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시급하게 손질해야 할 분야

'정치적 후견주의' 타파 위한 방안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열망이 큰 만큼 실망이 커질 수 있는 영역이 언론개혁이다. 개혁의 속도와 성과를 노동개혁이나 검찰개혁처럼 일상에서 느끼기 어렵다. 언론개혁의 핵심주체는 언론인이다. 정부나 시민은 언론이 변화하여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견인하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언론 스스로 해야만 가능하다. 물론 누구나 언론개혁을 위해 ‘나를 따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방향이 맞는지 혹은 필요한 문제해결 방식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언론개혁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마다 우선순위가 다를 것이다. 정치적 후견주의 타파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 시급하게 개혁이 필요한 영역이 방송통신심의이다.

현재의 방송통신심의는 2008년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산하에 있던 자문기구를 하나로 통합하여 민간독립기구로 출범시킨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담당한다. 방송통신심의위가 수행하는 업무는 방송 프로그램과 방송광고, 홈쇼핑에 대한 사후적 심의, 통신에서의 불법정보와 유해정보 차단 및 삭제, 온라인에서의 권리침해 구제, 디지털성범죄물 신속심의에 이르까지 폭넓다. 여기에 선거방송심의위원회와 명예훼손분쟁조정부라는 유관기관을 두고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 활동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다.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 후견에 둘러싸여 미디어 환경변화에도 불구하고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제도적 퇴행에 있다,

방송통신심의 제도에 대한 개혁은 크게 심의행정에 대한 개혁, 위원회 구성에 대한 개혁, 자율심의 확대를 통한 공동규제 도입으로 나뉠 수 있다. 심의행정에 대한 개혁은 당면한 문제에 대한 분석을 통해 촘촘한 제도설계가 뒤따라야 하는 영역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혁을 위해서는 원칙이 중요하다. 새로운 제도개혁 제안 혹은 방안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개혁안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제안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지 살펴야 한다. 사회적 합의는 현실적으로 어렵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현행 제도보다는 조금은 나은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차악은 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임에도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개혁이라면, 개혁안이 현재보다 개선된 법·제도인지 검토해야 한다. 방송통심심의를 위해 필요한 당면과제는 많다. 그 가운데 법·제도 측면에서 필요한 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실에 붙여진 위원장 사퇴 촉구 피켓.(사진출처 :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미디어오늘 2024년 1월 12일 기사 재인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실에 붙여진 위원장 사퇴 촉구 피켓.(사진출처 : 언론노조 방심위지부. 미디어오늘 2024년 1월 12일 기사 재인용)

