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달리 상시 가능, 짜증 안내고 조언
최적화한 결과만 내줄 뿐 개성·다양성 도외시
추천 따라 갔더니 안 맞으면 AI탓 하려나?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이거다.
"너는 꿈이 뭐니?"
어릴 땐 간단하다. 소방관, 과학자, 대통령, 아이돌, 공룡. 중학교쯤 가면 점점 대답이 어려워지고, 고등학생이 되면 갑자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말과 함께 '진로'라는 두 글자가 내리꽂힌다.
대학은 어디로 갈까? 무슨 전공이 나에게 맞을까? 졸업 후 뭘 먹고 살아야 할까? 그렇게 진로는 우리의 평생 숙제가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들고 우리는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선배에게, 심지어 처음 본 인턴 선배에게도 물었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는 사람 대신 '기계'에게 묻는 시대가 왔다.
인공지능, 이제는 진로상담사까지 접수
미국 오클라호마 남동대학교(Southeastern 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미국 사람 셋 중 한 명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직업, 진학 등)을 할 때 인공지능의 조언을 참고한다고 한다. 좀 더 들여다보면,
43%는 인공지능에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작성을 맡긴다.
28%는 직업 정보탐색을 한다.
19%는 미래 유망직업을 파악한다.
약 20%는 이전에 생각지도 못한 직업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취업 준비하면서 학과 게시판에 붙은 '취업 특강' 포스터 앞에서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라면 끓여먹고 자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밤늦게 노트북 앞에 앉아 묻는다.
"챗GPT야, 나 뭐 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기계는 아주 진지하고 빠르게 답한다.
"앞으로는 데이터 관련 직종이 유망하며, 이러이러한 기술이 필요하고, 당신의 전공과 성향을 고려하면 이러이러한 경로를 추천합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이젠 진로 고민도 '무인 시스템' 시대가 열렸다.
인간 멘토와 기계 멘토 사이
물론 사람들은 아직 인간의 조언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부모님의 권고, 선생님의 조언, 친구와의 맥주 한잔 곁들인 진심 어린 대화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과 접근성이다.
인공지능은 24시간 대기 중이다. 짜증도 안 내고, 실수해도 화를 안 낸다. 무한한 직업정보를 알려주고, 최신 통계도 뚝딱 내준다. 심지어 이력서를 예쁘게 포장해주기도 한다.
그러니 특히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자연스럽게 기계에 기대게 된다. 이들은 기계와 대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기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인생의 방향을 물으며, 심지어 기계가 더 객관적이라고 느끼기까지 한다.
그러나 여기엔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 당신이 지금 불안한지, 지쳤는지, 억지로 얘기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 단지 '최적화된 결과'를 내줄 뿐이다. 그 결과가 '정답'일 수는 있어도, '내 길'은 아닐 수 있다.
인공지능 진로 상담의 그림자
인공지능이 진로를 도와주는 건 분명 편리하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 가지 위험한 착시가 있다.
첫째, 기계의 추천이 진실처럼 느껴지는 오류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AI가 그러는데 회계사가 유망하대!"라고 말한다. 그 친구는 수학을 싫어하고, 숫자만 보면 머리가 아픈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그건 잘못된 추천이다. 하지만 기계가 말했으니, 왠지 믿게 된다.
둘째, 다양성을 잃는 위험이다. 기계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인다. 그 말은 곧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게 만든다는 뜻이다. 기계는 평균을 추구하고, 안정된 경로를 권유한다.그 속에서 특이한 꿈, 엉뚱한 길, 창의적인 모험은 배제될 수 있다.
셋째, 책임전가다. "AI가 추천해서 그 길로 갔는데 안 맞더라." 그럼 누구 탓인가? 기계 탓? 아니면 나 탓?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기에, 후회도 남 탓으로 돌릴 위험이 생긴다.
5년 후 진로상담은 어떻게 바뀔까?
지금 같은 속도라면 5년 뒤엔 'AI 담임선생님'이 학생 하나하나를 관리하고, 진로상담도 '화상 AI 프로그램'으로 진행될지 모른다. 자기소개서를 쓰면 자동으로 채점되고, "이 문장은 감동이 부족합니다. 문장을 좀 더 진정성 있게 바꾸세요."라고 조언하는 기계가 등장할 수도 있다.
학교에는 진로상담 교사 대신 'AI 관리실'이 생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사람보다 기계를 더 자주 만나고, 진로 고민은 '입력 - 분석 -추천'의 알고리즘으로 처리된다. 그 시대에 우리는 묻게 될 것이다. 과연 이것이 '진로의 진보'일까, 아니면 '선택의 포기'일까?
기계의 조언은 참고하자. 그건 마치 내비게이션과 같다. 길을 안내해주긴 하지만, 그 길이 막혔을 땐 직감으로 우회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기계는 분석하지만, 삶은 분석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삶은 흔들리고, 실패하고,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기계보다 더 불완전한 인간의 조언이 어쩌면 더 따뜻할 수 있다.
오늘도 진로 고민에 지친 당신. AI의 말도 들어보되, 마지막 결정은 당신의 마음과 경험, 그리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찾기를 바란다. 당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길이나 삶의 방향이 반드시 '정답'일 필요는 없다. 당신이 선택한 길에 당신만의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값지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성공한 선택이다.
그래도 고민이 계속된다면, 가까운 친구에게 한 번 물어보자.
"야, 너는 지금 뭐 하고 싶어?"
그 물음은 자연스럽게, 당신의 진짜 진로에 가까워질 것이다.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