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시진핑 모스크바 정상회담] ①

글로벌 전략적 안정 성명…'트럼프 안보구상' 조준

킬체인·참수작전·핵우산 등 한미 동맹 근간도 비난

2차대전 승전 80주년 계기 전략적 협력 강화 다짐

핵전쟁 위협 강조했지만, 군축협상 주체 뭉뚱그려

러·중 관계에 '트럼프 요소'는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 미국이 주선한 양국 간 정략결혼은 '다산의 계절'에 들어섰다. 러·중은 핵공유와 핵우산, 미사일 방어는 물론, 골든돔과 우주공간의 군사적 이용 등 미국과 집단서방의 구상과 행동에 공동대응을 다짐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국군의) 킬체인과 참수작전도 언급했다. 지난 8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러·중 정상회담에서 거듭 확인한 '현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 문안을 각각 들고 악수를 하고 있다. 2025.5.8. TASS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성명 문안을 각각 들고 악수를 하고 있다. 2025.5.8. TASS 연합뉴스 

러시아의 2차세계대전 전승 80주년 기념일(V-day)을 계기로 이뤄진 러·중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조 바이든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견제의 대상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표한 일련의 성명과 선언은 미국이 주도하고, 집단서방이 뒤따르는 군사적, 전략적 움직임을 정조준했다. 윤석열 정부가 체결하고 차기 한국 정부가 물려받을 '워싱턴 선언'과 한미 동맹, 한미일 군사협력도 포함했다. 공동성명의 키워드는 '전략'이었다.

'글로벌 전략적 안정 공동성명'과 '국제법 권한 지지를 위한 협력 강화 공동선언'은 '동등한 불가분의 안보'와 '평화적 공존의 5대 원칙'에 기초한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구현을 추구했다. '신시대 포괄적 관계와 전략적 상호작용 강화에 관한 공동성명'에는 양자 협력과 함께 한반도를 비롯한 지역별 안보 현안에 대한 공동입장을 담았다. '불가분의 안보(indivisible security)'는 한 나라의 안보 우려가 다른 나라의 안보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1975년 유럽안보협력회의(OSCE) 헬싱키 협정의 원칙이다. 평화적 공존 5대 원칙은 △영토와 주권에 대한 상호 존중 △상호 불가침 △상대국 내정에 대한 상호 불간섭 △상호이익에 대한 평등성과 협력 △평화적 공존으로 국가의 주권을 인정한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국가 관계의 규범이다.

러·중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해 매년 내놓은 공동성명에 담긴 기본 철학이지만 새삼 숙독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취임으로 본격화된 탈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흐름에 비추어 세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과 집단서방이 벌이고 있는 전략적 움직임을 되짚어볼 기회이기도 하다. '러중 글로벌 전략적 안정 공동성명'은 전승 80주년과 유엔 탄생의 의미를 같은 반열에 놓았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전략적 안정을 유지, 강화해야 할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가 국제 및 지역 안보에 직면한 도전을 짚었다. 유엔을 강조한 건 러중이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원천으로 유엔 헌장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크렘린궁에서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80주년 퍼레이드에 참석차 방문한 로버트 피코 슬로바키아 총리와 정상회담 중 발언하고 있다. 피코 총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으로 유일하게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2025.5.9. 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9일 크렘린궁에서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80주년 퍼레이드에 참석차 방문한 로버트 피코 슬로바키아 총리와 정상회담 중 발언하고 있다. 피코 총리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으로 유일하게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2025.5.9. AP 연합뉴스 

'동등한 불가분의 안보' 원칙에서 국제 안보와 글로벌 전략적 안정에 특별한 책임을 지닌 핵보유 강대국들의 건설적 관계를 강조했다. 가장 시급한 전략적 위험으로 기존의 또, 새로 결성된 군사동맹과 군사협력이 조성하는 핵분쟁의 위험을 먼저 꼽았다. 일부 핵보유국이 군사력 투사와 강압적인 압력 등 적대적 행동을 하기 위한 거점을 다른 핵보유국의 국경 인근에 설치하고 있음을 짚었다.