첫째는 공정성 심의 폐지 요구이다. 행정규제기관이 비록 사후적이지만 방송 보도에 대해 내용심의를 하는 것은 옳은가란 질문은 오랫동안 찬반양론이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가 정치적 후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리전쟁을 펼치는 공간이 된 근본적 원인이 보도에 대한 사후심의이다. 현행 방송심의 규정에서 제재기준에서는 제2장 일반기준 제1절 공정성(제9조부터 제13조까지)과 제2절 객관성(제14조부터 제18조까지) 조항을 통해 방송 보도에 대한 사후적인 내용심의를 위한 10개 조항에 걸쳐 규정한다. 방송심의규정에서 정하고 있는 10개 조항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언론윤리강령이나 공정보도 준칙을 통해 실천해야 하는 윤리규정에 해당한다. 예컨대 일방적인 주장을 지지하지 않아야 하고, 모든 보도는 취재를 통해 사실을 검증한 뒤 내보내야 하고, 불공정한 영상편집이나 여론조사 결과를 오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보도에서의 언론윤리 실천은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실천해야 하기에, 최소한 제9조 공정성 심의 규정부터 폐지하자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처방이다. 방송 보도에 대한 사후적인 정치심의를 막기 위해 제9조를 폐지하거나 더 나아가 제9조부터 제18조까지 폐지하더라도 제3절 권리침해금지(제19조~제23조)나 제4절 윤리적 수준(제25조~제34조) 기준을 통해 방송 보도에 대한 사후적인 정치심의는 언제든 가능하다. 방송의 윤리적 수준에 관해 규정한 방송심의규정 제25조제1항(윤리성)은 “방송은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과 규범의 정립,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의 신장에 이바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27조제5호(품위유지)는 “그 밖에 불쾌감·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금지하고 있다. 모든 방송 보도는 누군가에게 불쾌하고 혐오스러울 수 있고, 국민의 올바른 가치관과 규범 정립이나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을 현저하게 훼손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을 정치적 후견자를 위해 사익을 탐닉하는 심의위원이 비집고 들어와 방송 보도에 대한 법정 제재를 주장한다면, 심의규정은 얼마든 악용될 수 있다. 방송심의제도가 내포한 문제의 본질은 심의조항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제도 자체가 악용될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송보도에 대한 실효적인 자율 심의 제도와 연계하여 공정성 심의에 대한 개혁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OTT에 대한 심의 도입이다. 지금도 OTT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자율등급지정을 통해 심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 OTT에서 유통하는 모든 영상물은 영상물등급위나 영상물등급위에서 지정한 자율등급지정사업자가 자체 부여한 시청연령 등급분류 표시를 한다. 이 제도는 OTT를 일종의 가상공간의 영화관으로 분류하고, 영화나 비디오와 같은 시청연령 등급분류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네덜란드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넷플릭스와 HBO Max 등 글로벌 플랫폼은 TV방송을 실시간 전송하거나 순차 전송한다. OTT에서 실시간편성이나 순차편성으로 방송영상물을 송출하면, 실시간 방송과 같은 심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원칙을 세워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인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은 방송법에서 규정한 방송사업자나 신문법에 규정한 인터넷뉴스제공사업자가 아니다. 현행 법령으로 방송심의제도에 포섭하기 어렵다. 유럽연합은 이미 이러한 사업자를 미디어중개사업자나 미디어플랫폼사업자, 동영상중개사업자 같은 법률적 조어를 통해 정의한다. 우리도 이러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또한, 영상물등급위의 시청연령 등급분류 제도와 충돌하지 않으면서, 방송심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저널리즘 원칙에 따라 영상물을 실시간 또는 순차적으로 편성 또는 배열하여 유·무선, IP로 제공할 때’에는 방송심의에 포함한다는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온라인에서의 명예훼손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분쟁조정이다. 현재 온라인에서의 분쟁조정은 언론사가 운영하는 온라인채널은 언론중재위원회가 맡지만, 인플루언서가 운영하는 채널이나 개인의 의사표명을 통한 명예훼손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10에 따라 방송통신심의위에서 설치한 명예훼손분쟁조정부가 맡고 있다. 언론중재위에 접수되는 조정·중재 신청 건수는 2024년 3,937건이었으며, 이 가운데 조정성립이나 직권조정결정, 구제를 통한 신청취하의 방식으로 해결된 건수가 72.5%였다. 반면 방송통신심의위 명예훼손분쟁조정부에 2024년 접수된 상담 건수는 1,509건으로, 이 가운데 조정전 합의 12건과 정보제공결정이 난 131건을 제외하면 조정건수는 0건이었다. 전체적으로 피해구제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언론중재위와 달린 명예훼손분쟁조정부는 직권조정 권한이 없다. 그렇다고, 모든 온라인분쟁을 언론중재위가 맡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현행 명예훼손분쟁조정부의 실효적인 기능을 보장할 수 있는 근거법령 제정이 필요하다. 또 인플루언서를 비롯한 ‘저널리즘 활동을 하는 행위자’와 개인적 의사 표현을 구분하여 언론중재위와 명예훼손분쟁조정부의 관할 사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처럼 5인으로 구성된 조정부로는 실질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소한 지역별로 명예훼손 분쟁조정부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넷째, 전수심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는 모든 방송 채널의 전체 방송시간을 자체 모니터링하여 전수심의한다. 여기에 민원이나 관계기관에서 넘겨받은 사건도 다뤄야 한다. 그러나 전수심의는 방송 채널의 수가 제한적이던 시절에나 가능하다. 지금처럼 실시간 채널의 수가 300개가 넘고, OTT와 동영상공유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영상물까지 심의에 포함하려면, 민원과 관계기관 이첩 사건에 대한 심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A홈쇼핑사에서 판매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민원이 접수되면, 현재의 방송통신심의위 사무처는 모든 홈쇼핑 및 데이터쇼핑에서 해당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한 방송을 살펴보고, 위반이 의심되면 모두 안건으로 상정한다. 만일 누락이 발생하면, 업계 경쟁사업자나 내부고발자가 추후 민원을 접수하기도 한다. 단지 홈쇼핑에만 해당하는 사안은 아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사후적인 방송심의를 하는 국가는 많지만, 한국처럼 전수심의를 하는 국가는 없다. 모두 민원에 기반을 둔 폐해규제이다. 방송통신심의제도는 사후적 검열이 아닌 폐해규제를 위한 행정구제제도이다. 그렇다면 지상파 독점 시절에나 가능했던 전수심의의 신화부터 포기해야 한다.

다섯째, AI기반 통신심의 강화이다. 방송통신심의위는 불법 정보와 유해 정보에 대한 신속심의를 위해 AI를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적발한 안건에 대한 신속심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비용과 인력, 무엇보다 심의체계가 정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 통신소위원회에서 회의 당 처리하는 심의 건수는 수천 건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 동일위반에 대한 중복 심의 건수이다. 온라인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는 마약, 총검 및 폭탄, 불법 의약품, 불법도박 및 복권, 포르노그래피 등 다양하다. 이러한 불법정보는 현행법에서 금지하는 ‘당연위법’ 사안이다. 대다수 안건은 이미 불법성이 확인되어 오랫동안 이력이 관리되어 온 것이다. 이력이 있는 안건을 신속하게 찾아내고, 새로운 불법정보를 걸러내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와 예산, 인력이 필요하다.

여섯째, 신속심의이다. 방송통신심의위는 2019년부터 디지털성범죄에 한해서 72시간 신속심의를 도입했다.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는 매일 상정된 안건에 대해 심의를 한다. 도입 초기에는 신속심의 안건을 분류하고, 심의원칙을 세우기까지 업무량이 많았으나, 이제는 심의 이력이 있는 누적안건은 자동으로 신속심의가 이루어진다. 여기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나 사회적 불안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주요 불법정보(테러위협, 불법 도박 및 불법 복권, 불법 영상물공유 등)에 한정하여 신속심의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장은 상임위원이 맡아야 한다. 지금까지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장은 비상임위원이 맡았다. 그러나 매일같이 안건 검토와 회의상정을 위해서는 상임위원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공직 수행은 선택이 아닌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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