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드문 찬사, 그러나 '주문' 보내는 것

국민 다수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방향 제시

이재명 정부가 조심해야 할 '조선일보 리스크'

조선일보가 이재명 대통령과 새 정부의 첫 한 달에 대해 칭찬을 했다. 3일자 조선일보 주필의 <양상훈 칼럼: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 종결법>이라는 제목 아래 "한 달간 잘한 일이 꽤 많았다"며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이 칼럼은 현재 60%를 넘나드는 이 대통령의 여론 지지율이 "수긍이 간다"고 밝혔고, "필자가 만난 사람들 중 이 대통령 인사에 낙제점을 준 분은 한 명도 없었다"고도 했다.

조선일보가 이재명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 이렇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특히 이 칼럼을 쓴 필자는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나 대선 후보 시절일 때 누구보다 맹렬하게 비판했던 인물이다. 대선 직전인 5월 22일에는 <이재명 '총통' 징후 엿보인다>는 제목으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총통이나 차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독설을 퍼부었던 장본인이다. 그 전 1월 16일자 칼럼 <尹, 李 둘 다 없어졌으면>에서는 윤석열, 이재명 두 정치인 모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커지고 있다며 '동반 청산론'을 강변하기도 했다. 비판을 넘어 저주와 악담에 가까운 공격을 가했던 필자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 찬사를 보낸 것이다.

이번 칼럼은 이 대통령의 시선이 이미 지방선거를 넘어 3년 뒤 총선까지 향해 있을 거라며, 총선 승리가 정권 재창출의 주요 고비를 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치 이 대통령에게 우정 어린 조언을 건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대통령이 한 달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언론사 대표들과 식사 간담회를 가지며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준 걸 윤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칼럼은 "언론과 대통령은 결코 가까울 수 없지만 멀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는데, 이 '언론' 자리에 '조선일보'를 넣고 싶은 속내가 엿보인다. 어쩌면 조선일보가 이재명 정부에 보내는 화해의 손짓이자, 앞으로 잘 지내보자는 구애일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3일자 양상훈 칼럼. 
조선일보 3일자 양상훈 칼럼. 

그러나 구애이든 추파이든 조선일보의 이 같은 이재명 예찬은 단순히 칭찬으로만 볼 수 없다. 칭찬이라는 형식을 빌려 사실상 이재명 정부에 대한 자신들의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기대하고 희망하는 이재명 정부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조선일보의 기대와 희망이 이재명 정부에 대한 국민 다수의 기대나, 지금 한국 사회에 요청되는 이재명 정부의 책무와는 매우 동떨어져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상반되는 방향이라고 해야 할 만하다. 조선일보의 칭찬이 달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럼은 외교안보 분야 인선에 대해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인사들이 중용되고,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이는 조선일보의 확고한 논지인 '친미 일변도' 외교를 이재명 정부가 펼치기를 바라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한일 관계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마치 이재명 대통령이나 야당이 먼저 친일파 논쟁을 벌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친일파 논쟁'이 있었다면, 그건 윤석열 정권의 '친일·종일' 행보에 대한 비판과 지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원인은 이야기하지 않고 결과만 짚는, 전형적인 '반쪽 논리'를 펴고 있는 셈이다. 그같은 반쪽 논리로 윤석열 정권의 미국 일본 맹종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주문을 보내고 있다.

이 칼럼은 첫 문민 국방장관 후보에 대해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서 "이 대통령의 안보관을 걱정했는데 지금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일보 스스로 '불안한 이재명 안보관'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에 대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또 스스로 '문제없음'을 판정하는 식이다. 애초에 '이재명의 안보관'을 걱정한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였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다.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에 온건하고 합리적인 인사를 기용했다고 평가한 대목에선 검찰 개혁에 대한 조선일보의 불만과 주문이 엿보인다. 이 대통령의 인사 중 적잖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검찰개혁' 관련 요직 인사를 호평함으로써 검찰 문제에 ‘과격하게 접근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칼럼은 이 대통령에 대해 "검찰, 경찰, 공수처 문제에 대해 상당히 ‘현실적 인식’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현실을 바꾸지 않기를 바라는' 조선일보의 바람이 읽힌다.

칼럼은 원전 정책에 대해 이 대통령이 스스로 선뜻 얘기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 주겠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탈원전과 원전 확대의 중간쯤에 서 있다고 본다면서 '현실과 숫자에 밝은' 이 대통령이니만큼 원전 확대가 불가피한 시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고 썼다. 지지층 때문에 말을 못 할 뿐이라며 자신이 이 대통령의 내심을 대변해 주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환경부 장관에 내정된 이는 ‘태양광·풍력 맹신론자’이지만 산업부 장관에 원자로를 만드는 기업 사장 출신을 내정한 것은 다행이라고 얘기했다. 서울 노원구청장 시절부터 재생에너지 실천에 적잖은 성과를 내 주목받았던 환경부 장관 내정자를 '맹신'이라고 폄하한다. 반면, 원전 관련 기업 사장 출신의 발탁은 기후 문제 대응에 불가결한 것으로 보는 이중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조선일보가 갖고 있는 원전에 대한 '맹신'을 이 대통령에게 주문하기로 하는 듯하다.

칼럼은 "이 대통령의 속마음이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속마음은 분명히 드러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면 방탄법은 필요 없다"면서 "이 대통령이 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지혜를 받아들인다면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라고 조언하는 대목에서 그 속마음이 보인다. 5월 22일자 <이재명 총통> 칼럼에서 "이 후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총통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선량한 국가 관리자 역할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썼던 대목과 통한다. 이재명 정부가 '내란 종식' '개혁' '국민 주권 구현' 등의 과제를 밀어붙이는 건 '총통'의 행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현실'을 인정하고 함부로 뜯어 고치려 하지 말고 다만 '선량한 관리자' 역할에 만족하는 게 합리적인 대통령 역할이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이 칼럼은 다시 한번 "이 대통령에게 선거 승리와 정권 재창출이 중요한 건 자신의 사법 리스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며 사법 리스크를 꺼내든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명 정부가 사법 리스크보다 훨씬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건 바로 '조선일보 리스크'일 듯하다. 조선일보의 비판과 악담보다 더욱 조심해야 할 '조선일보의 칭찬이라는 리스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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