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기후행동’ 현장조사 “103곳 중 단 한 곳뿐”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 규정’은 ‘28°C 이상’

26°C 이상이 94곳 91.2%, 25°C 미만이 50곳 48.6%

전체 공공기관 여름 실내 평균온도는 24.75°C

6월 24일부터 약 한 달간 60대 회원 22명 현장조사

냉방 규정대로 할 경우 기대효가 매우 크지만 다 날려

7월 17일 경기도의 한 우체국 실내 온도. 오후 3시 49분에 측정된 온도는 섭씨 23.9도. 공공기관 규정 온도는 '섭씨 28도 이상'이다.   60+기후행동
7월 17일 경기도의 한 우체국 실내 온도. 오후 3시 49분에 측정된 온도는 섭씨 23.9도. 공공기관 규정 온도는 '섭씨 28도 이상'이다.   60+기후행동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60세 이상의 노년세대가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단체 ‘60+기후행동’이 이번 여름에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 공공기관 103곳의 실내 냉방온도를 측정한 결과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지킨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60+기후행동 회원들이 7월 30일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공공기관의 과잉냉방 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60+기후행동
60+기후행동 회원들이 7월 30일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공공기관의 과잉냉방 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60+기후행동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 규정’은 28°C 이상

“국가,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과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공공기관이 추진해야 하는 사항을 규정”한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 규정’ 14조 1항은 “공공기관의 경우 냉방설비 가동 시 평균 섭씨 28도 이상으로 실내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다.(예외 규정도 있다)

전체 조사대상 103곳 중 섭씨(이하 생략) 26도 미만인 곳이 94곳으로 전체의 91.2%나 됐으며, 약간 한기를 느낄 수도 있어서 긴 팔 옷을 입는 사람들이 목격될 정도의 온도인 25도 미만인 곳도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50곳(48.6%)이었다. 24도 미만인 곳도 22곳이나 됐다. 전체 공공기관의 실내 평균온도는 24.75도였다.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조사작업을 전후해서 과도한 냉방 때문에 감기나 냉방병에 걸려 고생했다는 체험담들을 종종 들었으며, 특히 노약자들의 경우 그럴 위험이 크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회원들이 따로 실측해 본 지하철과 버스 등 교통기관과 은행 등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낮은 온도로 냉방시설을 가동하는 곳이 많았다.

 

경기도 고촌의 우체국 오후 1시 28분 현재 실내 온도 섭씨 22.1도
경기도 고촌의 우체국 오후 1시 28분 현재 실내 온도 섭씨 22.1도

우리나라 에너지 자급률 20%

지난해 지구 대기 평균기온이 국제기구가 설정한 상승폭 상한선인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를 넘어 이미 1.55도까지 올라간 사실이 확인됐다. 이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음을 우리는 체감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례없는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있고 올해 들어 그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전에 보지 못한 대형 산불과 고온, 극한의 호우, 산사태 피해가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의 현실 인식과 에너지 이용 규정 이행 능력이나 의지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자급률이 20%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서, 냉방수요가 급증하는 한여름과 같은 경우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정부는 1984년에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을 제정하였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 시행령’(대통령령 제9931호, 1980. 7. 1. 제정)과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지식경제부고시 제2011-154호, 2011. 7. 26., 제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환경보호 등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가 아니라 에너지 절약 및 효율적 이용이라는 산업적 목적을 위해 제정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기후위기 시대의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이 법규를 제대로 지키지고 있는지는 앞서 얘기한 60+기후행동의 공공기관 여름철 실내 온도 (냉방)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나듯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는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하다. 60+기후행동이 공공기관 청사 등 관련 건물들의 여름철 실내 냉방온도부터 조사해 보기로 한 것은 그런 상황인식에 토대를 두고 있다.

 

서울 은평구청 민원실의 오전 10시 45분 실내 온도 섭씨 25.2도
서울 은평구청 민원실의 오전 10시 45분 실내 온도 섭씨 25.2도

한국 건물부문 CO₂ 배출량 전체의 15~16%, G20의 2배

건물이 소비하는 전기, 중앙집중 난방 등을 포함할 경우 한국의 건물 부문은 전체 에너지 관련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의 15~16%를 차지한다. 1인당 건물부문 CO₂ 배출량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평균의 2배 이상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많다.

60+기후행동은 실태조사를 통한 구체적 자료들을 토대로 공공기관의 여름철 실내 냉방 행태를 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개선안, 대안을 제안, 권고하기로 했다.

6월 24일부터 약 한 달간 60대 회원 22명이 현장조사

이에따라 60+기후행동 회원들이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20일까지 약 1개월 간 온도계를 지참하고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구청, 주민센터, 세무서, 도서관, 우체국 등의 공공기간들을 찾아가 직접 그곳 실내 온도를 측정했다. 이번 조사에 참가한 회원은 모두 22명이었으며, 조사대상이 된 공공기관은 서울이 많았으나 인천과 수원, 세종, 고양, 김포, 성남, 안산, 천안, 부평에서도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는 앞서 말한 바와 같다.

60+기후행동은 30일 오전 서울 창성동의 국정기획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조사결과와 그것을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 정책제안서를 공표한 뒤 이를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했다.

공공기관 냉방 규정대로 할 경우 기대효가 매우 커

우리나라에서 건물부문의 최종 에너지 소비량은 전체의 20% 가량을 차지하며,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냉방 전력은 건물부문 전기 사용의 약 10~15%,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도 전체 건물부문의 20~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들이 실내 냉방온도을 적정하게 유지할 경우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60+기후행동이 정리한 그 기대효과는 다음과 같다.