그 첫 번째 사례가 향상된 미사일 요격 능력을 동반하는 '참수 및 무장 해제 공격(decapitating and disarming strikes)' 능력이다. 참수작전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테러 전쟁 전략인 동시에 한국군의 주요 전략이기도 하다. 핵무기 선제공격 전략도 해당한다. 심층정밀타격과 킬체인, 반격 능력 강화도 지적했다. 한국군의 킬체인(kill chain)은 북한 핵무기에 대해 탐지→식별→결심→타격 과정을 짧은 시간 안에 완료하겠다는 선제타격 체계다. 지상발사 중·단거리 미사일을 동원하는 심층정밀타격을 뜻하며, 반격능력은 한국과 일본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하는 능력이다. 성명은 전체에 걸쳐 특정국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일부 핵보유국들'이 벌이는 도발적인 행동으로는 핵공유와 확장억제(핵우산)를 예로 들었다. 이는 2023년 한미 정상의 '워싱턴 선언'의 핵심이자,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제안으로 유럽연합(EU) 차원에서 논의하는 사안이다. 미국이 빠지거나, 역할을 축소하는 흐름 속에 유럽 차원의 대안으로 다뤄지고 있다.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벌어지는 집단서방의 움직임에 경고를 한 대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크렘린궁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 2025.5.8. AP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크렘린궁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 2025.5.8. AP 연합뉴스

성명은 특히 트럼프가 동급(peer, 러시아)과 동급에 가까운(near-peer, 중국) 적을 상대로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골든돔'에 주목했다. 이스라엘판 아이언돔의 확대판인 골든돔은 글로벌 심층 층위와 다영역 미사일 방어 시스템. 발사 전(left of launch) 미사일을 무력화하는 수단의 개발도 지적했다. 발사 전 미사일 무력화는 2017년 한반도 전쟁 위기 당시 미국이 북한 미사일에 대해 시행해 온 작전으로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

두 정상은 골든돔이 요격 시스템의 개발 및 궤도권 배치를 통해 우주공간을 무력 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경고했다. 러·중이 '외계 공간 무기 배치 및 외계 공간 물체에 대한 공격 또는 그 위협 예방 조약'의 초안을 가급적 빨리 작성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외계 공간의 무기화 문제는 '국제법 협력 강화 공동선언'에서도 다뤘다. 성명은 또 미·러·중·영·불 등 핵보유 5개국이 2022년 1월 서명한 '핵전쟁 및 군비경쟁 예방 공동성명'의 준수를 촉구했다.

세계적으로 핵 군축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각국이 군비경쟁에 몰두하는 탓에 국제 평화가 위기에 처한 건 맞다. 성명은 그러나 이에 대한 중국의 책임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미·러 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2)은 러시아가 2023년 2월 우크라전 와중에 미국 측의 핵사찰을 거부함에 따라 중단됐다. 미러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은 트럼프가 1기 행정부 때인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유지한 탓에 고삐가 풀린 상태다. 미국은 중국이 포함된 핵군축 협상을 강조하는 한편 INF 배치를 늘리고 있다. 중국 역시 동펑(東風) 계열의 INF를 배치하면서 동아시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러시아 역시 신형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고등교육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전승 8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2025. 04 23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고등교육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취재진을 향해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전승 8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2025. 04 23 [AFP=연합뉴스]

공동성명은 그러나 핵전쟁의 위험과 군축협상의 중요성을 거듭 경고하면서도 이를 주도할 주체를 '유엔과 다자 군축 메커니즘'으로 뭉뚱그렸다. 미국과 집단서방의 군사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신들의 책임은 강조하지 않은 것.

성명은 2026년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에 적극 참여할 것을 약속하며 핵무기와 박테리아(생물학) 및 독성 무기, 화학무기의 수출통제를 지킬 것을 다짐했다. 그러면서 미·영·호주(AUKUS) 협의체에 속한 미국과 영국이 '남태평양 비핵지대조약' 지역에 군사 인프라를 세우고 있어 해당 지역의 전략적 안정을 해치고 군비경쟁을 촉발한다고 비난했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생물학 무기 관련 활동에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당시 중국 영토 내에 방치한 화학무기를 가급적 빨리, 완전하게 제거할 의무를 다하라고도 촉구했다.

'국제법 협력 강화 공동선언'은 주로 글로벌 전략적 안정 공동성명에 거론된 양국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조약과 국제협약 또는 국제적 의무의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서방이 전가의 보도처럼 강조하는 '규칙 기반 질서'가 일부 국가들의 '이중 잣대'에 악용되고 있음을 지적한 대목이 눈에 띈다. 유엔 해양법과 중앙은행을 포함한 각국 자산의 존중 및 정부 각료의 형사소추 금지 등 서방의 제재 속에 러시아가 안고 있는 고민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의 고민 등을 반영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리버스(逆) 닉슨' 구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러중 정상회담 ②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퍼레이드 뒤 각국 정상과 함께 모스크바 '무명 용사의 묘'에서 진행된 헌화식을 엄숙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2025.5.9. 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일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80주년 기념 퍼레이드 뒤 각국 정상과 함께 모스크바 '무명 용사의 묘'에서 진행된 헌화식을 엄숙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2025.5.9.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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