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도 영남 편중 인사 지속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 예산 지원도 차별
광주시 인구 140만 붕괴…호남 전역 소멸 위기
"여러분이 지금까지 참고 참으며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 소외, 영·호남 분할 차별 전략에 따른 소외 등 이중 소외를 겪으며 '민주당 잘 돼봐야 우리에게 무슨 득이 있나' 섭섭하고, '저놈의 자식을 내가 밭 팔고 논 팔아 키우면 뭐 하나'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잘 견디셨습니다. 6월 3일이 지나면 새롭게 시작되는 민주당 정부가 '자식 잘 키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지난 5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기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유세에서 호남 지역 유권자들을 향해 했던 약속이다. 대통령의 이런 약속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호남은 이번 대선에서 또다시 민주당 근거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한 지 2개월가량 지난 현재 시점,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했던 '지방 소외, 영·호남 분할 차별 전략에 따른 소외 등 이중 소외'가 과연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전적인 대안들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심지어 노무현, 문재인 정권 때도 여전했던 영남 지역 편중 인사
이재명 후보 득표율 광주 84.77%, 전남 85.87%, 전북 82.6%, 호남 전체 평균 84.43%. 개표 결과 이재명 후보와 김문수 후보 간 호남 지역 표 차이 265만 4300여 표. 한마디로 압도적인 지지였다.
경상도 인구가 호남권에 비해 773만 여명이나 많은데도, 호남 지역의 표차가 영남 지역 표차(200만 표: 이재명 287만 표, 김문수 487만 표)보다 컸다. 서울·경기·인천 수도권의 후보 간 격차(196만 표: 이재명 897만 표, 김문수 701만 표)보다도 크게 앞서는 수치였다.
이재명 후보에 대한 호남의 이 압도적인 지지가 지난 대선 승리와 정권교체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이번뿐만이 아니다. 최초로 선거를 통해 여야 정권교체를 이뤘던 97년 대선 이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을 때마다, 호남은 한결같이 민주당 계열 후보들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서 결국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호남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선 승리 대가를 공식적으로 요구해 본 적이 없다. 행여라도 보수 진영이 '호남이 갑질을 한다'거나 '호남이 특혜를 요구한다'는 말로 지역주의를 자극해, 기껏 어렵게 탄생시킨 민주 정부들에 어려움과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난 2000년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서 5.18묘지를 참배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사 한 자락이, 조용히 듣고 있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리 없이 눈시울을 적시게 하고야 말았다.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저미는 충장로와 금남로, 그리고 전라남도 도청에서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민주주의의 영웅들을 생각할 때마다 한없는 슬픔과 감동, 그리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 때문에, 오히려 호남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퇴임 후인 2006년 4월. 14년 만에 고향인 전남 신안 하의도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은 물론, 재임 후에도 여러분에게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미안한 마음을 표시했다. 그해 9월 모교인 전남 제일고(옛 목포상고)가 있는 목포를 방문해서는 "8년 만에 고향에 와서 하고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호남의 인내와 겸양의 결과로 맞이한 작금의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 부족할 지경이다. 역대 보수정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민주당 정권 하에서도 호남에 대한 ‘역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2018년 서울대 대학원에서 발표된 논문 '정무직 공무원의 균형 인사'에 따르면 호남 차별과 영남 편중 인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알게 모르게 지속됐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논문은 1948년부터 2018년까지 차관급 이상 정무직 3141명 인사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출신 비율로 봤을 때 역대 정권 차관급 이상 정무직 인사에서, 호남이 영남을 앞선 적은 오직 김대중 정부 시절 영남 25.23%, 호남 30.15%로 근소하게 호남 출신이 앞선 경우 딱 한 번 있었을 뿐이다. 그 이전 이승만 정부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권하에서 영남과 호남 출신 차이는 적게는 3배, 크게는 무려 4배에 이르는 명백한 영남권 편중 인사였다.