① 냉방 온도를 1도 올리면 전력소비는 4.7~7%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한국에너지 공단)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에 걸쳐 1600여 개에 이르는 공공기관(중앙 350개, 지방 1260개)이 하루 8시간 냉방을 가동한다고 가정할 때, 20만~30만 KWh 절감이 예상된다.

② 전력사용의 절감은 비용절감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여름철 정전(black-out)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③ 과도한 냉방에 취약한 노약자의 건강을 보호한다.

④ 시민들의 에너지 감수성을 키워 민간 차원의 자정 캠페인을 활성화할 수 있다.

⑤ 중장기적으로는 BEMS(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 도입,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신축 및 그린 리모델링 촉진, 에너지 효율적인 전자기기의 보급 등을 촉진시킨다.

 

7월 30일 오전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열린 60+기후행동 기자회견.
7월 30일 오전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열린 60+기후행동 기자회견.

그럼에도 무관심 인식부족, 관행으로 기대효과 날려

이처럼 엄청난 기대효과가 있음에도 공공기관들은 무관심과 인식 부족, 관행으로 그 막대한 잠재력을 날려 버리고 있는 듯하다.

조사대상 공공기관들 중에 냉기를 분산시켜 냉방 효율을 높이는 선풍기나 에어 서큘레이터 등을 함께 사용하는 곳도 전혀 없었다.

게다가 날씨 변화로 바깥 온도가 실내 온도보다 낮아 문을 열어 놓기만 해도 실내온도를 낮출 수 있는 경우에도 문을 닫아 놓고 냉방장치를 평소처럼 관행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곳도 많았다. 건물 자체가 가열돼 냉방장치로 온도를 더 낮춰야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으나, 현장조사에 참여한 60+기후행동 회원들 다수가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공공기관이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쓰기보다 대체로 무관심하거나 관행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회원들의 이런 주관적 판단이 잘못되거나 과도한 것일 수도 있으나, 현장조사 결과는 앞서 살펴봤듯이 그들의 그런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쪽으로 나왔다.

‘28도 이상’ 현행 규정 문제, ‘26도 이상’이 합리적

그런데 60+기후행동 회원들은 이번 조사과정에서 현행 법령의 ‘28°C 이상’ 규정이 다수의 일반시민들이 무덥게 느낄 수 있는 온도라는 걸 조사현장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여름철 공공기관 실내 적정 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수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봤다. 이는 60+기후행동 회원들의 주관적 판단이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더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된다면 거기에 따르면 될 것이라고 60+기후행동 쪽은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 규정이 현장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두고 대다수 공공기관들이 일상적으로 그 규정을 위반하면서 그것을 무시하거나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잘못된 관행에 젖어 있다면 그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7월 30일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열린 60+기후행동 기자회견.  60+기후행동
7월 30일 서울 창성동 국정기획원 앞에서 열린 60+기후행동 기자회견.  60+기후행동

 

온도계 들고 가 실내서 40~70분 기다려 측정

조사에 참여한 회원들은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조사대상 기관을 온도계를 들고 직접 찾아가 조사대상 실내에 들어간 다음 보통 40~70분, 길게는 1시간 반 이상을 기다려 온도계에 표시된 온도가 안정됐을 때의 수치를 시간, 장소, 그리고 현장사진과 함께 기록했다. 온도계가 실제 온도와 같아지거나 거기에 가깝게 접근하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식의 현장활동은 노년세대 시민단체의 활동으로서는 드문 사례가 아닌가 한다. 불볕더위 속의 이런 조사가 쉽지 않았으나 참여자들은 합의한 방식에 따라 각자 시간을 쪼개어 성심껏 수행했다. 의미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움직인 노년세대의 그런 활동 자체가 우리사회에 던져 주는 함의도 적극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자회견장에 나온 국정기획원 직원에게 정책제안서아 보고서 등을 전달하는 60+기후행동 박태주, 이정희 공동대표.
기자회견장에 나온 국정기획원 직원에게 정책제안서아 보고서 등을 전달하는 60+기후행동 박태주, 이정희 공동대표.

 

제출한 몇 가지 정책제안들

60+기후행동은 조사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 문제점을 요약 정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제안을 정부 쪽에 제시했다.

여름철 공공기관 냉방 실태(온도 및 기기)에 대한 전면조사를 실시해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한편 시민 모니터링단(조사관찰팀)을 구성해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공공기관 에너지 이용 합리화 추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되, 그 과정에 시민이 참가할 수 있게 해 줄 것을 요청한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서 공공기관의 실내 온도 측정 결과와 에너지 절약 결과를 반영하되 해당 항목의 평가 비중을 더 높일 것을 제안한다.

공공기관의 에너지 절약에 대해 천반적인 대책을 수립 시행함으로써 기후위기 대응과 온실가스의 배출 감소, 에너지 비용의 절감을 실현하고 나아가 민간부문으로 그 효과를 확산시킬 수 있는 모범사례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60+기후행동’은 2022년 1월 19일(119)에 창립한 60세 이상 노년세대의 기후・생태 시민운동 단체다. 2025년 7월 현재 200여명의 회원과 25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원 각자가 일상생활에서 친환경의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한편, 단체 차원의 여러 사회활동도 벌이고 있다. 주요 활동으로는 △탈석탄 연대사업, △청년기후행동 지원사업, △기후 취약노인 돌봄사업, △사회적 상속사업, △생태적 삶 실천사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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