의 유무, 그리고 시민을 향한 책임감의 격차가 만들어낸 잔인한 현실이다.
특히 속초시가 약 260억 원을 투입하여 2021년 12월 완공한 쌍천 지하댐은 우리나라 최초의 식수전용 지하댐으로, 도시의 미래를 바꾼 혁신적 인프라였다. 지하 26미터 깊이에 총연장 1.1킬로미터, 높이 7.7미터 규모로 건설된 이 '지하 저수지'는 증발 손실이 적고 수질과 수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하천 생태계 영향도 최소화하는 친환경적 해법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만성적 물 부족 도시였던 속초가 여름철 대형 물 축제를 개최할 수 있는 '물 풍요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이다. 속초시는 물자립을 선포할 정도로 물 부족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이다.
시장과 국회의원의 무책임·무능이 물 재난 부른 강릉시
반면 강릉시의 행정은 어떠했는가? 30여 년간 오봉댐 하나에만 의존한 채 손을 놓고 있었다. 원래 농업용이었던 오봉댐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면서 농민들은 용수 부족을 겪게 됐다. 오봉댐의 관리를 담당하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농민들의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전국에 20여 개의 지하댐 시공 경험을 보유한 한국농어촌공사는 강릉시 당국에 속초와 동일한 지하댐 건설을 제안했음에도 환경 문제를 핑계로 번번이 거절 당했다. 무능행정의 전형적 사례였다.
올해 여름 강릉시가 겪은 참상은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재난사태를 선포할 정도였다. 평균적으로 69%였던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0%대까지 급락하면서 8월부터 제한급수가 시행되었다. 시민들은 세수, 머리 감기, 설거지, 빨래 등 기본적 일상생활조차 힘들어졌다. 샤워를 포기하고, 물티슈로 세차를 해야 하는 절망적 현실이 강릉 전역을 덮쳤다. 식당, 카페, 펜션은 단축 영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농업용수 공급 중단으로 농민들은 작물이 말라 죽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김홍규 강릉시장(국민의힘)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였다. 8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의 가뭄대책회의에서 정수장 확장 비용 질문에 질문의 내용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심각한 물 부족 상황에서 “9월에는 비가 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는 망언이었다. 과연 이것이 20만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책임져야 할 시장의 자세인가?
강릉에서만 5선을 기록한 권성동 의원의 방관적 태도 또한 개탄스럽다. '강릉의 소황제'로 불릴 만큼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그는 정치적 행보에는 분주했지만, 시민들의 절박한 민생 현안에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지역구 의원이라면 중앙정부 차원의 예산 확보와 정책 지원을 위해 나섰어야 할 것 아닌가.
역대 강릉시장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잘못된 도시 행정이다. 호텔, 아파트 건설 같은 전시성 개발 사업에만 매달리고 시민의 기본적 생활 인프라 구축은 외면했다. 물은 인간 생존의 최우선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본적 상식조차 망각한 채 외형적 성과에만 골몰해왔다.
이처럼 강릉의 극심한 물 부족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는 무능한 행정이 빚어낸 명백한 인재(人災)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은 예측 가능한 현상이었고,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도 있었다.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속적인 지하댐 건설 제안을 환경 문제를 핑계로 거절한 결과가 바로 현재의 참상이다.
강릉시는 뒤늦게 속초를 벤치마킹하여 2024년 하반기에 연곡 지하댐 건설에 착수했지만, 완공 시기는 2027년으로 요원하다. 매년 되풀이되는 가뭄 패턴이 명백함에도 근본적 대책 마련을 미뤄온 대가다.
지방자치단체는 세금 내고 투표하는 시민들 신뢰에 응답해야
21세기는 기후변화의 시대다. 극한 기후 현상이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 관리는 시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핵심 과제다. 속초시가 보여준 선제적이고 혁신적인 물 관리 정책은 기후변화 시대 지방자치단체의 모범을 제시했다. 반면 강릉시의 안일하고 무사안일한 태도는 기후위기 시대에 절대 용납될 수 없는 무능 행정의 전형이다.
앞으로 기후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극한 가뭄은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 될 것이다. 강릉시가 여전히 안일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다음 가뭄에서는 더욱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강릉시민들은 세금을 내고 선거에 참여하며 행정에 대한 신뢰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신뢰는 철저히 배신당했다. 시민들이 기본적인 위생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에 내몰린 것은 행정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결과다. 김홍규 시장과 강릉시 공무원들은 이번 사태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즉각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속초와 강릉의 극명한 대조는 행정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웅변한다. 진정한 행정은 시민의 기본적 생활권을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강릉시민들의 목마름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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