심지어 호남의 압도적인 지지로 탄생한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마저도 영남 편중 인사가 계속 지속됐다. 이는 역대 정부 인사에서 영남 출신이 과잉 대표됐고, 호남에 대한 차별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확인해 준다. 결국 호남은 매번 민주당 정권 탄생 때마다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정부 때 외에는 정치적으로 '제 몫'을 전혀 챙기지 못했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민주권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다. 유권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유롭게 투표하고, 그 결과가 정치와 국정에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리, 이를 결코 지역이기주의 관점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의 호남 지역 예산차별 사례들
과거 보수 정부에서 호남 지역을 차별한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2018년 10월 10일 여러 언론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R&D 예산마저 호남은 꼴찌 수준'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국회에 제출한 '최근 5년간 권역별 R&D 지원 금액 및 비율'이라는 자료가 소스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호남 지역 예산에 대해 극심한 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광주광역시는 2018년 기준으로 볼 때 5년간 110건 사업에 총 509억 원, 전남은 52건에 총 314억 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R&D 지원액 6조 4856억 원 중 광주는 0.79%, 전남은 0.48%에 불과한 것으로 5년 연속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수도권에는 전체 예산의 52.9%인 3조 4316억 원이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또한 전체 예산 대비 경상도권 25.7%(1조 6675억 원), 충청도권 17.5%(1조 1341억 원)인데 비해, 전라도권은 2.7%(1759억 원)에 불과했다.
특히 광주광역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 R&D 특구가 들어섰음에도,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극심한 예산 홀대가 지속됐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6대 광역시 중에서 5년 연속 지원금 최하위는 물론, 전체 광역시 지원 금액 대비 3%(509억 원) 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예산 측면에서 더 노골적으로 호남을 차별했다. 2023년 8월 29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파행을 겪은 끝에 잼버리 대회가 결국 실패로 끝났다. 윤석열 정부는 갑자기 2024년 예산 78%를 삭감하고, 새만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 정부의 잘못을 전라북도 책임으로 떠넘길 뿐만 아니라, 행사 실패에 대한 화풀이 차원에서 ‘예산 독재’를 감행하겠다는 속셈이었다.
또 문재인 정부가 '세계 유일 에너지 특화연구 중심대학'으로 육성한다는 목표로 2022년 3월 개교한 전남 나주시 소재 '한국에너지공과대학(KENTECH, 약칭 한전공대)'도 사례로 들 수 있다. 한전공대의 구체적인 예산 지원 내역을 살펴보면, 개교 시점 250억 원이 지원됐다가 2023년 200억 원(50억 원 삭감), 2024년 100억 원(전년 대비 100억 원 삭감)으로 해마다 예산 지원이 대폭 삭감됐다.
당초 문재인 정부가 2019년 8월 국무회의에서 한전공대에 대해 10년간 지자체 출연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그 근본적인 기조를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그 과정에서 감사원과 산업부는 2023년 3월 한전공대 설립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보수단체의 공익 감사 청구에 대응한다는 명분과 함께, 정부지원금 무단 전용이라는 핑계를 내세워 심지어 감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이후 감사원과 산업부 감사 결과 큰 문제는 없었지만, 초대 총장이 사임하고 대폭 삭감된 예산 때문에 대학 운영에 근본적인 우려가 제기되는 등 한전공대는 윤석열 정부 들어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광주시 인구 140만 명 붕괴 등 대부분 소멸 위기에 처한 호남 현실
광주광역시 인구는 2025년 5월 현재 139만 9880명이다. 2004년부터 21년 동안 유지된 140만 명의 둑이 무너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를 전혀 심각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회색 코뿔소 현상' 상황이다. 코뿔소처럼 덩치가 커서 눈에 잘 띄고 천천히 다가오지만 돌진하면 피해가 큰 위험이라는 뜻이다.
