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진보와 민주주의 위한 수단으로 쓰기

노무현 정부 때의 경험 반면교사로 삼아야

'비판적 지지'와 '지지적 비판’의 능력 갖춰야

3일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전 정권 때의 기자회견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던 질문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대통령 권력에 대한 고정된 인식에서 비롯된 진부한 질문이기도 하다. 입법부의 압도적인 우군까지 확보한 이재명 정부지만, 과연 대통령 권력 행사가 제왕적인지는 의문이 든다. 실은 대통령 권력 자체가 제왕적이라기보다는 제왕 행세 하는 대통령이 있었다고 봐야 맞다는 게 지난 몇 차례의 정권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대통령의 직무란, 때로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통찰력과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제왕적'인 면모가 필요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관건은 민주체제에서 필요한 '제왕'의 역량을 갖추었느냐이다. 무엇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인식이 전제된다면 대통령에겐 오히려 제왕적인 고도의 능력과 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시비는 여기서 차치하기로 하자. 그보다 언론이 '제왕적 대통령제'를 묻는 바로 그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제왕'이 있었다. 바로 '제왕적 언론'이다. 스스로를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는 언론 자신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서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다. 3권에 속하지 않는 '제4부'라는 별칭의 무관의 권력은 자신의 머리 위에 스스로 보이지 않는 왕관을 쓰고는 보검을 휘두르며 제왕으로 군림하려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5.7.3.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을 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25.7.3. 연합뉴스

3일 기자회견에서 보였던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의 현황에서 '제왕이 된 언론'의 한 배경을 보게 됐다. 대통령실 기자실은 한국 언론 현실의 축도와도 같다. 국가 최고 권력 기관의 주요 정보를 가장 먼저, 가장 밀접하게 접하는 집단인 이들의 구성은 한국 언론 현실의 압축적인 반영이다. 그런데 대통령실 기자회견에서 봤던 것은 명백한 보수 또는 극우 성향의 매체들이 간사 및 주요 질문자로 등장한 것이었다. 사전에 정해진 각본 없이,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질문자들인데, 그 대다수가 보수 우익 성향 매체들이었다. 대통령실 대변인의 설명대로 기자단 간사가 내부 투표로 선출되는 것을 고려할 때, 윤석열 정권 시절 이들 매체 기자들이 기자단 내에서 상당한 조직력과 동조 세력을 확보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정 정치적 지향성을 가진 매체들이 과도하게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언론의 불균형의 현실을 드러내는 한 단면으로 보인다. 한국 언론은 국민 여론과 언론 간에서, 보수-진보 언론 간의 균형에서, 그리고 인터넷 포털에서의 보수 우위 등에서 2중 3중의 불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실의 풍경은 그 불균형하고 기울어진 현실의 압축판이자, 그 같은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어 왔음을 드러낸다. 지난 윤석열 정권 3년간 언론은 그렇게 대통령 권력을 제왕으로 만들어주면서 자신은 그 제왕적 권력의 일부가 됐다. 권력에 대해서는 '가신' 되기를 자청하면서 한편 국민에 대해서는 제왕으로 군림했다.

대통령실 기자실의 현실은 언론 현실과 함께 나아가 한국 사회의 한 축도다. 불균형한 현실을 더욱 불균형하게 반영한 축소판이다.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장관과 민정수석 등의 인사에 대해 "누구 사람이라고 배제하면 쓸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검찰개혁을 하려면 검찰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했다"고도 밝혔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하는 현실이 그런 고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얘기였다. ‘통합’을 위한 인사는 개혁의 대상에게 개혁의 권한을 맡기는 방식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은 정권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은 공고하다는, 그 '불가피한 현실’에 대한 토로였다.

‘제왕적 대통령’ 질문에서 보이듯,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보수신문에선 ‘독주’를 견제하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 신문은 일관되게 ‘실용’과 ‘통합’을 주문하고 있다. 민주당이 의석 다수를 점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돼 “전례 없는 절대 권력이 탄생했다”고 했다. <국민주권 앞세운 다수폭정 경계한다>는 칼럼처럼 절대권력이니 폭정이니 등의 말이 예사로 나오고 있다. 어느 보수 계열 신문은 “지금 시험대에 오른 핵심 덕목은 권력의 자제력”이라고 했지만, 이들 보수 기득권 측의 언론은 자제를 보일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진보 언론’의 과제는 요약하자면 2가지다. 하나는 언론에서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불균형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 둘은 서로간에 원인이 결과가 되고 결과가 원인이 되는 관계에 있다. 사회가 언론을 낳고, 언론이 그 사회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러니 언론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뀌고, 그러나 또한 사회를 바꿔야 언론이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인사 논란에 대해 "인사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정책 실현을 위한 수단"이라고 했다. 이를 언론에 대입해 보면, 진보 언론에 이재명 정부는 '수단'이라는 말로 바꿔 볼 수 있다. 진보언론의 목표를 한국사회의 진보라고 하든, 한국사회의 선진화라고 하든, 민주화의 심화라고 하든 간에 이를 위한 수단으로서 필요한 권력인 셈이다.

여기서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은 노무현 정부라는 수단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 한겨레, 경향신문 등 이른바 진보 언론의 노무현 정부 비판은 적잖은 경우 보수 언론과 거의 다를 게 없었다. 그에 대해선 ‘과도한 비판'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진보 정부 실패의 한 요인'이 됐다는 평가가 뒤늦게 제기됐다.

이제 이재명 정부라는 ’수단‘을 쥐게 된 진보 언론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그에 요청되는 '능력'을 '비판적 지지' 혹은 '지지적 비판'이라는 말로 요약해 보자. 

언론으로서 집권 세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마땅한 책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진보언론의 감시와 비판이 그 내용과 방식에서 과연 진보의 진보화, 민주주의의 민주화에 기여하는 것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이제 이재명 정부를 '사용'하게 된 진보언론은 어떤 '비판'과 '지지'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 진보언론이 이번에는 더욱 제대로 된 답을 보여줘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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