6월 7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국 광역시 중 인구 순유출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광주광역시다. 총 6369명 순유출로 올해 1분기 기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많다. 2024년에 1만 815명이 유출됐고, 올해는 5개월 만에 약 8500명이 유출, 감소 속도가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광주광역시 인구가 줄어드는 가장 큰 원인은 고령화와 더불어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청년층 유출 때문이다. 지난 2013년 30.9%였던 청년인구가 2023년에는 26.8%로 급감세를 보였다. 2023년 기준 타 시·도에서 광주로 전입한 청년이 2만 8282명에 불과한 반면, 광주에서 타 시·도로 전출한 청년은 3만 4669명이나 됐다.
젊은층 순유출로 인해, 광주광역시 상권과 부동산 시장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아 초토화된 상황이다.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쌓여만 가고 전남대 근처 상가 공실률이 50%에 육박하는 등, 광주광역시를 두고 '도시 전체가 폐업 정리 중'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판국이다.
반면 서울 서초, 반포, 압구정 등에서는 평당 2억 원 넘는 아파트들이 속출하고, 서울 전역에서 신고가를 갱신하는 아파트들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분명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나, 서울과 지방은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서울·수도권 부동산 가격 폭등 상황을 막기 위한 이재명 정부 첫 번째 강력한 부동산 정책이 발표됐다. 하지만 지방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6억 원 이상 대출 규제 등의 대책이 그저 '딴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야말로 초현실적인 양극화 상황이고, 지방 부동산 및 건설시장 살리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체 228개 시군구 중 이미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지방 소멸의 종말론적인 불길이 기존 농어촌 지역을 벗어나, 이제는 광주를 비롯한 광역시 차원으로까지 옮겨붙고 있다. 특히 광주·전남 지역 대부분이 소멸 위험지역에 포함되면서 불과 15년 뒤인 2040년에는 제 기능을 상실한 지자체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지방 청년들 사이에는 금수저, 은수저와 함께 '서울 수저'라는 말까지 유행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청년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 이후에도 자기 집에서 생활하면서 쉽게 돈을 모을 수 있는 반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간 청년들은 저축은커녕 결혼도 미룬 채 고시원, 변두리 월세방을 전전하며, 집세 감당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런 비참한 현실을 빗대서 등장한 용어가 바로 '서울 수저'이다.
단지 태어난 곳이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출발선상에서부터 지방 출신 청년들에게 불평등을 강요하는 이 부당한 현실, 이는 전적으로 기성세대들의 책임이다. "호남에서는, 혹은 지방에서는 실패할 기회조차도 없어요. 그래도 서울에서는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잖아요."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지방 젊은이들의 좌절이 담긴 호소다. 국가 붕괴 위험으로까지 치닫는 지방 소멸 시한폭탄에 대해, 대한민국 정치권은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낮은 출생률도 물론 문제이지만, 보다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이동, 수도권 집중 현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아무리 출생률을 높인다고 한들, 지방 이탈·수도권 집중 현상을 멈추지 못하면 망국의 길로 접어든 대한민국의 현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권은 대통령실, 각 부처 장·차관, 공기업 인사 등에 있어서 호남에 대한 차별을 해소하고 공정한 비율로 호남 출신 인사들을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한다. 또한 정책과 예산 분야에서도 호남에 대한 차별 해소와 호남지역 숙원사업 해결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파탄 일보 직전 지역경제, 그리고 호남 대부분 지역이 소멸위험 지역에 포함된 비참한 현실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그것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인사는 자리로 표현하는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말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예산과 정책 측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호남의 아픔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시한 이재명 대통령님과 정치권의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80년 5.18, 수많은 민주주의의 영웅들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충장로와 금남로는 지금, '폐업'과 '임대문의' 문구만 가득한 활기 잃은 '구시가지', 그저 박제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선거 때나 매년 5월에만 반짝, '민주화의 성지'라고 추켜세우다가 돌아서면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광주는, 그리고 호남은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기사는 정소앙 시민기자가 발행인으로 있는 '한국시사경제저널'에도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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